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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 Film : 건의함의 함정

HR Film : 건의함의 함정

순풍산부인과
조직문화리더임원CEO
영준
유영준Feb 1, 2026
14946

#1. 건의함의 시작

순풍산부인과는 26년 전, 우리를 웃고 행복하게 하던 시트콤이다. 마냥 재밌게 생각할 이 시트콤에도 HR관점에서 생각할 여러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576화의 에피소드이다. 이 에피소드는 순풍산부인과에서 오지명 원장이 '민주적 경영'을 표표하며 건의함을 설치하는 것을 기점으로 리더·구성원·완충자 세 주체가 만드는 삼중 착각의 구조적 패턴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리고 건의함으로 대변되는 선의로 시작한 제도가 내면의 준비가 없는 상태에선 오히려 조직 내 왜곡과 냉소주의를 완성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2. 선의가 파국으로 변하는 4단계 과정

단계

제도 상태

직원 행동

리더 반응

발단

건의함 설치

("민주적 경영")

회의적 관찰

자기과시적 선언

전개

익명성 활용 시작

억눌린 불만 폭발

사위인 박영규가

밤에 몰래 확인 후 충격

위기

가족의 정보 조작 개입

독설 강도 유지
"강하게 밀어붙이면 통한다"

가짜 여론에 속아 착각

절정

거짓 피드백 루프 완성

인신공격 수준 상승

보상 실행 (삼계탕, 야식비 인상)

결말

사상누각 상태로 유지

계속 강하게 해야한다.

정신을 차리게 만들자.

"직원들이 나를 사랑한다"

1단계 — 발단: 리더의 자기과시적 '민주주의' 선언

건의함 설치 자체는 제도적으로 합리적인 행위다. 그러나 이 제도 뒤의 동기가 진정한 자기반성이 아닌 '나는 이런 리더다'라는 과시적 심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 핵심이다. 리더가 비판을 받아들일 내면의 준비(Emotional Readiness)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도입한 소통 창구는, 그 자체로 시한폭탄과 같다. 특히 회식자리에서 건의함 설치를 건의하던 수간호사의 의견을 묵살하던 오지명 원장은 사위인 박영규가 직원들 편을 들자 하는 수없이 건의함을 설치한다.

2단계 — 전개: 익명성 뒤에 숨은 억눌린 분노의 표출

직원들은 처음에 회의적이었다. 지명의 보복 성격을 알기에 '솔직하게 써도 되냐'를 먼저 걱정했다. 이것은 건의함이 존재하기 전에 이미 심리적 안전감이 없었다는 신호다. 그러나 익명성이 완벽히 보장된다는 확신이 들자 그동안 수직적 구조에서 억눌렸던 불만들이 폭발하여 건의 성격을 가진 경영 제언이 아닌 개인에 대한 날카로운 비수로 변했다.

3단계 — 위기: 정보의 오염과 가짜 여론의 형성

사위인 영규는 장인인 오지명 원장에게 낚싯대를 사달라고 하려다가 ‘혹시나 건의함에 나쁜 의견이 쓰여있으면 어떡하지? 그러면 화가 나서 낚싯대 절대 안사주실텐데!’ 하는 생각에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바람을 붙였으니 걱정될 만도 한 것이 당연하다. 심지어 낮에 간호사들이 ‘내일 아침 열 좀 받을걸?’ 이라고 말하는 걸 들은 영규는 결국 밤에 몰래 건의함을 열어 쪽지들의 실체를 마주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여기서 조직의 자정 작용 대신 정보 조작이 개입한다. 결국 영규와 미선은 밤마다 독설 쪽지를 빼내고 가짜 칭찬 쪽지로 채워 넣었다. 이 행동은 리더를 보호하는 의도였지만, 실질적으로는 현실과 보고서 사이의 괴리를 극에 달하게 만들었다.

4단계 — 절정·결말: 보상 시스템의 오오작동

결국 다음날 조작된 가짜 칭찬에 감동한 지명은 즉각적인 보상을 실행한다. 야식비 10% 인상, 삼계탕 특식 제공 등. 그런데 직원들은 이를 '독설이 효과적였다'고 오판하여 더 심한 비난을 적어 넣게 된다. 지명은 가족들이 조작한 더 화려한 찬양글을 보며 더 관대해진다. 이때까지 심지어 간호사인 표인봉은 아직 익명성에 대한 걱정이 되었는지 대를 이어 충성하겠다는 얘기까지 직접 적어넣었다. 결국 이중적인 착각이 상호 강화되며 냉소주의가 완성된다.

#3. 삼중 착각의 구조적 패턴

세 주체 모두가 동시에 착각 속에 있다. 어떤 주체도 실제 현실과 접점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 세 주체 모두 행복하지만 누구도 현실에 있지 않는다. 비즈니스로 치환하면 KPI가 좋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 누군가가 숫자를 조정하고 있는 상황과 정확히 맞닿는다.

주체

착각 내용

정말 원하는 것

실제 현실

지명 (리더)

"직원들이 나를 사랑한다"

존경받는 자신

가족이 만든 가짜 쪽지

직원들 (구성원)

"강하게 밀어붙이면 통한다"

원장의 변화

지명은 그 내용을 본 적 없음

가족들 (완충자)

"이렇게 하면 평화가 유지된다"

낚싯대 보상

근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음

착각이 강화되는 메커니즘

세 주체의 착각은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직원들의 독설 → 가족들(영규)의 차단 → 지명의 보상 실행 → 직원들의 '효과적임 확인' → 독설 강도 상승이라는 루프가 형성되며, 각 주체가 상방의 착각을 부추기는 구조이다. 이것은 단순한 개인의 오판이 아닌, 구조적으로 왜곡된 피드백 루프이다.

#4. 피드백 루프의 구조적 왜곡

피드백이 발신자에서 수신자에게 도달하지 않고, 중간에 완전히 다른 신호로 바뀌는 구조이다.

단계

발신자 신호

중간 개입

수신자 수신

1단계

직원 → 불만 건의

가족 차단 (독설 제거)

지명 수신 없음

2단계

직원 → 강도 높은 비난

가족 → 가짜 칭찬 대입

지명: "사랑받고 있다"

3단계

직원 → 인신공격 수준 상승

가족 → 밤새 칭찬 대량 생산

지명: 보상 실행 (야식비 인상)

결과

신호 왜곡률: 100%

조직 전체가 거짓의 비용 부담

평화는 유지, 문제는 축적

왜곡의 세 가지 구조적 원인

첫째, 익명성 제도의 역효과이다. 익명성은 솔직함을 유발하지만, 동시에 책임감을 제거한다. 직원들의 비난이 점점 인신공격 수준으로 가는 것은 익명의 차폐 뒤에서 건강한 비판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억제 장치가 사라진 것이다.

둘째, 인과와 상관의 혼동이다. 직원들은 자신의 비난이 효과적였다고 착각한다. 실제로 지명의 행동 변화는 가족들의 개입으로 인한 것이다. 이것은 조직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인과 관계와 상관 관계의 혼동이다. 결국 아무런 요인도 없는 일에 모두 인과관계가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만약 영규가 미리 중간에 직원들과 이야기하며 건의함이니 인신모독은 자제하는게 좋겠다고 넌지시 말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익명 건의함을 몰래 봤다고 영규가 욕을 먹긴 했겠지만 말이다.

셋째, 완충자의 지속불가 모델이다. 사위인 영규가 밤새 칭찬 쪽지를 쓰는 것은 단기 위기 관리는 가능하지만 근본적인 소통 구조를 다시 세우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반복적인 패치 작업에 해당한다. 결국 에피소드 말미, 영규가 건의함 쪽지를 수거한 이후 인봉이 다시 와 독설가득한 인신모독 쪽지를 넣어두고 사라지며 에피소드가 끝난다.

#5. HR 진단: 조직에 동일한 구조가 있는가?

이 에피소드의 패턴은 실제 조직에서도 중간 관리자가 아래선의 피드백을 윗선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원본 신호가 왜곡되는 것과 동일하다.

진단 항목

경고 신호

리더의 Emotional Readiness 부재

제도 도입 후 즉각 갈등 발생

심리적 안전감 수준 저하

익명성 없이는 발언 불가

피드백 루프 왜곡

중간자의 정보 차단·조작

보상-처벌 체계의 오오작동

잘못된 인과 연결이 강화됨

조직 내 이중 소통 구조 형성

공식·비공식 채널 분리

#6. 처방: 구조적 왜곡을 끊는 세 가지 접근

① Emotional Readiness 먼저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리더가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아들일 내면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먼저 진단해야 한다. 준비가 되지 않은 리더에게 직접적인 피드백을 강제하는 것은 오히려 왜곡의 기점이 된다.

② 익명성 ≠ 무책임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것은 '아무 말이든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건의함의 내용에 대한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며, '경영적 제언'과 '인신공격'을 구분하는 기준을 사전에 명확히 해야 한다.

③ 완충자 없이 직접 연결

중간자의 정보 조작은 단기로는 평화를 유지하지만 장기로는 신뢰의 기반을 무너뜨린다. 피드백이 원본 그대로 수신자에게 도달하되 적절한 맥락과 함께 전달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건강한 피드백 루프의 출발점이다.

original

07. 결론

이 에피소드가 우리에게 주는 진짜 교훈은 제도의 유무가 아니라 제도 뒤의 구조가 문제라는 것이다. 건의함 하나로는 소통을 바꿀 수 없다. 소통이 바뀌려면 먼저 신뢰가 바뀌어야 하고, 신뢰가 바뀌려면 먼저 리더의 내면이 바뀌어야 한다. 오지명의 건의함은 선의로 시작였다. 그리고 그 선의는 세 주체의 착각을 통해 사상누각으로 변했다. 사위인 영규가 밤새 칭찬 쪽지를 쓰는 장면은 리더 한 명의 자존심을 지탱하기 위해 조직 전체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거짓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조직에서 이런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면 문제는 건의함이 아니라 그 건의함 앞에 서 있는 리더이다.

[본 아티클에서 다루는 <순풍산부인과> 제576회는 SBS에서 2000년 6월 26일 방영된 작품으로 극의 내용과 사용된 이미지 등 모든 저작권은 SBS에 있습니다. 본 아티클은 해당 작품을 HR 관점에서 비평·분석하는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영준
유영준
일과 사람을 잇는 한량
일과 사람을 잇는 한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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