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기업에서 일한 뒤 국내 대기업으로 옮겼을 때, 최종 면접으로 임원면접 단계였다.
"지금 있는 회사는 HR 구조가 어떻게 돼요?"
내가 답했다.
"인사팀장님에게 보고합니다."
면접관이 다시 물었다.
"조직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길래 본인이 인사팀장에게 보고해요?"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다녔던 외국계 기업에서 Team Manager나 Team Lead는 대체로 실무 조직을 이끄는 관리자를 의미했다. 그런데 그 국내 대기업에서의 인사팀장은 상무급 임원이었고, 전사 조직과 인사제도, 임원 인사, 노사관계 등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고위 경영진이었다. 당시에는 ‘팀장인데 어떻게 상무일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해당 기업의 조직체계를 이해하면서 이유를 알게 됐다. 상무는 조직 내 위계를 나타내는 직급이고, 팀장은 현재 맡고 있는 역할을 나타내는 직책이다. 상무도 팀장을 맡을 수 있고 부장도 팀장을 맡을 수 있다. 같은 팀장이라도 조직 규모와 보고 라인, 의사결정 권한은 크게 다르다. 국내 조직 안에서는 구성원들이 이러한 맥락을 자연스럽게 이해하지만,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기기 시작한다.
한국 기업의 인사제도에는 여러 층위가 동시에 존재한다.
직급: 대리, 과장, 부장, 상무, 전무
직책: 팀장, 실장, 본부장, 법인장
직무: HR, Finance, Sales, Operations
조직 범위: 팀, 사업부, 국가, 지역, 그룹
법적 지위와 권한: 등기 여부, 법인 대표권, 계약 및 은행 서명권
‘인사팀장 상무’라는 표현만 봐도 직급과 직책, 직무가 함께 들어 있다. 여기에 등기임원이나 법인 대표자라는 지위까지 더해질 수 있다. 한국어로는 각각을 구분해 표현할 수 있다. 구성원들은 ‘상무’라는 직급과 ‘인사팀장’이라는 직책을 함께 들으며 그 사람의 조직 내 위치를 이해한다. 영어에서는 어떤 정보를 타이틀에 담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인사팀장을 HR Team Lead로 번역하면 상무급 역할이 중간관리자로 축소될 수 있다. 반대로 상무를 일괄적으로 Vice President로 번역하면 실제로 어떤 조직과 기능을 책임지는지 드러나지 않는다.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같은 상무가 Vice President, Executive Director, Senior Director 또는 Managing Director로 제각각 표기된다. 같은 팀장도 Team Lead, Manager, Head of 또는 Director로 다르게 번역된다. 영문 타이틀을 정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할 것은 이 타이틀로 무엇을 보여줄지이다. 이 타이틀로 직급을 보여줄 것인가, 실제 역할과 책임을 설명할 것인가.
해외 법인장은 GM인가, MD인가
대기업에서 글로벌 HR을 맡게 된 뒤 전사의 글로벌 영문 타이틀을 정리하는 프로젝트를 맡았다. 국내 본사의 직급뿐 아니라 해외 법인장과 사업 책임자의 타이틀도 정비해야 했다. 해외에 주재원으로 파견가 있던 한 법인장이 나에게 의견을 전했다. 법인장은 "GM , General Manager" 라고 타이틀을 사용하게 해 주세요. 그에 대해 당시 나는 해외 법인장을 Managing Director, 즉 MD로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계 회사였던 첫 직장에서는 사장은 Managing Director 로 표기했고, 원어민인 영국 사람들이 사장을 Managing Director 라고 불렀으니까 맞는 것이려니 했다. 게다가 Manager보다 Director가 높으니 General Manager보다 Managing Director가 더 높은 직책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내 이해가 부족했다는 것은 수년이 지난 뒤에 다른 회사에서 경험이 쌓이면서 깨닫게 되었다.
GM과 MD는 일렬로 세워 높낮이를 비교하기 어려운 타이틀이다. 두 타이틀은 서로 다른 종류의 책임을 설명할 수 있다.
GM은 ‘일반 관리자’가 아니다
네이버 블로그 등 인터넷에 많은 글들이 "General Manager "를 부장으로 설명한다. 내 경험상으로는 그렇게 보면 오해의 소지가 매우 크다. General Manager는 특정 기능에 한정되지 않고 사업 전반을 총괄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그래서 “사장” 을 General Manager 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국계 사업부제 조직에서는 하나의 Business Unit을 독립적인 사업체처럼 운영하면서 그 책임자에게 GM이라는 타이틀을 부여하는 경우도 있다. Country GM, Business Unit GM, Regional GM도 같은 맥락에서 사용된다.
GM은 일반적으로 매출과 비용을 아우르는 P&L 책임과 연결되지만, 구체적인 권한은 기업의 조직구조와 Delegation of Authority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GM의 수준은 타이틀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어떤 사업 단위를 책임지는가, P&L 책임을 갖고 있는지, 가격과 투자에 관한 권한이 있는지, 조직과 인력에 관한 의사결정권을 갖는지, 하나의 국가를 책임지는지, 여러 국가를 관할하는지에 따라 다르다. 대규모 사업과 조직을 책임지는 GM은 독립적인 사업 단위의 최고 운영책임자에 가까울 수 있다. 하나의 공장이나 호텔, 소규모 사업장을 운영하는 GM도 있다. 중요한 것은 GM이라는 단어보다 그 뒤에 있는 Business Scope와 Decision Authority다.
MD는 법인 차원의 역할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Managing Director도 국가와 산업, 기업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 영국과 일부 국가에서는 회사를 총괄하는 최고경영자를 Managing Director라고 부른다. 유럽의 현지 법인에서는 법적으로 회사를 대표하는 등기임원의 영문 타이틀로 사용되기도 한다. 금융업에서는 법인 대표권과 관계없이 고위 임원 등급을 나타내는 내부 타이틀로 쓰이기도 한다. 따라서 Managing Director라는 명함만 보고 법적 대표권이 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실제 지위는 현지 회사법과 상업등기, 회사 정관, 주주 또는 Board의 권한 위임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영국에서도 등록된 Director는 회사 운영과 법정 신고에 책임을 지지만, 상업적으로 사용하는 Managing Director라는 직함만으로 법적 Director의 지위가 자동으로 부여되지는 않는다.
한 사람이 내부적으로 Country GM 역할을 수행하면서 법인에는 Managing Director로 등기될 수 있다. 반대로 사업을 이끄는 GM과 법인을 대표하는 등기임원이 서로 다를 수도 있다. 복수의 Managing Director가 내부적으로 영업, 운영, 재무 영역을 나누어 담당하는 구조도 가능하다.
조직 운영의 관점에서 GM은 주로 어떤 사업과 P&L을 책임지는가를 보여준다. MD는 경우에 따라 어떤 법인을 경영하고 대표하는가와 연결된다. 물론 이것도 국제적으로 통일된 공식은 아니다. 타이틀만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고 회사의 조직구조와 현지 법인의 등기 상태를 함께 확인해야 한다.
해외 법인장이라는 하나의 타이틀에 담긴 여러 책임
내가 국내 대기업에서 글로벌 HR을 하던 시기에는 한국 본사에서는 해외 법인장을 한 명의 포괄적인 책임자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실제 글로벌 조직에서는 법인장의 권한이 여러 층위로 나뉜다.
사업 책임: 매출, 비용, 수익성, 시장과 고객
조직 책임: 현지 조직과 인력, 리더십, 성과관리
법인 대표 책임: 계약, 세무, 규제와 회사법상 의무
거버넌스 책임: 주주, Board, 본사에 대한 승인과 보고
서명 권한: 계약, 은행, 자금과 정부기관 관련 서명
이 권한이 모두 한 사람에게 주어질 수도 있고, 여러 사람과 기관에 나뉠 수도 있다. 사업을 총괄하는 Country GM이 법적 대표자가 아닐 수 있다. 법적 대표자가 중요한 투자와 조직 결정을 독자적으로 내리지 못할 수도 있다. 계약 서명권과 은행 계좌의 서명권이 서로 다르게 설정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해외 법인장을 MD로 할 것인지 GM으로 할 것인지 결정하기 전에,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떤 책임과 권한을 갖고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UAE에서는 세 가지 권한 영역을 구분해야 한다
두바이, UAE 법인은 나를 가장 헷갈리게 했던 국가 중 하나였다.
법인장을 변경하는데, 세가지 역할 중 어디를 변경하겠냐고 현지 변호사가 나에게 질문했다. 그때 두바이 법인장에게는 세가지 역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째는 법인의 일상적인 경영과 대외적 대표를 맡는 Manager의 권한이다. 둘째는 주주총회나 Board 등 회사 형태와 정관에 따라 구성되는 governing body의 의사결정 및 감독 권한이다. 셋째는 비자와 노동, 인허가, 정부기관 제출 업무를 수행하는 PRO 또는 Government Relations 기능이다.
이 세 영역은 동등한 법적 직책이 아니다. UAE의 LLC는 한 명 이상의 Manager가 경영하는 구조가 일반적이며, 모든 LLC에 Board of Directors가 설치되는 것도 아니다. PRO 역시 회사법상 대표기관보다는 정부 행정 절차를 수행하는 기능에 가깝다. UAE 회사법은 LLC와 주식회사 형태를 구분해 규율하며, Free Zone은 해당 관할의 별도 규정이 적용될 수 있다. 실제 권한 구조는 법인의 설립 형태와 관련 문서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아래는 현지 변호사와 확인했던 체크리스트 이다.
Mainland와 Free Zone 중 어디에 설립되었는가
MOA에 누가 Manager로 지정되어 있는가
주주 또는 Board는 어떤 권한을 위임했는가
누구에게 Power of Attorney가 부여되었는가
정부기관과 은행에는 누가 Authorized Signatory로 등록되어 있는가
단독 또는 공동 서명 조건은 어떻게 설정되어 있는가
본사가 누군가를 Country GM으로 발령했다고 해서 현지법상 대표권과 Board 권한, 은행 서명권, 정부기관 대응 권한이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UAE 사례는 글로벌 타이틀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명함 위 타이틀과 실제 권한은 별도의 문서와 절차를 통해 연결된다.
‘상무님 팀장’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상무급 인사팀장의 영문 타이틀에는 하나의 정답이 없다.
전사 HR을 총괄하고 CEO에게 보고하며 주요 경영 의사결정에 참여한다면 Head of HR, HR Director 또는 Vice President of HR 등 회사의 타이틀 체계에 맞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 그룹 전체의 최고 HR 책임자라면 CHRO를 고려할 수 있다. 소규모 HR 운영팀을 책임진다면 HR Manager 또는 HR Team Lead가 적합할 수 있다. 사람을 직접 관리하지 않으면서 특정 전문 영역을 이끄는 역할이라면 Compensation Expert, Talent Management Specialist 또는 HR Project Lead 같은 타이틀이 역할을 더 정확히 설명한다.
그래서 영문 타이틀을 만들 때는 한국어 직책을 그대로 번역하기보다 실제 역할과 권한에 맞는 타이틀을 선택해야 한다. 이때 회사가 C-Level, VP, Director, Head of와 같은 타이틀을 얼마나 넓게 또는 제한적으로 사용하는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C-Level을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유럽계 기업들
영문 타이틀에는 회사가 위계와 권한을 바라보는 철학도 반영된다. 미국계 기업이나 스타트업 중에는 인재 유치와 대외적인 위상을 고려해 Vice President, Director, Chief 같은 타이틀을 비교적 폭넓게 사용하는 곳이 있다. 반면 타이틀 인플레이션에 민감하고, 임원 타이틀을 보수적으로 관리하는 유럽계 기업도 있다. 보수적인 회사에서는 CFO와 CHRO라는 타이틀은 본사 최고경영진인 Board member 만 사용할 수 있다. 지역이나 사업부, 해외 법인에서 해당 기능을 총괄하더라도 CFO나 CHRO라고 부르지 않는다. 어느 한 방식이 국제적으로 올바르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회사가 C-Level, VP, Director, Head of를 어떤 기준으로 부여하는지 명확하게 정하고, 같은 원칙을 일관되게 적용하는 것이다.
Assistant Manager 대신 직무가 드러나는 타이틀을 사용하자
예전에는 많은 기업이 한국의 대리와 과장을 Assistant Manager로 일괄 번역했었다. 이 경우, 직급과 실제 역할 사이의 혼선이 생긴다. 한국에서 대리와 과장은 승진 단계다. Manager를 보조하거나 사람을 관리한다는 의미를 반드시 포함하지 않는다. Assistant Manager는 해외에서도 사용되는 타이틀이다. 다만 Retail, Hospitality, 지점 운영 등의 분야에서는 Manager를 보좌하는 부관리자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상당한 전문성과 경험을 갖춘 실무자를 Assistant Manager라고 부르면 외부 노동시장에서 역할의 수준이 낮게 평가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오해를 줄이려면 직급을 번역하기보다 실제 직무에 맞는 타이틀을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Compensation Expert, HR Controlling Specialist, Financial Analyst, Learning and Development Consultant, HR Project Lead, Principal Engineer 등.
모든 대리와 과장을 일괄적으로 Expert로 바꾸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Expert, Specialist, Analyst, Professional, Consultant, Principal은 직무의 성격과 숙련도에 따라 구분해야 한다. 유럽계 기업에서는 특정 분야의 숙련된 Individual Contributor에게 Expert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지만, 영미권 기업에서는 Specialist나 Senior Specialist가 더 자연스러울 수 있다. 해당 회사가 속한 사업군, 문화권에 따라 맞춰 사용해야 한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직무 타이틀과 경력 레벨을 분리하는 것이다.
Job Title: 실제 수행하는 업무
예: Compensation Specialist, Financial Analyst
Career Level 또는 Corporate Grade: 숙련도와 보상 수준
예: Professional, Senior Professional, Grade 12
이렇게 하면 해외 구성원은 타이틀을 통해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회사는 별도의 Career Level을 통해 내부 위계와 보상 수준을 관리할 수 있다.
하나의 타이틀에 모든 정보를 담지 말아야 한다
글로벌 영문 타이틀을 표준화할 때는 최소한 다음 항목을 구분해야 한다.
Global Job Title : 외부에서도 이해할 수 있는 실제 직무
Local Position Title : 팀장, 본부장, 법인장과 같은 로컬 직책
Corporate Grade 또는 Career Level „ 상무, 부장, Senior Professional과 같은 내부 레벨
Business Scope : 팀, 국가, 지역, 사업부 또는 그룹
Legal Entity Role : 현지 회사법상 Director, Manager 또는 기타 등기 지위
Representation and Signing Authority
이 구조를 사용하면 인사팀장을 Team Lead로 축소하지 않으면서도, 상무를 기계적으로 VP로 번역하는 문제를 피할 수 있다.
타이틀 너머의 조직을 읽는 일
글로벌 HR 업무에서 영문 타이틀은 영어를 잘한다고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권한과 책임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해당 국가의 법과 기업문화가 그 역할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알아야 한다. 좋은 글로벌 타이틀 체계는 한국의 직급을 그럴듯한 영어로 바꾸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실제로 하는 일과 책임지는 범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조직 안팎에서 일관되게 이해하도록 만드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