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사회 초년생으로 기업에 발을 처음 내딛으며 HR 병아리의 길을 시작했던 제가 그 후 2025년, 기업을 벗어나 노무사라는 직업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을 줄은 커리어 로드맵 상 생각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10년이라는 나름의 짧지 않은 시간동안 두 곳의 기업에서 교육, 평가, 보상, 채용 등 인사의 각종 기능을 수행했고 때때로는 법적 지식이 필요해 자문 노무법인의 노무사를 찾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끔씩 “우리 자문 노무사님은 왜 이렇게 원칙적으로만 말해? 법에서는 안 된다는거 다 알겠는데 그래도 될 수 있는 방법을 좀 찾아봐줘야지!”란 답답한 푸념을 하기도 했더랬죠.
그렇게 하루하루 인사담당자로서의 경험이 쌓여가던 중, 문득 제 주변에 있는 노무사 지인들을 보면서 “쟤도 노무사가 됐는데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란 오만하고 위험한(?)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사팀 10년 했는데 노무사 되는거 쉽지 않겠어? 뭐 이런 마음으로요... 물론 이런 마음은 실제 수험을 시작하고서 단 며칠만에 파사삭 깨졌습니다. (“쟤도 노무사가 됐는데”의 “쟤”를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된 것은 덤입니다.)
37살을 앞두고 시작한 수험으로 예상치못한 고생길을 약 2년 반에 걸쳐 경험하기는 했지만, 다행히 노무사가 되었고 이제 탄탄대로가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인사팀 실무 경험이 10년이나 있는데 내가 노무사로서 얼마나 잘하겠는가! 이런 마음이었죠. 역시나 이 마음은 법인에 노무사란 직업을 갖고 출근한지 며칠만에 파사삭 깨졌습니다. 그건 위에서 말한 “우리 자문 노무사님은 왜 이렇게 원칙적으로만 말해?”의 답을 찾은 순간이었습니다.
‘권리와 의무의 내용을 규율’하는 실체법의 성격을 가진 노동법은 그 특성상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상황이 많지 않고, 굉장히 다양한 사례의 해석을 요구받습니다. 자문을 요청받는 입장에서는 의뢰인(사용자 또는 근로자)에게 최적의 답을 찾아주어야 하지만, 법은 전제에 이미 많은 제약을 두고 있고 그 제약을 털어내고 상대가 만족스러워 할 답변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기에 ‘원칙적인 답변’이 노무사로서 가장 안전한 선택지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의뢰인에게 좋은 노무사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노동법을 잘 알고 원칙적인 답변만을 하는 것을 넘어서서, 의뢰인의 상황을 깊이있게 이해하고 상황에 맞는 최적의 솔루션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학습하고 다양하게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인사담당자로서 자문 노무사님께 답답했던 점은, ‘원칙을 지키고 싶지 않다.’가 아니라 ‘원칙을 지킬거지만, 그럼에도 내가 직면한 이 상황을 내 문제처럼 고민해줬으면 좋겠다.’였기 때문이죠.
노무사는 한자로 勞務社,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힘쓰는 선비”를 의미합니다. (최근 MBC에서 방영한 드라마에서도 의미가 한 번 언급됐었죠.) 늘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힘써야 할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무엇을 진짜 필요로 하는지를요. 여기서의 ‘일하는 사람들’은 넓은 의미의 사용자일수도(특히나 인사담당자는 거의 대부분 모두가 사용자에 해당하니까요), 근로자일수도 있겠죠.
원칙만으로 말하는 것이 아닌, 10년을 쌓아왔던 인사실무자의 경험을 바탕삼아 노무사로서의 법적 전문성과 실무자로서의 현실감각을 조화롭게 엮어내는 글을 쓰고자 합니다. 앞으로 오프피스트에서 HR과 ER에 관한 다양한 영역을 [인실노이] 시리즈의 형태로 읽기 편하게 풀어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