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큼 기업의 거버넌스가 뜨거운 화두였던 적이 있었나 싶다. 2020년대 초 기업들이 앞다퉈 ESG 사업을 기획하던 무렵, 한 오너 기업 실무자는 "우리는 지배구조는 건드릴 수도 없다"고 말했다. 소유와 경영, 의사결정의 체계를 아우르는 거버넌스는 그만큼 대중은 물론 임직원조차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분위기를 바꾼 것은 반도체 호황이다. SK하이닉스와 삼성에서 성과보상 논쟁이 불붙으면서 "초과이익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투자한 주주의 몫인가, 아니면 이익을 만들어낸 임직원의 몫인가"라는 질문이 공론장에 올랐다. 여기에 SK하이닉스가 7월 10일 미국 나스닥에 ADR로 상장하면서 글로벌 투자자들의 시선까지 SK의 지배구조로 쏠렸다. SK 주식 한 주로 SK하이닉스와 앤트로픽에 함께 투자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 모든 논의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왜 지금, 기업의 주인을 묻는가?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용어부터 정리해 둔다. 이 글에서 '거버넌스'는 기업 운영과 비즈니스의 모든 구조, 체계, 프로세스, 이해관계 속에서 지속가능성을 고려해 의사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을 뜻한다. 반면 '지배구조'는 ESG 투자에서 주주 권리와 이사회의 통제 기능을 중시하며 기업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방식을 가리키는, 보다 좁은 개념이다(G [in] ESG, 사회적가치연구원, 2023).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 질문이 지금 특히 중요한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주주의 관점에서 거버넌스가 기업가치와 직결되기 시작했다. 자본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배구조와 이익 배분, 보상체계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한층 첨예해졌다. 자본시장연구원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 분석」(이슈보고서 23-05, 2023)에 따르면, 지배구조에 대한 정성적 평가가 높은 국가일수록 주가순자산비율이 높게 나타나며, 한국 기업의 저평가 역시 지배구조의 낮은 제도적 실효성 및 신뢰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물론 같은 보고서는 주주환원 수준과 수익성 같은 요인도 함께 작용한다고 짚는다. 그만큼 거버넌스가 기업가치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둘째, 소유가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문제가 눈앞에 와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2024 중소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경영자의 평균 연령은 55세이고, 60세 이상이 33.3%에 이른다. 2022년 기준 전체 236만 개 기업 가운데 후계자가 없어 지속경영이 어려운 곳이 28.6%, 곧 67.5만 개사나 된다. 친족 승계를 넘어 다양한 방식의 기업 승계를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은 개별 기업의 존속을 넘어 비수도권의 일자리와 지역경제의 지속가능성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셋째, AI와 AX가 일과 조직의 구조를 바꾸고 있다. 단순한 사무 업무는 자동화되고 신입사원을 더는 뽑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이제 낯설지 않다. 고용업무 자체가 '에이전트를 키우는 일'이 되기도 한다. 내 전문성을 학습시킨 에이전트가 업무를 넘겨받으면 나의 고용업무는 거기서 끝나는 셈이다. 제조업마저 다크 팩토리와 스마트 팩토리로 빠르게 자동화되는 지금, 자본을 댄 사람만이 기업의 주인일 수 있느냐는 물음은 더 이상 이론에 머물지 않는다.
한국종합기술, 국내 상장사 최초의 직원소유기업
이 물음에 하나의 실험적인 답을 내놓은 기업이 있다. 1,900여 명이 일하는 상장사에서 과연 가능한 일인가 싶어 여러 번 귀를 의심할 만큼, 인수 과정과 거버넌스 설계가 기적에 가까운 한국종합기술이다.
회사가 매각 위기에 놓이자 임직원 830여 명이 1인당 5,000만 원씩 똑같이 출자하고, 여기에 대출을 보태 경영권이 포함된 지분 52%를 사들였다. 2025년 8월 기준 최대주주는 임직원 1,035명이 출자한 KECC엔지니어협동조합이며, 대표이사는 1인 1표의 투표로 선출된다.
인수 직후 서둘러 만든 견제 구조도 인상적이다. KECC 출자임직원협의회 이사회는 부서별로 뽑은 이사 40명으로 이뤄져, 경영 현안과 출자자·임직원의 권익을 논의하고 지배구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감시한다. 1기부터 지금까지 네 명의 사장이 모두 출자 임직원의 투표로 선출됐는데, 2기부터 현 4기 대표까지는 젊은 시절 입사해 오랜 기간 일하며 선배이자 기술자로서 능력을 인정받은 출자자들이다. 대표에서 물러난 뒤에도 기본적인 예우를 받으며 직전 직무로 돌아가 계속 일한다.
이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인수 직후 닥친 경영위기 속에서도 소유와 경영을 분리했고, '임금 10% 반납 결의안'까지 통과시켰다. 단기적인 집단 이기주의가 아니라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임직원이 뜻을 모아 스스로 구조와 절차를 만들어낸 것이다. 2017년과 현재를 비교하면 임직원은 1,200여 명에서 1,900여 명으로, 매출액은 1,996억에서 3,769억(2023년), 수주액은 2,375억에서 5,563(2023년)으로 크게 성장했다. 특히 영업이익도 2020년 45억 9천만 원 흑자로 전환했고, 이후 이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모든 기업이 직원소유 모델을 따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례는 주주, 임직원, 정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기업에 영향을 미치며 투명한 거버넌스를 요구하는 시대에, '누가 주인이고 누가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를 구조로 설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AI가 산업의 패러다임과 일·조직의 구조를 빠르게 재편하는 지금, 미래의 기업과 일터는 어떠해야 하는지, 그 거버넌스는 어떻게 설계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