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은 AI를 다루지 않는 세미나를 찾는 게 더 어렵다.
HR 세미나라면 더 그렇다.
최근 다녀온 HRexchange 세미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매월 글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AI를 주제로 한 글은 써본 적이 없다.
AI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는 아니다.
다만, 잘 모르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단정적으로 쓰고 싶지 않았고,
아직은 ‘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경험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의 현재 위치도 영향을 미친다.
나는 아직 실무자이고, 조직의 큰 의사결정을 하는 위치에 있지 않다.
우리 회사는 보안에 매우 엄격한 편이라,
세미나에서 소개되는 많은 AI 플랫폼과 사례들은
당장 써볼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다.
이런 상태로 AI 세미나에 앉아 있으면
자칫하면 세미나는 쉽게 ‘시간 낭비’처럼 느껴질 수 있다.
내가 결정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이어지고,
당장 우리 조직과 맞지 않는 사례들이 차곡차곡 쌓여갈 때 그렇다.
그런데 사실,
지금의 이런 태도는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예전의 나는 세미나를 훨씬 다르게 들었다.
지금보다 훨씬 화이팅이 넘쳤고,
인상 깊은 세미나를 듣고 나면
“이건 꼭 우리 조직에 적용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타사 사례는 충분히 설득력 있어 보였고,
논리도 명확했다.
나는 그 사례들을 정리해
우리 조직에 그대로 가져가면
충분히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생각보다 강한 저항이었다.
질문보다는 걱정이 앞섰고,
기대보다는 거리감이 컸다.
나는 좋은 의도로 움직였지만,
조직은 준비되지 않은 변화를 경계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좋은 사례’만 있으면
조직도 자연스럽게 설득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조직은 사례보다 먼저
“왜 지금 이 변화가 필요한가”라는 맥락을 묻고 있었다.
나는 그 질문에 충분히 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 경험 이후로
세미나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조금 달라졌다.
이제는 세미나를 들을 때
“이걸 우리 회사에 바로 적용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부터 던지지 않는다.
대신 이런 질문을 먼저 떠올린다.
이 사람이 말하는 AI는 어떤 문제에서 출발했을까.
기술이 아니라, 어떤 판단이나 일하는 방식이 달라졌을까.
지금은 쓰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결정해야 할 때 참고할 기준은 무엇일까.
질문을 바꾸니
세미나를 듣는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모든 내용을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됐고,
모든 사례를 내 상황에 맞추려 무리하지 않아도 됐다.
AI를 교육하는 곳은 많고,
AI에 대한 정보도 넘쳐난다.
하지만 AI를 실제로 쓰는 경험은
조직마다, 역할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차이를 고려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세미나도 쉽게 피로해진다.
세미나의 유익함은
콘텐츠의 완성도보다
그 이야기를 어떤 맥락에서 듣고 있느냐에 더 가깝다.
우리 조직의 상황은 어떤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있을 때
비로소 무엇을 지금 참고하면 되는지,
무엇을 나중에 다시 꺼내야 할지 구분할 수 있다.
요즘의 나는 세미나를
무언가를 바로 가져오는 자리라기보다,
우리 조직의 위치에 이 이야기가 어디쯤 놓일 수 있을지를
가늠해보는 시간으로 듣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AI를 다루는 세미나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모든 이야기를 다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세미나에서 시간 낭비하는 방법은
좋은 사례를 몰라서가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모른 채 듣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