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를 슬그머니 밀고 들어오는 AI Agent
AI가 어느새 내 자리 바로 옆에 앉아서 빤히 쳐다보기 전까지 다들 몰랐다. 어느새 바로 옆에 와 있는 줄은… 매일 아침 회사에서 제공해 주는 언론스크랩에는 온통 업그레이드 되어버린 새로운 AI 파운데이션 모델 이야기, 어느 기업이 AI에 얼마를 투자했는지에 대한 이야기, 정부가 AI 산업을 어떻게 육성한다는 이야기, AI로 인해 사이버 범죄가 어떻게 진화해 나가는지에 대한 이야기… AI AI AI 뿐이다. 게다가 아웃룩 이메일을 열어보면 밤새 쌓여있는 SERI CEO 영상, 교육업체의 안내메일, 개인 컬럼 모두 온통 AI, AI, AI만 이야기한다. 눈을 돌려 동료를 쳐다보니 Notebook LM, GensPark, 뤼튼, DeepL, 라이너, Lilys AI, Napkin AI, Felo, Replit 다들 새로운 AI Powered 어플리케이션을 배우느라 여념이 없다. 상황이 이쯤 되니 직장인들은 다들 궁금한 점이 하나로 수렴된다. 과연 내 자리는 안전한 것일까? AI가 나를 대체하는 건 언제쯤일까?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점점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는 사라질 직업들
불안한 마음에 퇴근길에 광화문 사무실 바로 앞 교보문고에 들렀다. 서가를 둘러보니 죄다 앞으로 사라질 직업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퇴근 길에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 보면 이미 혜안을 가진 많은 전문가 분들이 다양한 논리적 가정과 근거를 가지고 어떤 직업이 없어질 것인지? 왜 그 직업이 사라지게 될거라 생각하는지? 글과 영상에서 설명하고 있다. 심지어 The World Economic Forum 같은 곳은 실제로 없어질 직업 리스트를 정리해서 영문보고서 - https://www.weforum.org/publications/the-future-of-jobs-report-2025/로 발간해 놓았다.
그런데 온갖 잡다한 AI Powered 어플리케이션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문득 직업 단위로 존망(存亡)을 논하는게 맞는지 의문이 든다. 직업(Occupation)은 수많은 직무(Job)로 이루어져 있고, 직무는 또 수많은 업무(Task) 단위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많은 전문가들이 쉽게 대체될 것으로 생각하는 회계사,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의 경우 늘 회계처리, 법리해석만 하는게 아닐테니 말이다. 핵심업무(Core Task) 외에도 주변업무(Peripheral task)들도 해야할 것이다. 게다가 각각의 업무(Task)는 정확한 매뉴얼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다양한 협업과정에서 정보통제, 기만, 유대감 형성 등 고급(?) 기술들이 필요하다. 과연 이 모든 업무를 모두 한꺼번에 AI가 핸들링해서 직무를 완벽하게 대체하고 나아가서 직업까지도 대체해 낼 수 있을까? 수 많은 변수가 도사리는 직업이라는 하나의 단위를 완벽하게 대체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기간을 무한정 늘려서 “언젠가는…” 이라는 가설을 붙이면 모를까.
AI가 일(Work)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
AI가 어떤 직업을 대체할 것인가 이야기하기에 앞서 우리는 AI가 우리가 하는 일(Work)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는지 본질적인 수준에서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 AI와 일(Work) 사이의 접점은 무엇일까? 바로 확률적 모델(Probabilistic Model)이다. 이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 특정한 입력값(input)에 대해 결과값인 확률(output)을 계산해 낼 수 있는 목적함수(Objective Function) - https://c3.ai/introduction-what-is-machine-learning/supervised-learning/가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함수는 간단하게 f(x)=y로 표현할 수 있다. 문돌이가 왠 함수냐고? 내가 내 자리를 걸고 AI와 맞붙어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이 함수에 있기 때문이다.
AI는 목적함수에 의해 작동한다. 목적함수를 조금 뜯어보자. 함수 f에 들어가는 x는 변수다. 변수는 통계에서는 독립변수, AI에서는 Feature라고 부른다. 사실 이건 입력 값이라 구하기 쉽다. 예를 들면, 넷플릭스의 추천모델에서 x는 장르, 시청시간, 성별 등이 있다. 테슬라의 자율주행에서 x는 피사체의 사이즈, 피사체까지 거리, 피사체가 움직이는 좌표값 등이 있다. 이런 값들은 명확하기도 하거니와 값 그 자체로 존재하기 때문에 판단이 크게 필요 없다. 과거에는 사람이 직접 정의(Define)하고 수집(Collect)하고 가공(Pre-process)하고 분석(Analyze)했다. 하지만 지금은 수 많은 IoT(Internet of Things)와 디지털화(Digitalized) 되어버린 기업환경에서 제대로 세팅만 되어 있다면 손쉽게 구하고 AI에 의해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가공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은 무엇을 의미할까? 더 이상 사람의 손을 빌릴 필요 없이 대체하기 쉽다는 의미다. 따라서 사람이 하던 작업(Work)를 AI가 손쉽게 대체할 수 있다.
반면, 함수에서 y는 판단의 영역이다. y값은 인간이 판단해서 어떤 값이 적절한지 설정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y값을 판별하는 행위에서 가치(Value)가 발생한다. 앞선 예에서 넷플릭스 추천모델이라면 x값들을 입력한 함수를 고려하여 분류모델이 어떤 값을 제시해야 하는지 인간 전문가가 설정해 주어야 한다. 테슬라의 자율주행에서 역시 x값들이 입력된 함수를 고려하여 휠을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얼마나 움직일지? 속도는 가속할지 감속할지? 인간 전문가가 설정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가중치(파라메터) 값이 조정되면서 목적함수가 설정된다. y값을 잘 설정해 줄수록 목적함수의 정확도가 높아진다. “에이 그런건 사전데이터로 학습시키면 된다던데요?”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전데이터도 결국 f(x)=y의 값들로 구성되어 있고 사전(?)에 사전데이터의 y값을 인간 전문가가 설정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달라지는 건 없다.
내가 대체되지 않으려면?
자! 다시 이야기로 돌아오면 없어질 직업(Occupation)을 찾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아니다. 앞선 설명에서 처럼 당연하게도 수 많은 변수 x를 수집하고 가공하는 반복적인 업무(Work)는 결국 AI로 손쉽게 대체될 것이다. 다만, 가치를 생산해 내는 y값은 여전히 인간의 손을 거쳐야만 할 것이다. 그래야만 우수한 목적함수(Objective Function)을 만들어낼 수 있고 우수한 목적함수가 만들어져야 AI로 더 큰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도, 테슬라도, 아마존도, 구글도, 팔란티어도 누가 따라할 수 없는 좋은 목적함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영역에서 독보적인 가치를 생산해 내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결국 x값을 처리하는 업무(Work)는 AI로 대체(Replace)될 것이다. 그리고 y값을 처리하는 업무는 전문역량을 갖춘 인간이 수행할 것이다. 전문역량을 갖춘 인간이 AI를 활용하여 f(x)=y를 만들어내는 업무형태가 새롭게 등장할 것이고 이러한 업무형태를 AI 증강(Augmented AI)라고 부른다.
조직 내에서 앞으로 우리가 보게 될 장면
결국 모든 직무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던 기존의 업무방식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AI 증강 업무형태가 자리잡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한번 떠올려보자. 우리가 AI의 결과물을 쉽게 믿을 수 있던가? 처음에는 사람이 일일이 검토하고 수정하고 재작업하는 일이 빈번할 것이다. 하지만 반복적인 작업에서 한번 제대로 세팅된 목적함수에 의해서 신뢰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온다면, 그 이후로는 믿고 쓰는 AI가 될 것이다. 이러한 장면은 어디서부터 일어나게 될까? 어느 정도 오류가 있더라도 중요하지 않은 영역에서부터 도입될 것이다. 이후 빠른 속도로 품질(혹은 정확도)를 높이면서 도입분야를 늘려나갈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바로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론이지 않은가? https://onlinelibrary.wiley.com/doi/pdf/10.1111/joms.12349 결국 수요공급 곡선에서 사용자가 기대하는 AI의 품질수준과 기업이 받아들일 수 있는 AI 활용가성비가 만나는 지점에 도달하면 기존 직무체계를 무너뜨리고 AI 증강 업무형태가 기반이 된 새로운 직무체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바로 AI Agent 도입으로 인한 직무재설계를 목격하게 된다.
그러면 HR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대체로 직무가 매우 분화되어 있고 여러가지 환경 상의 이유로 대기업들은 조직의 전면적인 변화가 어렵다. 의사결정을 받는 단계도 길어서 시간도 많이 걸리고 원래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고 가진게(?) 많은 조직은 결정도 쉽게 못한다. 반면에 새롭게 시작하는 스타트업들은 어떨까? 애초에 사람도 부족하고 돈도 부족한 스타트업들은 AI Agent를 기본적으로 깔고 시작한다. 이미 미국에는 AI Agent들로 무장된 1인기업(solopreneur)들이 등장했다. 따라서 미리 AI 증강 업무형태로 구성된 파일럿 조직을 운영하는 등 미리 대비책을 강구해 놓지 않으면 순식간에 직무단위로 스타트업들에게 분해될 것이다. 대기업의 조직들이 AI Agent로 무장한 스타트업들의 업무처리 속도, 결과물의 품질, 가성비 측면에서 크게 경쟁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이며 쉽게 예상이 가능한 시나리오다. 이미 우리는 실리콘밸리에서 기존 기업들이 쌓아왔던 수많은 밸류체인들이 스타트업들에게 조각조각 분해되어 먹히는 모습을 봐 왔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