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질문은 12년 차가 된 지금도 이력서를 열 때마다 마주하는 가장 두려운 질문이다. 남들은 '채용 전문가', '평가 보상 전문가'라며 본인의 무기를 날카롭게 다듬는데, 나는 그저 '인사팀 그 사람'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 제네럴리스트라는 단어는 가끔은 '만능'처럼 들리지만, 대부분의 밤에는 '무색무취'처럼 느껴진다.
오늘은 그 애매함에 대한 변명을 조금 늘어놓고 싶다.
첫 커리어는 대기업 계열사였지만, 직원이 60명 남짓한 소규모 조직이었다. 말이 좋아 HR이지, 총무까지 도맡아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날들이었다. 대리 시절까지는 그게 성장의 동력인 줄 알았다. 채용부터 퇴사, 급여, 자잘한 행사까지 내 손을 거치지 않는 게 없었으니까. 지주사에서 내려오는 교육, 보상, 조직문화 지침을 우리 회사에 맞게 뜯어고치다 보면 "나 좀 하네?" 싶은 착각도 들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혼자 다 한다는 건, 깊게 팔 시간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한창 '데이터 기반 HR'이 유행할 때, 나도 엑셀을 켜고 뭔가 분석해보려 했다. 그런데 60명 조직에선 데이터보다 점심 먹고 나누는 커피 타임 한 번이 더 정확한 인사이트를 줬다. "김 대리 요즘 표정 안 좋던데?"가 데이터보다 빨랐으니까. 결국 나는 데이터 전문가가 되지 못했고, 그렇다고 완벽한 제도 기획자도 되지 못한 채, 그저 '임직원들과의 관계가 좋은' 운영 담당자로 남았다.
"제대로 된 전문성을 키우고 싶다." 그 갈증으로 이직을 감행했다. 직무는 그토록 원하던 '인사기획'. 드디어 나에게도 '동료'가 생겼다는 사실에 설렜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이 묘했다. 지주사 가이드 안에서 움직이는 그룹사의 인사기획 직무는 말이 기획이지, 사실상 행정 운영에 가까웠다. 더 큰 문제는 내 태도였다. 8년간 혼자 모든 걸 처리하던 습관 때문인지, 옆 자리 동료가 채용이나 교육 업무를 하는 걸 보면 자꾸 입이 근질거렸다. '저거 저렇게 하면 나중에 꼬이는데...', '나라면 더 빨리 끝낼 텐데.' 하지만 나는 팀장이 아니었고, 섣불리 나서는 건 월권이었다. 결국 입사 3개월 만에 매너리즘이 찾아왔다. 스페셜리스트가 되고 싶어 왔는데, 나는 여전히 남의 업무까지 눈에 들어오는 오지랖 넓은 제네럴리스트였던 거다.
다시 이력서를 작성해보려 했다. '인사기획' 경력 몇 개월을 적어 넣으려니 민망했다. 이걸 내 전문 분야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채용이나 평가 한 우물만 판 사람들과 경쟁이 될까? 집에 돌아와 아이를 재우고 나면, 파이썬을 배우거나 HR Analytics 자격증을 따는 건 사치처럼 느껴진다. 물리적인 시간과 체력이 부족하고, 경력은 쌓이는데 뾰족한 무기는 없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장 빛났던 순간은 언제였나. 아이러니하게도 100명 이하 조직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며, 제도의 허점을 내 태도와 순발력으로 메우던 때였다. 어쩌면 내 커리어의 정답은 '한 분야의 깊이'가 아니라, 작은 조직을 통째로 굴러가게 만드는 '넓이'에 있는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요즘은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는 강박을 조금 내려놓으려 한다. 대신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깊이가 얕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걸까? 구슬을 꿰어 보배로 만드는 건 결국 전체를 보는 눈이 아닐까?"
“아직 확신은 없다. “
여전히 채용 공고에 '00 분야 Specialist 우대'라는 문구를 보면 작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조직과 사람 사이, 그 어중간한 위치에서 균형을 잡는 것 또한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오늘도 출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