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사업팀이 독립하기 한 달 전, HRBP로서 신규 법인에 합류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저를 포함해 기껏해야 5명 정도인 초소형 조직에서 HR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스스로도 답을 찾기 어려웠고,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HR의 역할이란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게 됐습니다.
새로운 법인의 시작은 생각보다 더 무질서했고, 훨씬 더 자유로웠으며, 무엇보다 사람이 전부였습니다. 정해진 구조도, 명문화된 제도도, 자동화된 툴도 없이 시작한 이 작은 팀에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 글은 신규 조직이 구성되는 시작점에 HR이 합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합류 후 어떤 과정으로 조직을 설계했는지를 기록한 현장형 회고입니다. 비슷한 환경을 경험하고 있거나 신규 조직 셋팅을 준비 중인 HR 동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팀 합류 제안을 받고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우리가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은 어떤 특성을 갖는가?' 라는 질문을 팀원들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기존 신규사업팀 인원들과 함께 모여 각자 생각하는 이상적인 동료의 모습을 이야기 했고, 기술적 역량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며, 일할 때 무엇이 불편했고, 어떤 점에서 신뢰를 느끼는지 등 업무상황에 빗대어 최대한 구체적인 언어로 각자의 생각을 꺼내어 볼 수 있게 유도 했습니다. 이 대화를 통해 얻은 구체적인 키워드를 바탕으로 팀의 인재상을 문서로 정리했으며, 이는 이후 채용과 피드백 기준으로 연결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대표님과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조직의 모습은 무엇인가?' 라는 주제로 오랜 시간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불확실한 상황과 빠른 변화 속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인드셋은 무엇이며, 꼭 지켜야 할 기준과 '일을 잘한다'는 의미가 우리 조직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정의되는지 등을 HR의 시각으로 정리해 공유 드렸고, 이를 바탕으로 긴 시간 이야기 나누며 핵심가치와 일하는 방식, 커뮤니케이션 규칙 등을 우리 문화만의 언어로 정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조직문화는 단순한 구호나 추상적인 가치가 아닌, 조직 내부에서 실제로 사용되고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정의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언어를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HR의 중요한 역할임을 실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의된 문화가 조직 안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제도와 프로세스를 설계 했습니다.
채용 프로세스
인재상 기반의 질문 구조
평가 기준과 인터뷰어 가이드
온보딩 플랜
신규입사자가 빠르게 팀과 합을 맞출 수 있는 구조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는 구조
피드백 문화
피드백의 정의와 목적 정립
방향성과 주기, 마인드셋의 원칙 수립
성과 관리 체계
성과의 정의와 측정 방식
관리 주체 및 운영 방법
평가 및 보상 시스템 설계
각 항목은 조직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문서화했습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체화되고, 구성원의 행동으로 발현될 수 있는 구조를 지향했습니다. 동시에, HR 제도와 프로세스는 언제든 변화 가능한 구조임을 알리며 조직의 성장과 맥락에 맞게 업데이트해가고 있습니다.
신규 조직의 시작점에 HR이 함께 한다는 것은 단순히 제도와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업무 환경을 구성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과 문화, 철학을 바탕으로 조직의 뼈대를 세우고 방향을 제시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완성된 답을 통보하기 보다는 구성원과 함께 질문하고 방향을 고민하며 유기적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 그것이야말로 초기 조직에서 HR이 할 수 있는 가장 전략적이고 의미 있는 일이라는 걸 경험했습니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여정은 매우 고단하지만, 동시에 가장 창의적인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저의 회고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HR 동료들에게 작은 용기와 실질적인 힌트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