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M에서  HRBP로 '강요'되는 시대에 대하여

HRM에서 HRBP로 '강요'되는 시대에 대하여

AI가 전문지식을 쉽게 만들수록, HR은 더 어려워진다 : HRM에서 HRBP로 ‘강요’되는 시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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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모
청설모Jul 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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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HR 일을 하다 보면 예전과는 다른 피로감이 있다. 단순히 일이 많아졌다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예전에는 구성원이 제도를 몰라서 물어봤다면, 이제는 어느 정도 알고 온다. 그것도 꽤 자신 있게 알고 온다.

문제는 그 지식이 항상 정확하지 않다는 데 있다.

정보가 쉬워질수록, HR의 첫 번째 역할은 사실과 기준을 다시 확인하는 일이 된다.

생성형 AI가 보편화되면서 노동법, 평가제도, 보상, 징계, 휴직, 연차, 채용, 조직문화에 대한 접근성은 분명히 좋아졌다. 예전 같으면 노무사, 변호사, HR 담당자, 관련 부서에 물어봐야 했던 내용도 이제는 몇 초 만에 답변을 받을 수 있다. 정보의 문턱이 낮아진 것은 좋은 일이다. 구성원이 제도와 권리를 이해하고, 관리자가 인사 이슈를 더 빠르게 파악하는 것도 조직에는 분명히 도움이 된다.

그런데 현장에서 체감되는 문제는 그다음이다.

AI가 알려준 답변을 가지고 “이게 맞는 거 아닌가요?”라고 묻는 수준을 넘어, “이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단정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더 나아가 “제가 찾아봤는데요”라는 말 뒤에 정확히 팩트체크되지 않은 내용, 회사의 취업규칙이나 인사규정과 맞지 않는 내용, 특정 판례나 법 조항의 일부만 떼어온 내용이 붙는 경우도 있다.

물론 질문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좋은 질문은 HR 업무를 더 건강하게 만든다. 문제는 질문이 아니라 태도다. 요즘은 “일단 질러보고, 아니면 말고” 식의 접근이 늘어나는 느낌이 있다. 내가 정확히 알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일단 전문가처럼 주장해 본다. 그 주장이 조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른 구성원과의 형평성은 어떤지, 제도 운영의 일관성은 어떻게 되는지까지는 충분히 고민하지 않는다.

불완전한 정보는 빠르게 퍼지지만, 조직의 기준은 쉽게 흔들려서는 안 된다.

HRM만으로는 부족해진 순간

이 지점에서 HR의 역할이 크게 흔들린다.

과거의 HRM은 비교적 명확했다. 제도를 만들고, 기준을 관리하고, 절차를 운영하고, 행정 리스크를 줄이는 역할이 컸다. 평가 시즌이면 평가 일정을 안내하고, 승진 시즌이면 기준과 절차를 운영하고, 근태나 연차 이슈가 있으면 규정에 맞게 처리했다. 물론 그 안에서도 판단은 필요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제도와 운영의 정확성이 중요했다.

그런데 AI 시대의 HR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지고 있다. 이제 HR은 “규정상 가능합니다” 또는 “규정상 어렵습니다”라고 답하는 데서 끝날 수 없다. 왜 그런 기준이 필요한지, 그 기준이 조직 전체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한 사람에게 예외를 주면 다른 구성원에게 어떤 메시지가 되는지까지 설명해야 한다. 단순한 답변자가 아니라, 조직 안에서 기준을 해석하고 설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HRM만 하던 HR이 HRBP로 밀려나고 있다. 선택해서 멋있게 HRBP가 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압력 때문에 HRBP가 되도록 강요받는 것이다.

HRBP라는 말은 듣기에는 좋다. 비즈니스 파트너, 전략적 파트너, 현업과 함께 문제를 푸는 HR. 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HRBP는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누군가가 AI로 가져온 불완전한 지식을 바탕으로 강하게 주장하면, HR은 단순히 “틀렸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다. 그 주장을 검토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법과 규정을 대조하고, 현업의 상황을 보고, 다른 부서와의 형평성을 따져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해야 한다.

AI는 지식을 쉽게 만들었지만, 판단까지 쉽게 만든 것은 아니다.

법적으로 가능한가와 조직적으로 바람직한가는 다르다

예를 들어 연차 하나만 봐도 그렇다. AI에게 “회사가 연차 사용을 제한할 수 있나요?”라고 물으면, 꽤 그럴듯한 답변이 나온다. 노동자의 연차 사용권, 사용자의 시기변경권, 근로기준법 조항까지 정리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실제 회사 안에서는 그보다 복잡하다. 해당 직원의 업무 특성, 팀의 인력 상황, 이미 승인된 휴가와의 관계, 업무 공백 가능성, 유사 사례, 내부 규정, 관리자의 재량 범위까지 함께 봐야 한다.

평가도 마찬가지다. AI는 “공정한 평가는 객관적 기준과 피드백이 중요합니다”라고 답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실제 평가 운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목표 난이도, 조직 기여도, 협업 수준, 평가자 관대화, 부서 간 등급 편차, 보상 재원, 승진 가능성, 구성원의 수용성까지 연결된다. 평가 하나가 끝나도 그 결과는 보상, 승진, 조직문화, 퇴사 리스크로 이어진다. 그래서 HR은 단순히 점수를 계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평가 결과가 조직에 어떤 메시지로 남는지를 봐야 한다.

HR의 판단은 한 사람의 주장과 조직 전체의 기준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다.

징계나 노무 이슈는 더 조심스럽다. AI 답변은 일반론을 말해줄 수 있지만, 실제 사건은 늘 구체적이다. 사실관계가 다르고, 증거 수준이 다르고, 당사자의 진술이 다르고, 회사의 과거 처리 사례가 다르다. 그런데 누군가가 일반론 하나를 들고 와서 “이건 부당한 거 아닌가요?” 또는 “이 정도면 해고 가능한 거 아닌가요?”라고 말하면, HR은 그 순간부터 단순 상담자가 아니라 리스크 관리자이자 조정자가 된다.

결국 지식이 쉬워질수록 판단의 가치는 더 커지고 있다. 누구나 법 조항을 검색할 수 있고, 누구나 판례 요지를 읽을 수 있고, 누구나 HR 트렌드를 요약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우리 조직의 맥락에 맞게 해석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법적으로 가능한가”와 “조직적으로 바람직한가”는 다르다. “한 명에게 맞는가”와 “전체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가”도 다르다.

HR이 어려운 이유는 바로 그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정보를 가진 사람에서 기준을 가진 사람으로

AI가 등장한 이후 HR에게 필요한 역량은 단순히 더 많은 지식을 외우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지식을 검증하는 힘, 맥락을 읽는 힘, 기준을 세우는 힘, 그리고 그 기준을 사람에게 설명하는 힘이 더 중요해졌다.

특히 HRBP적 역할은 여기서 시작된다. 현업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현업이 놓친 리스크를 짚어주는 사람. 구성원의 불만을 단순 민원으로 치부하지 않고, 그 안에 있는 제도적 결함을 찾아내는 사람. 법과 규정을 방패처럼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납득할 수 있는 기준으로 번역하는 사람.

그래서 나는 요즘 HRBP라는 말을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HRBP는 단순히 전략회의에 들어가거나, 현업 리더 옆에서 조언하는 멋있는 역할만은 아니다. AI 시대의 HRBP는 정보 과잉 속에서 기준을 지키는 사람에 가깝다. 모두가 그럴듯한 답을 가지고 오는 시대에,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해석이며 무엇이 조직의 기준인지 구분해 주는 역할이다.

HRM의 운영 기준은 HRBP의 해석과 설득을 통해 현장의 언어로 이어진다.

물론 HR도 달라져야 한다. “그건 규정상 안 됩니다”라는 말만 반복해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구성원들도 이제 예전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오지 않는다. HR이 더 정확해야 하고, 더 빠르게 확인해야 하고, 더 쉽게 설명해야 한다. 내부 규정과 법령, 판례, 조직 운영 원칙을 연결해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AI가 준 답변보다 더 납득 가능한 답변을 해야 한다.

이건 꽤 부담스러운 변화다. 하지만 동시에 HR이 더 중요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정보가 부족했던 시대에는 HR이 정보를 가진 사람으로 기능했다. 그런데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는 HR이 기준을 가진 사람으로 기능해야 한다. 단순히 아는 사람이 아니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AI는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다. 구성원과 관리자는 더 많은 정보를 더 빠르게 얻게 될 것이다. 그러면 HR은 더 자주 질문받고, 더 자주 검증받고, 더 자주 설명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HR 입장에서는 피곤한 시대가 맞다.

그래도 이 변화가 꼭 나쁘다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부정확한 확신이 늘어나는 만큼, 정확한 기준의 가치도 커진다. 가벼운 주장들이 많아질수록, 책임 있는 판단의 무게도 분명해진다. “일단 질러보고 아니면 말고”라는 태도가 많아질수록, HR은 더 차분하게 사실과 기준을 붙잡아야 한다.

AI가 전문지식을 쉽게 만든 시대에 HR은 더 이상 단순 운영부서로 남기 어렵다. 제도를 관리하는 HRM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이제는 그 제도가 조직 안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작동하는지까지 책임지는 HRBP의 역할을 피할 수 없다.

결국 AI 시대의 HR은 이렇게 묻는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이 기준이 조직 전체에 설명 가능한가?”

“이 판단이 다음 사례에도 버틸 수 있는가?”

“구성원과 회사 모두에게 납득 가능한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HR은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역할을 하게 된다.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을 넘어, 조직의 기준을 세우고 지키는 사람.

아마 그것이 AI 시대에 HRM이 HRBP로 밀려나는 이유이자, 동시에 HR이 다시 전문성을 증명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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