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세계로부터 전해오는 질문
“AI Transformation으로 일하는 방식을 혁신하고자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뭐부터 고민해야 할까요?” - 건설분야 기업문화 담당자
“AI를 도입했지만, 뭐가 좋아졌는지 위에 보고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점을 분석하면 되나요?”
- 의료분야 스타트업 HR 담당자
”AI를 도입하긴 했는데, 그리고 심지어 구성원들이 각자 잘 쓰고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회사의 전략적 차별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강연을 가면 현장 질문을 받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현장 질문과 응답은 대체로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평소에 본인이 깊이 고민하던 사연을 꺼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몇 차례의 현장질문 경험을 통해 흥미롭다고 느꼈던 지점이 있습니다. 저도 회사에 AI를 도입하는 초기에 똑같은 경험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미 AI를 도입했거나, 이제 도입하려고 하는 조직에 속한 분이라면 잠시 글 읽기를 멈추고 나는 설명할 수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나는 AI가 비즈니스 성과(Business Impact)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설명할 수 있을까?
Old Schools vs. AI Natives
잠깐 옆 길로 벗어나서 일 하는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볼게요. 저는 요즘 AI Transformation 기반 일하는 방식 혁신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하고 있는 일의 영향인지 몰라도 주변 동료들의 일하는 방식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에 동료들의 AI 활용방식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먼저 기존 업무를 잘 해오던 분들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일을 합니다.
업무 계획수립 → 활용 가능한 AI 사용 → 결과도출
반면, AI Transformation 이후 입사한 Natives들의 일하는 방식은 아래와 같이 조금 다릅니다.
활용 가능한 AI 자원확인 → 업무 계획수립 → 결과도출
과연 이게 무슨 차이일까 싶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상당히 유의미한 차이가 있습니다. AI Natives는 첫째, AI 활용 측면에서 AI를 단순히 있으면 좋은 도구수준이 아니라 AI를 전제로 깔아 놓고 전체 프로세스를 구성합니다. 즉, 기존 프로세스에 존재하는 작업들 중 일부를 AI로 대체(Replace)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기존 프로세스는 단순히 참고만 할 뿐, 결과만 염두에 두고 프로세스를 새롭게 설계합니다. 이 과정에서 AI 증강(Augmentation Intelligence)이 일어납니다. 둘째, AI를 기반으로 도출된 결과를 현재 업무 프로세스 루프에 다시 피드백시킵니다. 이 과정을 통해 AI는 자연스럽게 검색 증강 생성(Retrieval Augmented Generation, RAG)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AI는 점점 더 프로세스에 적합하게 정교해집니다. 셋째, 이렇게 쌓은 AI 활용 경험을 다른 업무 프로세스에 일반화 시킵니다. 즉, 새롭게 설계된 프로세스들 간에 연결이 일어나면서 시너지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대부분의 기업이 걸어가는 길
아직도 AI 도입이 기업의 비즈니스 성과(Business Impact)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뜬금없이 앞서 Old Schools와 AI Natives의 일하는 방식 차이에 대해 설명드린 이유는 프로세스 재설계에 있습니다. 제가 목격한 대다수의 기업들이 AI를 도입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AI를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도입합니다. 상당히 많은 투자비가 발생합니다. 경영진은 이제 돈을 투자했으니 본전(?)을 뽑으라고 압박합니다. HR부서는 AI를 활용할 수 있도록 구성원들에게 사용법을 교육 시킵니다. 바로 ‘Citizen AI Engineer’를 양성합니다.(Medium, 2023) 이어서 구성원 개인들의 AI 활용 도전을 촉진시키고 회사 전체에 분위기 조성을 위한 다양한 사례 경진대회나 혁신 워크숍을 개최합니다. 누구나 혹 할만한 시상품을 쌓아놓습니다. 처음에는 구성원 개인이 하던 업무를 자동화하는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집니다. 과연 많은 사람들이 호응해 줄지 조마조마하던 담당자는 예상치 못한 흥행에 행복해집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는 담당자는 뭘 해야할지 고민에 빠집니다. 결국 사례 경진대회나 혁신 워크숍 2회차가 진행됩니다. 1회차에서 나왔던 사람들이 2회차에도 대거 참여하기 시작합니다. 대회를 복잡하게 트랙으로 나눠서 진행해 보기도 하고 기존 참여자를 배제할 묘안을 내보기도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런 저런 조직에서 유사한 포맷의 대회나 워크숍을 개최하기 시작하면서 이젠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됩니다.
어디서부터 스탭이 꼬였을까?
다시 한번 걸어 온 길을 되짚어 볼까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AI를 업무에 적용하도록 구성원들에게 교육을 시키는 시점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AI를 기업의 차별적 경쟁력으로 활용하는 일은 과연 구성원들의 몫일까요? 아니면 회사를 운영하는 기업의 몫일까요? 기존 프로세스를 유지하는 상황에서는 AI의 활용을 기업의 차별적 경쟁력으로 끌어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존 프로세스에서 AI 활용법을 찾는다는 것은 단순히 반복업무를 대체해서 일하는 시간을 줄여주는 용도로 사용하거나 수동으로 찾아헤매던 정보를 보다 풍부하게 찾아주는 검색 용도로 사용하는 범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안타깝지만 이런 경우 여러분은 영원히 비즈니스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실 수 없을지 모릅니다. 단위 작업에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비즈니스 성과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AI가 비즈니스 성과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조건 ① - 업무 프로세스 재설계
비즈니스 성과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중요한 모멘텀(momentum)이 필요합니다. 첫번째는 업무 프로세스 재설계입니다. 기존의 업무 프로세스는 과거의 자원들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과거의 자원들을 최적화 했을 때 가장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는 관점으로 각 단계들이 설계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AI를 도입했을 때 기존의 프로세스와 그 안에 존재하는 각 단계들을 그대로 두고 AI를 어디에 사용할까 고민하는 것은 마치 기존의 대면 기반 결재 프로세스는 그대로 둔 상태에서 인터넷을 도입하면 어디다 쓸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면보고 후 서류에 결재서명을 받는 프로세스에 갇혀있는 것입니다. 결국 고심 끝에 결재행위만 전자결재로 바꾸는 것과 같습니다. 실제로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 공무원 세계에서는 서류를 들고 들어가서 대면보고 후, 구두로 오케이 싸인을 받으면 자리로 돌아와서 전자결재를 다시 작성한 뒤 결재를 올리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전자결재를 올려야 하는 일이 추가되고 결재에 소요되는 시간만 더 늘어났습니다.(서울신문, 2004)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에이 저건 옛날 이야기잖아!”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시면 지금도 기업 내에서, 조직 내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특히 AI 도입의 결과에 대한 실적 압박을 많이 받을 수록 숫자에 기반한 외형적 성과에 초점을 맞추게 되기 때문에 이러한 잘못된 결정을 하기 쉽습니다.
AI가 비즈니스 성과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조건 ② - 업무 프로세스와 액션의 연결
업무 프로세스가 AI를 중심으로 재설계 되었다면 이제 새로운 업무 프로세스 안에서 사람이 실행할 부분과 AI가 실행할 부분이 명확하게 하나의 설계도로 나타나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친다면 비즈니스 성과에 일부만 영향을 줄 뿐 기업의 차별적 경쟁력으로 자리잡기는 어렵습니다. 1960년대 후반 영국의 바클레이즈 은행은 현금자동입출금기(ATM)을 전격적으로 도입합니다. 창구직원들이 부가가치가 낮은 현금 입출금에 할애하는 시간을 줄이고 좀 더 부가가치가 높은 기업대출 등에 시간을 쏟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소위 돈 안되는 고객은 사람을 만날 것이 아니라 기계를 만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엉뚱한 방향으로 튑니다. 고객들 역시 현금입출금 업무를 직원을 통해 하는 것 보다 기계를 통해 하는 것을 선호했던 것입니다.(B Batiz-Lazo, 2007) 만약, 은행이 ATM의 전표작성 기능만 활용하여 창구직원이 손으로 작성하지 않고 자동으로 작성되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면 어땠을까요? 고객들은 여전히 창구직원을 통해 현금입출금을 했을테니 대기시간이 약간 줄었다는 느낌 외에는 별다른 차별점을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현금입출금의 전표작성 기능 뿐만 아니라 실제 현금을 수거하거나 제공하는 액션기능을 덧붙였을 때는 하나의 단위업무 프로세스가 종결적으로 새로운 기술에 의해 전환되었을 뿐만 아니라 경쟁 기업과 구분되는 하나의 차별적 경쟁력이 될 수 있게 됩니다.
AI 도입이 설명 가능한 비즈니스 성과가 되려면?
요약하자면, AI가 제대로 도입되어서 비즈니스 성과에 영향을 주려면 사고의 전환과 실행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사고의 전환은 첫째, AI를 새로운 도구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자원과 환경의 프레임이 변한 것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둘째, AI가 기업의 비즈니스 성과에 영향을 주는 과정에서 구성원은 프로세스를 재설계하는데 필요한 형식지와 암묵지를 제공하는 설계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업은 이를 다른 프로세스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시스템에 반영하는 프로세스 재정의 행위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더불어, 실행의 전환은 첫째, AI를 기본적인 활용자원으로 두고 업무 프로세스를 재설계해야 합니다. 둘째, 업무 프로세스를 재설계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이를 실제 실행으로 연결하는 액션 애플리케이션들과 연결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사고의 전환과 실행의 전환이 완성된다면 AI의 도입이 설명 가능한 비즈니스 성과(Reasonable Business Impact)로 바뀌게됩니다. 그리고 재설계한 업무 프로세스는 자연스럽게 경쟁기업은 쉽게 따라오기 어려운 기업의 차별적 경쟁력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파생되는 현실적인 문제들도 많이 존재합니다. 다음부터 한 동안은 지금 설명한 큰 틀의 개념적인 이야기를 한 조각씩 찢어서 사례 기반으로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아마도 처음 이야기는 데이터에서 출발하여 프로세스를 거쳐 액션 애플리케이션까지 흘러가는 개별 레이어(Layer)에 대해서 좀 더 현실적인 관점으로 이야기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데이터사이언티스트의 관점에서 할말이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