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2025년 말, 2026년 예산을 마무리하며
많은 회사에서 3사분기와 4사분기는 다음 해 예산안을 편성하느라 가장 바쁜 시기다. 내가 일했던 기업들도 대부분 7월 말부터 예산 작업을 시작해 11월 말에 마무리했으며, 특히 10월부터 11월까지는 재무, 인사, 최고경영진 간 예산안에 대한 수차례 논의, 조정, 재검토가 이어졌다.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버짓팅 과정이 무겁고 치열하게 느껴졌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매년 긴축경영, 위기경영을 경험했지만, 향후 2~3년의 경제 전망은 불확실성이 두드러진다. 국제기구들은 공통적으로 “성장은 유지되지만 속도는 둔화되고, 리스크는 여전히 크다”고 경고한다. OECD는 ’25~’26년 세계 성장률을 약 2.9%로 전망하며 무역 갈등과 정책 불확실성을 주요 하방 요인으로 제시했고, IMF와 세계은행은 지정학적 긴장, 무역 분절화, 국가 부채 수준을 핵심 리스크로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 관세 인상 가능성, 주요국 금리 방향성 변화, 글로벌 공급망 재편, 그리고 올해 유난히 컸던 달러·유로 환율 변동성까지 더해지며 VUCA 한 경영환경이 더욱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이런 환경에서 재무 조직은 더 보수적으로, 더 효율적으로, 더 비용 민감하게 움직이려 한다. 그리고 이런 시기마다 가장 먼저 검토 대상이 되는 영역이 HR이 다루는 인력과 비용 구조다. 실제로 많은 HR 리더들이 2026년을 준비하며 채용 속도를 늦추고, 직원 교육을 중단하고, 일부 포지션을 동결하거나, 경우에 따라 인력 조정 시나리오까지 검토한다. 이런 시기에 HR 은 어떻게 경영진의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우리팀의 HR BP들에게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나는 내 영역의 비용 구조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가?”
“나는 내가 맡은 영역의 비용구조가 회사의 전략과 성과에 어떤 임팩트를 만드는 지 설명할 수 있는가?”
2. 비용 절감만으로는 버텨낼 수 없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일단 줄이고 보자”는 압박은 커진다. 채용, 교육, 복리후생, 조직문화… HR이 관리하는 거의 모든 영역이 숫자로만 보이기 쉽다. 하지만 인력과 관련된 절감은 겉으로 보이는 숫자보다 보이지 않는 비용이 훨씬 크다. 인위적인 인력 축소나 과도한 교육비 삭감은 단기적으로는 지출을 줄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음과 같은 형태로 다시 돌아온다.
핵심 인재 이탈과 리텐션 비용 증가
조직 신뢰 저하와 참여도 하락
생존자 스트레스 및 생산성 저하
재채용, 온보딩 과정에서 발생하는 높은 비용과 리스크
그래서 요즘 많은 기업들은 예전처럼 “먼저 사람부터 줄이는 방식”을 쉽게 쓰지 않는다. 대신 비용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데서 시작한다. 외부 서비스 계약, 공급 계약을 재정비하거나, 중복된 운영 프로세스를 줄이고, 자동화나 디지털화를 통해 운영비를 낮추는 방식, 지역별로 흩어져 있던 HR 기능을 중앙화하는 방식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새로운 Generative AI 를 도입한 업무기반 운영 효율화도 많이 논의되고 있지만, 이 부분은 별도의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므로, 다른 글에서 다루려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어디를 먼저 손대야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가”에 대한 판단 기준을 갖는 것이다. 단순히 “교육 전면 중단”, “채용 전면 중단” 이 아니라, HR 비용 항목을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한 번 더 걸러서 보는 것이다.
재무적 효과: 실제 절감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또는 장기적으로 비용을 얼마나 방지할 수 있는지
비즈니스 영향도: 감축이 운영·성과·고객 경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직 리스크: 구조조정, 인력 불안정, 프로세스 혼선 등 부작용 가능성은 없는지
기술/운영 리스크: 시스템 변경, IT 의존도, 자동화 실패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
효과가 나타나는 시점: 절감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지, 몇 분기 뒤에야 가시화되는지
추가 투자 필요성: 절감을 위해 별도 시스템, 교육, 조직 변경에 대한 선 투자가 필요한지
이 기준들을 항목별로 점수화하면, HR도 재무와 훨씬 비슷한 언어 (숫자)로 이야기할 수 있다.
“어디는 지금 줄여도 되고, 어디는 줄여서는 안 되며, 어디는 오히려 더 투자해야 하는지”를 근거를 가지고 설명할 수 있다. 사람 수를 줄이기 전에, 비용 구조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
3. Cost-conscious culture 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최근 재무·경영 리포트와 글로벌 컨퍼런스에서는 “Cost-conscious culture(코스트 컨셔스 컬처)”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코스트 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사람들이, “아, 허리띠 졸라매자는 거구나”로 오해하지만, 보다 정확하게는, 조직 구성원 모두가 비용 구조를 이해하고, 자신의 의사결정이 재무적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인식하는 문화를 의미한다.
이 문화가 자리 잡은 조직에서는 구성원들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내가 운영하는 기능·프로그램·프로세스는 어떤 비용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가?
지금 내 결정은 회사의 비용과 리스크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같은 목표를 더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는가?
이 지출은 단기 비용인가, 아니면 장기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투자인가?
Cost-conscious culture의 중심은 ‘절감’보다 ‘이해와 인식’에 가깝다.
비용을 무조건 줄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비용이 어떤 가치를 만드는지 알고 있는 상태, 그리고 그 관점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는 상태를 말한다.
4. HR 리더에게 Cost-conscious culture가 의미하는 것
HR BP, HR 리더는 회사의 최고경영진 한 축으로서, 단순히 예산을 집행하는 관리자가 아니라 자신의 영역에서 P&L을 읽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Cost-conscious culture의 관점에서 보면 HR이 점검해야 할 핵심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코스트 구조에 대한 이해다.
우리 조직의 HR 비용을 단순히 “인건비 + 교육비 + 복리후생비”로 보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어떤 부분이 회사의 경쟁우위를 만드는 차별화 투자인지,
어떤 부분이 전략 실행을 위해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필수 운영비인지,
어떤 부분은 자동화·표준화·공급자 통합 등을 통해 줄일 수 있는 범용 비용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비용과 비즈니스 임팩트를 연결해 설명하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리더십 프로그램 비용을 이야기할 때,
단순히 “리더 교육 예산입니다”가 아니라 “변화기 팀을 이끌 역량을 키워 이직률을 낮추고, 실행력을 높이는 투자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직원 경험, 이직률, 성과, 고객 만족도와 연결된 데이터를 함께 보여주면 설득력은 훨씬 커진다.
셋째, 조직 전체의 비용 감수성(cost acumen)을 높이는 역할이다.
모든 비용을 HR이 혼자 떠안는 순간 HR은 언제든 “줄여야 할 대상”이 된다. 대신 각 조직의 리더들이 자신의 영역에서 비용 구조를 이해하고, HR과 함께 개선 방안을 설계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채용하는 포지션의 hiring manager가 채용의 ‘풀 사이클 비용(소싱–인터뷰–오퍼–온보딩–초기 생산성)’을 이해하도록 돕거나, 라인 매니저와 함께 교육 참여, 이직률, 성과 데이터를 보며 팀 운영 방식을 조정하는 것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과정에서 HR은 자연스럽게 비용을 구조적으로 설명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예산을 줄일 항목, 유지할 항목, 투자할 항목으로 나누어 재무와 논의하면, 인사에게 버짓팅은 더 이상 재무의 요구대로 숫자를 맞춰주는 작업이 아니라, 전략을 함께 설계하는 대화가 될 수 있다.
5. 2026년을 준비하는 HR 리더의 질문
이제 2026년 예산이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낸 지금, HR 리더는 스스로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우리는 2026년 버짓팅에서 “줄인 비용”만큼, “지키거나 오히려 늘린 투자”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야기했는가?
우리 조직의 HR 비용을 구조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언어와 데이터를 갖추고 있는가?
각 본부, 사업부 리더와 “당신 조직의 인력·교육·운영 비용 구조를 같이 열어보자”는 대화를 했는가, 아니면 올해도 HR이 대신 숫자만 맞춰줬는가?
교육비나 인력 관련 예산을 줄이기로 했다면, 그 결정이 1~2년 뒤 어떤 리스크로 돌아올지 시나리오까지 사업부 리더와 함께 그려봤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면, 그 조직은 이미 Cost-conscious culture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아직은 아니다”라는 답이 나온다면,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예산 숫자를 다시 뒤집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결정한 비용 구조를 앞으로 어떻게 운영하고, 향후 논의에는 어떻게 대응할지 HR 나름의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의미다.
6. 마무리
조직의 환경과 HR에게 기대하는 역할에 따라 버짓팅 과정에서 HR의 관여 수준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어떤 회사에서는 인력 규모나 비용 절감 목표를 재무와 경영진이 일방적으로 설정하고 HR은 이를 집행하는 역할로만 남아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HR이 가진 역량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접근이다.
HR은 단순히 ‘비용 쓰는 부서’가 아니다. 조직이 불확실성 속에서도 버티고 성장하며, 전략과 수익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어떤 구조를 가져가야 하는지를 함께 설계하는 파트너다. 비용은 그 구조를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일 뿐이며, HR의 역할은 해당 비용을 통해 전략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최근 People Analytics 빠르게 주목받는 이유도 유사한 흐름 이라고 생각한다. AI와 기술 발전이 배경이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HR이 경영진과 숫자로 이야기하고, 데이터와 분석에 기초한 근거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지원하며, 논리로 설득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버짓팅도 매년 하는 의례적 작업을 넘어 HR 의 경영 파트너로서의 역량과 관점을 보여주는 기회로 잘 활용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