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십시오. 두번째로 준비한 오늘의 메뉴는 '무임승차처럼 보이는 팀원을 다루는 법'입니다.
핵심은 두 가지 맛을 동시에 살리는 일입니다. 하나는 '공정'의 맛, 다른 하나는 '학습'의 맛.
먼저 진단부터 하겠습니다. 요리를 하기 전 '미장플라스Mise en Place'를 갖추듯, 상황의 실체를 정리해야 불을 제대로 올릴 수 있습니다. 먼저 재료부터 주방에 잘 모아둬보죠. 흘리거나 놓치는 재료가 없게 말이에요.
무임승차로 ’보이는’ 장면은 대개 세 부류입니다.
첫째, '가시화 결핍'입니다. 분명 뒷주방에서 칼을 놀리는데 홀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A대리는 매일 새벽같이 출근해 데이터를 정제하고, 오류를 잡고, 문서를 정리합니다. 그러나 회의에서는 말이 없습니다. 슬랙이나 노션에도 업데이트가 없습니다. 완료된 티켓도 본인이 직접 '완료'로 옮기지 않습니다. 결과물은 공유 폴더 깊숙한 곳에 조용히 올라가 있을 뿐이죠. 반면 B대리는 회의 때마다 '진행 중입니다', '검토했습니다'를 이야기하고, 슬랙에 중간 스크린샷을 올립니다. 누가 더 일하는 것처럼 보일까요? 당연히 B입니다. A는 뒷주방에서 육수를 끓이고 재료를 전처리하는데, 홀에서는 B씨가 접시를 나르는 모습만 보입니다. 그러다보니 A에 대해서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무임승차했다는 오해가 생기곤 합니다.
둘째, '역할 모호'입니다. 누구 접시인지 경계가 흐려 주문이 공중에 떠 있는 경우입니다.
가령 '고객 온보딩 자료'라는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기획은 C과장, 디자인은 D대리, 검수는 E과장이 맡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최종 산출물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회의록엔 세 사람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습니다. 잘 되었을 때도 문제인데 잘 풀리지 않을때 D대리는 "기획이 늦어서요"라고 하고, C과장은 "디자인 검토가 안 끝나서요"라고 하고, E과장은 "제 차례가 안 왔어요"라고 합니다. 마감 전날 밤, 누군가는 급하게 조각을 이어붙입니다. 대개 E과장이 합니다. 그러나 기여도 평가 때는 세 사람 이름이 똑같이 올라갑니다. E과장은 뒷맛이 씁니다. 접시의 주인이 셋이면, 결국 아무도 주인이 아닙니다. 업무를 지시한 상사의 경우 이 셋 모두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기 힘들 수 밖에 없습니다. 거기에 E과장은 C와 D에 대해 무임승차라고 오해할 만 하죠, 마치 대학 떄 조별과제의 악몽처럼 말입니다.
셋째, '보상 비대칭'입니다. 담근 장은 누구나 퍼다 쓰는데 소금은 한 사람만 뿌리는 구조입니다.
F대리는는 지난 분기에 빠른 업무 진척을 위해 '템플릿 라이브러리'를 만들었습니다. 제안서 양식, 계약서 초안, 보고서 구조까지 마치 레시피북을 만든 것과 같습니다. 이제 팀원 모두가 F대리가 구성한 레시피북을 펼쳐 요리를 합니다. 그런데 분기 성과 발표 때 G과장은 "템플릿 덕분에 제안서 10건을 빠르게 완료했습니다"라고 보고하고, H대리는 "고객 계약 5건 체결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F대리는? "템플릿 라이브러리 구축"이라고 한 줄 적습니다. 아무 숫자가 없으니 임팩트가 안 보입니다. 모두가 F대리의 장독대에서 장을 퍼갔지만, 보상은 요리를 완성한 이들에게만 돌아갑니다. F씨는 점점 '기반 작업'을 꺼리게 되고, 팀은 결국 눈에 보이는 접시만 다투게 됩니다. 깊은 맛의 장을 담그는 사람없이 소금 뿌리는 사람만 늘어납니다. 결국 모두에게 유용했던 템플릿 라이브러리는 몇 개월이 지난 후에 그저 그룹웨어 게시판 깊숙한 곳에 숨어버리죠.
이 셋 가운데 무엇이 원하시는 주재료인지 가려내는 것이 첫 단계입니다.
자, 이제 어떤 코스로 드실 지 설명드려야겠죠? 이번에 저는 세 단계 코스로 준비했습니다. 위에서 힌트를 드렸으니 아시겠죠?
'가시화 → 재설계 → 약속’ 의 코스입니다.
불 조절은 차분히, 양념은 절제해서 준비해보겠습니다.
첫 코스는 '가시화'입니다. 말 대신 표기를 씁니다. 모든 일을 작은 지침과 분담의 티켓으로 쪼개 접시에 올립니다. 각 티켓엔 '업무 담당자·기한·산출물’을 적습니다. 칼질 소리만 요란한 접시는 금물입니다. '오늘 무엇을 끓였는지'가 아니라 '언제 무엇을 내놓을지'가 보여야 합니다. 주방 벽에는 한 장 보드를 붙입니다. '계획·진행 ·보류·완료' 네 칸이면 충분합니다. 규칙은 간단합니다.
1. '보류'에 24시간 넘게 머물면 반드시 도움을 요청합니다. 능력부족이든 외부환경이든 막히는 것은 막히는 것이니 최대한 도움을 요청해야겠죠?
2. 업무에 대한 기본적인 리뷰는 되도록 24시간 안에 끝냅니다.
3. '완료'는 사전에 정의된 산출물과 함께만 이동한다. 이 세 줄이면 가시화의 기본 육수가 납니다.
둘째 코스는 '재설계'입니다. 모호하게 보이는 역할을 단단히 묶습니다. 팀이 '판갑옷'처럼 굳지 않게, '찰갑옷'의 유연함으로 조각을 나누되 연결은 튼튼하게. 한 주에 두 개 내외의 핵심 업무에 '오너십'을 부여합니다. 오너는 끝까지 책임지고 서빙합니다. 대신 기여를 '시간'이 아닌 '완료된 산출물'로 측정합니다. 여기에 '가중치'를 얹습니다. 고객 영향이 큰 요리는 배점을 높이고, 가니쉬같은 잡채소는 낮춥니다. 간단한 표준을예로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기여 점수 = 산출물 배점 × 품질(0.8~1.2) × 적시(0.8~1.1)'. 복잡하지 않아야 매일 씁니다.
셋째 코스는 '약속'입니다. 문책이 아니라 약속입니다. 무임승차처럼 보이는 분에게는 가벼운 접시 두 개를 동시에 올리지 않습니다. 하나에만 집중하게 하고, 성공의 모양을 아주 구체적으로 정의합니다. 그렇게 정의되고 수행한 서로 다른 두 업무의 결과가 같아진다면 그다음엔 '재배치 →교육 →분리' 순으로 옵션을 검토합니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습니다. 인사는 사람의 업을 돕는 일입니다. 돕는 절차가 빠져 있으면 약속은 악수가 아닌 삿대질로 변합니다.
이제 대화의 소스를 끓여보겠습니다. 레시피는 지난 시간에도 소개드렸던 익숙한 '3·2·1'입니다. 접시에 '사실Fact 3개'를 바닥으로 깔고, '영향Impact 2개'를 위에 얹고, 마지막에 '요청Request 1개'를 데코로 올립니다. 저번에도 드린 말씀이지만 아무리 미운 상대라도 개인 감정은 주방 밖에 두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가장 신경써야하는 맛은 '공정'의 맛이니 말입니다.
가시화 요청 스크립트를 먼저 담아보죠.
(사실 하나) 지난주 티켓 12개 중 세 분의 이름이 반복되고 대리님 이름의 '완료'는 0개입니다.
(사실 둘) 금요일 고객 미팅 자료에서 담당 표기가 비어 있었습니다.
(사실 셋) 월요일 스탠드업에서 대리님의 담당 작업은 '지원'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영향 하나) 고객 미팅 자료나 여타 자료에서 현재 대리님의 기여가 보이지 않아 팀 공정감이 흔들립니다.
(영향 둘) 대리님 담당 업무가 완료되지않아 일정 예측이 불안정해졌습니다.
(요청 하나) 이번 주 수요일까지 본인 오너십 티켓 2개를 등록하고, 산출물·기한·막힘 기준을 함께 적어주세요. 만약 필요하다면 제가 오늘 오후 3시부터 1시간 동안 지원해드릴게요. 더 필요한 지원이 있으면 말씀주셔도 좋습니다.
양념이 생각보다 많이 안들어가죠? 꽤 담백합니다. 그렇다면 재설계에 필요한 오너십 재부여도 한번 담아보겠습니다.
(사실 하나) 지난 한 달간 과장님이 완료하신 업무가 하나네요.
(사실 둘) 그런데 리뷰와 지원요청 표기는 10회를 넘습니다.
(사실 셋) 그러다보니 결과물은 과장님이 아니라 팀이 완료한 셈이네요. 고과도 그렇게 반영되었구요.
(영향 하나) 분명 업무 자체는 과장님의 업무인데..'끝까지 맡는 사람'이 고르게 배분되지 않았습니다.
(영향 둘) 고객이 다음 약속을 과장님에게만 묻습니다.
(요청 하나) 다음 2주 동안은 'A고객 온보딩' 티켓에 대한 오너로 과장님을 단독 표기합니다. 완료 정의는 '고객이 독자 사용 가능한 가이드와 15분 동영상'입니다. 다음주 금요일 오전에 초안 점검을 하시죠.
흔히 생각한 오너십과 다르죠? 사실 오너십은 단순한 주인의식이 아닌 나의 일을 스스로 규정하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니 거창한 이름과 달리 별 거 없다고 나무라실 필요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약속의 대화를 담아보도록 하죠. 약속 단계의 스크립트는 한층 더 또렷하게 담습니다.
(사실 하나) 팀장님, 팀장님께서 지난 4주간 수행한 업무 중 스스로 정의한 산출물 3건 중 1건만 제때 나왔습니다.
(사실 둘) 보류가 된 건이 2건 있었던 셈이지만 만 실제 '보류' 표기는 없었습니다.
(사실 셋) 또 관련 업무에 대한 회의 결석이 최근 4주 간 두 번 있었습니다.
(영향 하나) 보류된 일정으로 인해 팀 일정이 흔들려 고객 납품이 미뤄졌습니다.
(영향 둘) 이에 대해 팀 내 분위기가 흐트러지고 있습니다.
(요청 하나) 다음 2주를 '집중 구간'으로 설정합니다. 출근 직후 10분에 목표를 공유해주세요, 목표를 달성하면 역할을 유지하고, 미달 시에는 역할 재배치와 보상 조정을 논의하겠습니다. 이건 팀장님을 문책하는 게 아닙니다. 팀장님이 팀원들로부터 신뢰를 되찾는걸 함꼐 도와드리고자 합니다. 필요한 지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이때 목소리는 낮추되 문장은 선명해야 합니다. 단맛은 그런 선명함에서 배어나옵니다.
무임승차처럼 보이는 현상은 종종 '가시화 실패'의 착시입니다. 그래서 저는 늘 '보이는 규칙' 다섯 가지를 둡니다. 뭐, 개인적인 규칙이긴 하지만요.
첫째, '목표 없는 일 금지'.
둘째, '24시간 이상 업무 표류 금지'.
셋째, '리뷰 24시간 내 완료'.
넷째, '핵심 업무 2개 한정'.
다섯째, '60자로 하루 돌아보기’.
이 다섯 가지는 소금처럼 끝맛을 잡아줍니다. 어, 그런데.. 더 뿌리면 짭니다. 적당히만 쓰십시오.
보상의 간은 이렇게 봅니다.
'성과가 보이는 단위'로 나눕니다. 한 달에 한 번, 기여 점수를 정산하고 '상·중·하' 세 칸으로만 구분합니다. 미세한 숫자놀음은 요리를 망칩니다. 상은 즉시 보상하고, 하는 즉시 살핍니다. 중은 다음 접시에 배치로 보상합니다. 보상은 한 번에 크게, 수정은 작게 자주. 이것이 조직의 미각을 길들이는 방법입니다.
혹시 '정말 무임승차라면?'이라고요. 그렇다면 마지막 접시는 간단합니다. '짧은 교육·분명한 계약·온화한 이별'. 인사는 끝도 요리입니다. 차갑게 돌려보내지 말고, 따뜻한 국 한 그릇의 예를 갖춥니다. 물론 무임승차 했다고 바로 떠나보낼 수야 없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같이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함께한 시간이 남긴 레시피를 정리해 팀 노트에 남기고, 빈자리는 메워 리듬을 잃지 않습니다. 떠난 자리의 냄새를 오래 맡지 마십시오. 주방은 늘 다음 주문을 맞아야 합니다.
오늘의 한 접시는 이렇습니다. '가시화로 보이게 하고, 재설계로 맡기고, 약속으로 지킨다.' 여기에 '3·2·1' 소스를 얹으면, 공정의 향이 업무욕구를 자극하고 팀은 다시 배가 고파집니다.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인사는 길들이기가 아니라 돕는 일입니다.
오늘 이 레시피를 손님의 주방 사정에 맞게 덜고 보태어 바로 써 보십시오. 내일부터 달라지는 것은 메뉴가 아니라 '맛'일 것입니다. 추석 연휴로 기름진 요리는 많이 드셨을테니 남은 10월은 건강한 공정의 맛으로 함께 채워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