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은 안개 속에서 벌어진다. 지휘관은 완벽한 정보를 가진 채 싸우지 않는다. 불확실성 속에서 판단하고,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지 않고 움직이는 자가 전장을 지배한다." —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 『전쟁론』
조직은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직무를 해체하고 있다. 업무는 잘게 쪼개지고, 판단은 알고리즘으로 이동하며, 의사결정은 자동화된다. 단순히 반복적인 잡무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보고서를 쓰고, 전략을 제안하고, 의사결정을 보조하는 고차원적인 단계까지 이미 AI가 들어와 있다. 인간의 고유 성역이라 믿었던 '판단'의 영역까지 Agentic AI가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이제 조직은 사람 중심이 아니라 기능 중심으로 재편된다. 신입 채용은 줄어들고, 직무는 원자화되며, 특정 개인의 노하우에 묶여 있던 역할은 시스템으로 빠르게 이전된다. 심지어 어떤 기업들은 조직원들의 몰입을 높이는 '인게이지먼트(engagement)' 대신, 언제든 시스템으로 대체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언인게이지먼트(Un-engagement)' 를 전략적으로 선택하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거대한 구조적 전환이다. 많은 이들은 이전의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체감하고 있다. 오래 다니면 안전하다는 믿음도, 성실하면 보상받으리라는 기대도 예전만큼 단단하지 않다. 보이지 않는 균열이 발밑까지 차올랐음을 느끼면서도, 관성이라는 안락함 때문에 그저 내일로 변화를 미루고 있을 뿐이다.
AI가 어떤 직무를 대체할지, 내 조직이 어떻게 재편될지, 내가 5년 후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 —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안개 속의 전장이다. 그러나 클라우제비츠가 말했듯,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는 지휘관은 이미 전투에서 진 것이다.
"안개가 걷힐 때쯤이면 전투는 이미 끝나 있다."
나는 이 전장을 20년간 현장에서 직접 목격했다. 금융에서 시작해 HRD, 마케팅, IT, 사이버 보안 영역까지 — 나는 산업과 직무의 경계를 반복해서 넘었다. 단순히 직무를 옮겨 다닌 것이 아니었다. 비즈니스 트랜스포메이션(BT)과 리엔지니어링, 비즈니스 분석(BA), 변화관리(CM)와 조직개발(OD) 실무를 수행하며 조직의 체질이 어떻게 바뀌고, 일하는 방식이 어떻게 파괴되고 재편되는지 그 이면의 원리를 치열하게 파고들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
기업이 생존을 위해 스스로를 리엔지니어링하듯, 개인 역시 자신의 커리어를 재설계(Redesign)해야 한다.
산업과 명함이 바뀌어도 내가 붙들고 있었던 질문은 늘 같았다. '이 조직은 어떤 구조로 움직이는가. 이 문제를 더 나은 방식으로 재설계할 수는 없는가.' 나는 기능을 수행하는 부품으로 남기보다, 구조를 이해하고 판을 짜는 설계자로 전환하고 싶었다. 열 번이 넘는 이직을 거치며 배운 것은 이동의 기술이 아니라 구조의 기술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커리어 멘토링과 강연 현장에서 반복해서 들은 질문이 있다.
"남아야 할까요, 떠나야 할까요?"
나는 이렇게 되묻는다. "지금 당신은 기능으로 일하고 있는가, 설계자로 사고하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능력이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는 게 아니었다. 자신의 일을 구조적으로 설명하고 다음 기회로 연결하는 방법을 알지 못해서였다.
커리어 전쟁의 승패는 세 가지에서 결정된다
손자는 말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싸움에서 지는 자는 약한 자가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