
최근 기업 현장에서 다양한 직급의 구성원, 그리고 HRD 담당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공통된 고민의 지점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경영진은 AI 기술 도입을 통해 극적인 생산성 제고와 비용(특히 인건비) 절감을 크게 기대하지만, 실무 일선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전에 없던 스트레스와 번아웃을 경험 중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구성원들은 '내 직무가 AI로 자동화되거나 대체되어 언제 사내에서 밀려날지 모른다'는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고 있고, 10~20년간 속해 온 사업부나 직무 단위가 통폐합되는 흐름을 목도하거나 경험하고 있습니다.
HRD 부서 역시 이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싶지만, 급변하는 기술 트렌드 속에서 구체적인 교육 지원 방향을 어떻게 수립해야 할지 막막해하기도 합니다. 기술의 고도화 속도에 조직 내 교육 개편이나 명확한 경력 개발 가이드라인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많은 구성원들이 일터에서 도태의 공포를 지닌 채 표류하고 있는 모습을 많이 마주하게 됩니다.
갤럽은 2017년, 기술 발전으로 인해 자신의 직업이 불필요해질 것에 대한 직원들의 심리적 우려를 추적해 왔으며, 이 현상을 FOBO(Fear of Becoming Obsolete), 즉 ‘도태되고 있다는 공포’로 명명했습니다.
특히 생성형 AI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이후 진행된 조사에서 이 지표는 눈에 띄게 높아졌습니다. 과거 기술 대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여겨졌던 대졸 이상의 화이트칼라 계층에서 FOBO를 체감하는 비율이 기존 8%에서 20%로 두 배 이상 급증했으며, Z세대를 비롯한 주니어 계층에서 이러한 우려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McKinsey와 Korn Ferry 등 글로벌 컨설팅 그룹에서도 이 FOBO 데이터를 조직 내 핵심 인재 이탈과 몰입 저하의 가장 직접적인 위험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AI 시대에 구성원들이 직면해야 하고 있는 건, 단순히 새로운 도구에 적응하는 번거로움의 수준이 아닙니다. 평생을 갈고 닦아 온 내 일의 가치와 전문적 정체성이 통째로 흔들리는 일종의 '경력 충격'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제가 모 대기업 직무 재배치자 대상 변화 온보딩 교육 현장에서 만난 한 20년 차 베테랑 직원은 성과 포상을 받은 지 채 2년도 되지 않아 담당 업무 영역이 자동화 시스템으로 대체되며 부서 이동 권유를 받았다고 합니다. "어제까지 단단하기만 했던 나의 발판이 단숨에 무너진 듯한 허탈함을 느꼈다"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회사가 자신을 가치 있는 인적 자산이 아닌 '대체 가능한 소품'으로 본다고 느낄 때 발생하는 '조직적 배신감'은 조직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붕괴시키는 촉매가 됩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짚어보아야 할 현상은 바로 '불안의 역설'입니다. AI 도입에 따른 직무 불안이 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경각심은 높여주지만, 정작 기술을 능동적으로 학습하려는 내재적 동기까지 유도하고 있는 지는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심리적 안전감이 결여된 채 기술 습득과 평가 지표만을 다그치는 조직은 결국 구성원 조직 몰입 하락과 이탈이라는 부작용에 직면하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이 격변의 시대에 HRD는 어떤 대안을 설계해야 할까요? 조직 현장에서 적용해 볼 수 있는 방안들을 아래와 같이 제안해보고자 합니다
1. 구성원들이 가진 잠재된 스킬들의 발견과 정체성 재정립 기회 제공
‘직무’라는 경직된 타이틀에만 갇혀 있으면 구성원은 경력 정체를 경험하고, 결국 조직을 떠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제는 “무슨 직무를 맡고 있는가”를 넘어, “어떤 스킬을 실제로 보유하고 있는가”를 더 세심하고 입체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액센츄어의 ‘Future Skills Initiative’에 따르면, 구성원에게 자신이 보유한 스킬을 직접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평균 11개의 스킬을 나열하지만, AI를 통해 이들의 다차원적으로 분석하면 실제로 보유한 강점 스킬이 평균 34개까지 발굴될 수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구성원이 실제로 어떤 강점과 활용 가능한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지 스스로 발견하도록 진단, 워크숍, 프로젝트 경험 분석, 상사/동료 피드백 등의 기회를 제공하고, 그동안 축적해온 숨은 스킬과 강점을 구체적으로 언어화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구성원이 자신의 스킬을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되면, 변화하는 직무 환경 속에서도 “나는 무엇을 새롭게 배울 수 있는가”, “내 강점을 어떤 업무 장면에 확장할 수 있는가”를 주도적으로 탐색할 수 있습니다. 구성원이 자신이 쌓아온 고유한 강점, 자산, 가치를 재발견하게 되면, 자신에게 찾아온 변화를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후 개인의 장기적인 커리어 가치와 현재의 변화 환경을 연결해, AI와 기술 변화를 자신의 새로운 무기로 전환할 수 있도록 목표를 재정렬해야 합니다.
그리고 HRD는 이러한 자기이해를 바탕으로 개인의 재교육, 직무 전환 준비, 성장 계획 수립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2. 현업 팀장의 ‘커리어 코칭 대화’ 역량 강화
구성원과 가장 가까이에서 일하는 사람은 HRD 담당자가 아니라 현업 팀장입니다. 따라서 팀장은 구성원의 정서적 지원과 변화 관리의 최전선 역할이 점점 더 요구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팀장의 1on1은 단순히 업무 진척이나 성과를 확인하는 시간을 넘어서, 구성원이 AI 환경 속에서 느끼는 불안과 기대를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며, “시장에서 통하는 스킬을 키우고 있는가”를 함께 점검하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HRD는 팀장들이 구성원의 성장 방향을 함께 탐색하고, 변화 속에서도 경력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돕는 ‘커리어 코칭 대화’ 역량을 갖출 수 있는 교육과 훈련 기회를 지원해야 합니다.
3. 시니어와 주니어의 성장 파이프라인 연결을 위한 실전 학습 설계
AI가 주니어 직원들의 반복적 기초 과업을 대체하면서, 신입사원과 주니어 구성원이 업무를 통해 자연스럽게 배우던 경험의 기회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보조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일의 맥락, 판단 기준, 의사결정 방식을 익힐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 학습 과정이 생략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조직의 직무 역량이 전수되는 파이프라인이 끊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AI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학습 설계를 고민해야 합니다. 단순히 how-to를 배우는 것을 넘어 주니어가 시니어의 문제 정의, 판단 과정, 기획 흐름, 의사결정 기준을 관찰하고 실습할 수 있는 교육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실제 업무 사례를 기반으로 한 케이스 학습, 문제 해결 시뮬레이션, Project Based Learning, AI를 활용한 초안 작성 후 피드백, 의사결정 관점 비교 토론 등이 주니어들의 좀 더 고차원적인 사고 과정을 학습하도록 돕는 좋은 Tool이 될 수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역할 변화와 비자발적 경력 충격을 마주한 구성원에게 “알아서 적응하고 살아남으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구성원들이 겪는 ‘조용한 공황’을 외면하지 않고, 그 안의 불안을 주도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 에너지로 전환하도록 돕는 것. 기술 변화의 속도 앞에서 구성원이 스스로의 가치를 잃지 않도록 가능성을 발견하고 돕고 장기적인 성장을 지원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 이 시대가 HRD에게 요구하는 중요한 역할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