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 출장의 두 번째 목적은 조금 특별했습니다.
유럽 직원 4명과 하루 8시간 동안 AI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사실 이 팀과의 교육은 올해가 처음이 아닙니다.
3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첫해에는 일하는 방식,
둘째 해에는 리더십과 성과관리,
올해는 AI와 일하는 방식을 주제로 잡았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한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AI를 배우고 끝내지 말자.
교육장을 나갈 때 직원들의 컴퓨터 안에 내일부터 실제로 사용할 무언가가 남아 있게 하자.
그래서 이번 교육의 원칙을 이렇게 정했습니다.
Learn Less. Build More. Use Tomorrow.
요즘 어느 회사나 AI 교육을 합니다.
프롬프트를 배우고,
ChatGPT를 써보고,
새로운 AI 서비스를 소개받습니다.
교육 당일 반응도 좋습니다.
“와, 이런 것도 되네요.”
그런데 며칠 후 찾아가 보면 직원들은 다시 예전 방식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
여러 번 교육을 기획하면서 저는 원인이 AI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교육이 ‘AI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반대로 시작해봤습니다.
“당신은 하루에 무슨 일을 합니까?”
그리고 그것을 하나씩 쪼개봤습니다.
직원들에게 자신의 업무를 나열하게 하고 세 종류로 나눠보게 했습니다.
① 사람이 직접 판단해야 하는 일
② AI가 초안을 만들고 사람이 검토하면 되는 일
③ 일정한 기준만 정해지면 AI에 상당 부분 위임할 수 있는 일
놀라운 것은 여기서부터였습니다.
AI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조직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왜 두 번 작성하지?”
“이 데이터는 왜 여기와 저기에 따로 있지?”
“본사에서 이 정보를 왜 다시 요청하지?”
“고객 미팅 이후 Follow-up은 누가 관리하지?”
평소에는 그냥 해오던 일들이 AI에게 일을 맡기려고 하나씩 설명하는 순간 이상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AI를 사용하려고 일을 쪼갰더니 업무의 비효율이 보인 것입니다.
이번 교육을 준비하면서 사실 저는 작은 CRM 형태의 시스템까지 미리 구상해 갔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유럽팀은 고객과 이메일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순간 고민했습니다.
“준비한 대로 갈까?”
결국 버렸습니다.
그리고 기존에 사용하는 업무 흐름 위에 AI를 어떻게 연결할지를 다시 설계했습니다.
HR에서도 비슷한 실수를 많이 합니다.
본사에서는 좋은 제도라고 생각하는데 현장에서는 또 하나의 일이 됩니다.
좋은 시스템이라고 도입했는데 직원들에게는 입력해야 할 화면 하나가 더 생깁니다.
그래서 이번에 다시 확인했습니다.
Transformation은 새로운 것을 하나 더 얹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일하는 방식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AI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후에는 설명을 줄였습니다.
대신 실제 데이터를 가지고 각자의 업무에 필요한 것을 만들었습니다.
엑셀 데이터를 정리하고,
고객과 영업활동을 연결하고,
Follow-up이 필요한 일을 찾아내고,
관리자가 한눈에 볼 수 있는 형태로 정리했습니다.
제가 붙인 이름은 EURAF Sales Command Center였습니다.
거창한 시스템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완벽한 IT 인프라가 구축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지금 가진 데이터와 도구로 작게 시작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하나 더 보였습니다.
같은 도구를 주어도 직원들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누군가는 기능을 따라 했고,
누군가는 자기 업무에 바로 적용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질문했습니다.
“이걸 팀 전체가 쓰게 만들 수 없을까요?”
HR을 오래 하다 보면 이런 순간에 눈이 갑니다.
AI를 잘 다루는 사람이 반드시 핵심인재라는 뜻은 아닙니다.
제가 본 것은 기술 숙련도가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도구를 자기 문제와 연결하는 능력,
모호한 상황에서 질문을 만드는 능력,
그리고 혼자 쓰는 것을 넘어 팀의 방식으로 바꾸려는 태도.
앞으로 조직에서 중요한 역량 중 하나가 바로 이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AI 활용능력보다 ‘AI 시대의 업무 재설계 능력’에 가깝다고 봅니다.
이번 출장에서는 교육과 함께 직원 4명과 각각 1:1 면담도 진행했습니다.
현재 역할은 어떤지,
무엇이 가장 힘든지,
더 맡고 싶은 역할은 무엇인지,
본사에 무엇이 필요한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AI 워크숍에서 본 모습과 1:1에서 들은 이야기를 겹쳐보니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누구에게 더 큰 역할을 줄 수 있을지,
누구에게는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Manager는 앞으로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본사와 현장 사이 어디에서 일이 막히는지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AI 교육을 하러 왔는데, 조직진단을 하고 있구나.”
그래서 AI 교육의 KPI를 바꾸려고 합니다
교육이 끝나면 보통 만족도를 묻습니다.
“교육이 유익했습니까?”
“강사의 설명은 이해하기 쉬웠습니까?”
물론 필요합니다.
하지만 AI 교육이라면 이제 다른 질문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6주 뒤에도 이것을 사용하고 있는가?
반복업무 하나라도 줄었는가?
의사결정이 빨라졌는가?
고객에게 써야 할 시간이 보고서 작성 때문에 줄어드는 일이 감소했는가?
그래서 이번 교육은 코펜하겐에서 끝내지 않았습니다.
직원들은 실제 업무에서 계속 사용해보고, 저는 약 6주 뒤 다시 만나 무엇이 살아남았고 무엇이 사라졌는지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살아남은 것만 남기고 다시 개선할 생각입니다.
많은 HR 담당자가 AI를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고민합니다.
그런데 이번 출장 이후 저는 조금 다른 가능성을 봅니다.
AI는 교육 도구이면서 동시에 조직을 들여다보는 렌즈가 될 수 있습니다.
직원에게 AI를 써보라고 하면 일이 보입니다.
일을 쪼개면 프로세스가 보입니다.
프로세스를 연결하면 조직의 병목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보면 사람이 보입니다.
그래서 HR 담당자라면 AI 교육을 기획할 때 이런 질문을 하나 더 넣어보면 좋겠습니다.
“이번 교육을 통해 우리는 직원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그리고 그 다음 질문입니다.
“이번 교육을 통해 우리는 우리 조직에 대해 무엇을 발견할 것인가?”
저는 코펜하겐에서 두 번째 질문의 답을 꽤 많이 가지고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