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은 결국 누구를 만족시켜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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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은 결국 누구를 만족시켜야 하는가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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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식
윤성식Aug 9, 2026
2007

누구를 만족시켜야 할까?

HR로 일하다 보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오래 붙들게 되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만족시켜야 하는가 라는 어떻게 보면 당연하면서 진부한 질문입니다.

저는 이 질문이 애초에 너무 당연한 질문이고 제가 HR라는 일을 선택한 이상 무의미한 질문이라고 착각했었습니다. HR의 일이란 결국 사람들이 회사를 좋게 느끼도록 만드는 일이고, 그러니 답은 자명하다고 여겼습니다.

답은 당연히 구성원 아닌가. 모든 구성원이 만족하는 상태, 그것이 HR의 존재 목적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실무의 어느 지점에선가 이 답이 명확하지 않으며 애매해지는 순간이 옵니다. 저에게 그 순간은, 상당히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많은 사람들과 논의하여 설계한 제도 하나를 두고 어떤 사람은 "왜 이제야 바꿨느냐"고 하고 어떤 사람은 "왜 굳이 바꿨느냐"고 하던, 같은 결정에 정반대의 불만이 동시에 돌아오던 날이었다. 어느 쪽도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더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날 저는 처음으로, 모두를 만족시킨다는 문장을 실제로 실행에 옮길 수 없다는 사실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체감했습니다.

모두를 만족시킨다는 것. 그것은 제 일을 정의하기에 근사한 말이지만, 현실에서는 한 번도 성립한 적 없는 명제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저의 역량이나 경험이 부족한 탓이라고 오래 생각했습니다. 이 글은 그 오해를 풀어간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100%의 만족은 불가능하다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우(Kenneth Arrow)는 1951년 『사회적 선택과 개인의 가치』에서 하나의 정리를 증명하고, 훗날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 그 이론이 불가능성 정리(Impossibility Theorem)입니다. 요지는 꽤나 단순합니다. 세 명 이상의 사람과 세 개 이상의 선택지가 있을 때, 개개인의 선호를 모순 없이 하나의 집단적 선택으로 합칠 수 있는 완벽한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각자가 아무리 합리적이어도, 그 합은 합리적으로 모이지 않습니다.

이 정리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묘한 위안과 서늘함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위안은 이런 것이 었는데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한 것은 내가 서툴러서가 아니라, 원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라는 것. 서늘함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그동안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을 향해 노를 저어온 셈이 아닌가. 그리고 위안이 죄책감을 덜어준 자리에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 들어섰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애초에 무엇을 향해 노를 저어야 했는가.

게다가 HR 담당자로서 저는 아직 '만족'이나 '행복'이 무엇인지 정의하지도 못했습니다. 당장 내 옆자리 동료와 나의 행복의 정의가 다릅니다. 누군가에게 행복은 성장이고, 누군가에게는 안정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그저 방해받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팀원은 도전적인 과제가 주어질 때 눈이 빛났고, 바로 옆 사람은 같은 상황을 위협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정의가 제각각인 변수를, 우리는 대체 무슨 수로 최대화할 수 있을까요? 측정할 수 없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 우리는 결국 측정하기 쉬운 것 “가장 큰 불만(목소리가 큰 이슈)”을 목표로 착각하게 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HR은 구성원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팀이 아닙니다. HR도 다른 모든 팀과 똑같이, 조직의 목표 달성에 기여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구성원이 행복하면 회사가 좋아질 것 같은 느낌, 행복이 곧 매출로 이어질 것 같은 가정은 검증되지 않은 직관일 뿐, HR의 존재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이와 관련된 연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상관과 인과는 다르고, 그 인과의 방향조차 아직 분명하지 않습니다.) 넷플릭스가 2009년 공개해 실리콘밸리 전체가 돌려본 컬처덱(Culture Deck)의 핵심 메시지가 "우리는 가족이 아니라 팀이다"였던 것도 그래서입니다. 가족은 서로의 행복을 무조건적으로 돌보지만, 팀은 공동의 목표를 위해 모인 사람들입니다. 넷플릭스가 "적당한 성과에는 넉넉한 퇴직금을 준다"고 명시했을 때, 그것은 냉정함이 아니라 존재 목적에 대한 정직함이었습니다.

들리는 목소리와 들리지 않는 목소리

그렇다면 HR은 누구를 만족시켜야 할까요? 애로우의 벽을 인정하고 나면, 답은 오히려 선명해집니다. 만족의 대상은 '개개인의 구성원'이 아니라 '회사의 목표와 방향성에 공감하고, 기여하며, 함께 가려는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이 사람들이 HR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대체로 조용하기 때문입니다. 방향에 동의하는 사람은 굳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습니다.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결과를 낼 뿐입니다. 반면 방향이 맞지 않거나 불만이 큰 사람들은 크게, 자주, 여러 채널로 말합니다. 그리고 큰 목소리가 공간을 채우면, 조용한 다수의 신호는 그 아래로 묻힙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이 함정에 여러 번 빠졌습니다. 익명 채널에 올라온 날 선 몇 줄, 회의에서 가장 강하게 밀어붙이는 한두 사람의 요구가 저의 하루를 통째로 지배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가장 시끄러운 문제를 가장 중요한 문제로 착각했고, 그것을 푸느라 정작 조용히 잘 해내고 있던 사람들의 결을 흐트러뜨린 적도 있습니다. 정말 뼈아팠던 건, 한 번도 불만을 말한 적 없던 사람이 어느 날 조용히 퇴사 의사를 밝혔을 때였습니다. 그는 큰 소리를 낸 적이 없었기에, 각종 서베이를 포함한 저의 레이더에 한 번도 걸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가 떠나고 나서야 저는 제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알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신호일수록 가장 조용하게 도착한다는 것을, 그렇게 뒤늦게 배웠습니다.

이것은 음향학의 신호 대 잡음비(signal-to-noise ratio)와 정확히 같은 구조입니다. 진폭이 큰 소리가 진폭이 작은 신호를 덮어버립니다. 볼륨이 곧 진실은 아니며 HR이 들리는 목소리만 따라가면, 조직은 가장 큰 소리를 내는 소수의 방향으로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끌려갑니다. HR이 들리는 목소리 외에 들리지 않는 목소리에까지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HR의 진짜 실력은 큰 소리에 빠르게 대응하는 속도가 아니라, 침묵을 해석하는 능력에서 드러납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시끄러운 신호를 만나면 먼저 이렇게 질문 합니다. 이건 신호인가, 소음인가. 이 목소리는 다수를 대변하는가, 아니면 단지 볼륨이 큰가. 그리고 지금 이 방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조용한 사람의 마음은 저절로 들리지 않습니다. 인터뷰든, 서베이든, HR이 먼저 다가가 물을 때에만 겨우 잡히는 미약한 신호입니다.

그래서 HR은 무엇을 푸는가

만족시켜야 할 대상이 정해지면 풀어야 할 문제도 정해집니다. HR이 다루는 문제는 크게 조직, 제도, 문화, 채용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넷은 모두, 방향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제 역량을 발휘하도록 돕는 환경과 시스템들입니다.

조직은 목표 달성의 골격입니다. 잘 짜인 조직은 목표를 향해 곧게 나아가고, 잘못 짜인 조직은 우왕좌왕합니다. 같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도, 누가 무엇을 책임지는지가 흐릿하면 에너지의 절반은 마찰로 새어 나갑니다. 저는 조직 구조를 바꾸는 것만으로 정체돼 있던 팀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반대로 잘 굴러가던 팀이 어설픈 재편 하나로 방향을 잃는 것을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보았습니다.

제도는 구성원들의 '당연함'의 합이 형식화된 형태입니다. 근무시간과 일하는 방식부터 휴가제도, 평가제도까지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문서로 만든 것이 제도입니다. 제도가 어려운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백지 위에 이상을 그리는 일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사람들의 '당연함'을 읽어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구성원의 당연함과 어긋난 제도는 아무리 정교해도 겉돌고, 그 당연함을 잘 포착한 제도는 굳이 강제하지 않아도 스스로 굴러갑니다.

문화는 그 '당연함' 중 형식화되지 않았지만 모두가 공유하는 가치관입니다. 그 집단끼리만 통하는 단어(예를 들면 판교어) 명시되지 않은 그라운드룰 같은 것들이 즉 다른 조직과 우리를 구분 짓는 이질적인 특이함이 되기도 합니다. 문화는 벽에 걸린 가치 선언문이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사람들이 실제로 하는 행동의 총합입니다. 새로 들어온 사람이 "여기선 원래 이렇게 해요"라는 말을 들을 때, 그 '원래'가 바로 문화입니다.

채용은 그 목표를 해낼 사람을 데려오고,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들고남 속에서 조직을 지속시키는 일입니다. 그리고 채용은 앞의 세 가지가 만나는 결절점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을 들이느냐가 조직의 형태를 바꾸고, 제도의 전제를 바꾸고, 문화의 가중치(혹은 기울기)을 옮깁니다. 넷플릭스가 강조한 키퍼 테스트(keeper test)인 “이 사람이 떠난다고 하면 붙잡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결국 채용과 유지의 같은 얼굴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네 가지는 따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축으로 꿰어집니다. 방향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좋은 조직 구조 안에서, 납득할 만한 제도와 공유된 문화를 바탕으로, 계속 합류하고 남을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HR이 푸는 문제의 전부입니다.

다시, 누구를 만족시킬 것인가

HR의 딜레마는 만족시켜야 할 대상이 너무 많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정작 만족시켜야 할 대상이 가장 조용하다는 데 있습니다.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순간 우리는 애로우의 벽 앞에서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큰 목소리만 좇는 순간 우리는 방향을 잃을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여전히 이 균형이 어렵습니다. 큰 목소리를 무시하라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그중에는 진짜 신호도 있습니다. 다만 볼륨을 진실로 착각하지 않는 것, 그리고 방 안의 침묵을 하나의 데이터로 읽어내는 것 그것이 제가 여러 번의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운 전부입니다. 어쩌면 HR이라는 일은 정답을 아는 직업이 아니라, 이 질문을 매번 다시 여는 직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 팀이 반응하고 있는 목소리는, 회사가 가려는 방향에 공감하며 조용히 기여하는 사람들의 것인가, 아니면 그저 가장 큰 소리일 뿐인가.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는 것에서부터 HR의 모든 일은 다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 Insight Summary]

  •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불가능성의 문제다.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는 개개인의 선호를 모순 없이 하나로 합칠 수 없음을 증명한다. HR이 이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죄책감이 아니라 전략이 시작된다.

  • HR은 구성원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팀이 아니라, 조직의 목표 달성에 기여하기 위해 존재하는 팀이다. '행복'은 정의조차 주관적이어서 최대화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우리는 가족이 아니라 팀이다"라는 넷플릭스의 선언은 냉정함이 아니라 존재 목적에 대한 정직함이다.

  • HR이 만족시켜야 할 대상은 개개인이 아니라, 회사의 방향성에 공감하고 기여하며 함께 가려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이들이 대체로 조용하다는 것이다.

  • 큰 목소리가 조용한 신호를 덮는 신호 대 잡음비의 구조 속에서, HR의 진짜 실력은 큰 소리에 대응하는 속도가 아니라 침묵을 해석하는 능력에서 드러난다. 조용한 사람의 마음은 먼저 다가가 물을 때에만 겨우 잡힌다.

  • HR이 푸는 문제는 조직·제도·문화·채용이며, 이 네 가지는 방향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제 역량을 발휘하며 계속 남게 하는 일이라는 하나의 축으로 꿰어진다.


성식
윤성식
지속가능한 성장과 사람, 시스템, 문화를 고민합니다.
성장과 조직문화를 고민하는 HR 담당자이자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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