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매거진B 발행인 조수용 님이 유튜브 채널 머니그라피에 출연해 브랜드와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1시간 남짓한 긴 영상인데, 좋은 얘기들이 많아 한번쯤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사람을 채용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점이 무엇이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조수용 님은 '피해의식이 없는 사람'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회사가 나를, 회사가 나를. 회사라는 건 없거든요. 그거 가상 인물이잖아요. 그냥 허상을 가지고 ‘회사가 나를 ㅇㅇ하는 것 같아’ 이 느낌에 사로잡히지 않는 게 되게 중요하고…”

지난 연말 오프피스트 밋업에서 현대차그룹 경영연구원 박정열 박사님도 비슷한 뉘앙스의 말씀을 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개인은 조직문화의 피해자가 아닙니다.”
얼핏 냉정한 이야기들로 느껴지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위 두 분이 ‘엄살부리지 마라’ 라거나, ‘너도 조직의 일원이니 책임이 있다’ 같은 차가운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는 우리 개인들이 ‘회사’나 ‘조직문화’ 같은 관념적인 단어에 속아 넘어가지 않길 바라는 조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며칠 전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주변을 잠시 둘러보았습니다. 이 회사에서 일한지 벌써 10년도 더 되었지만, 여전히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저 사람들의 ‘회사’와 나의 ‘회사’가 같을까? 선뜻 그렇다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들은 저들이 만나고 느끼는 만큼, 나는 또 내가 그런 만큼, 각자가 자기 나름의 경험들을 ‘회사’라는 이름으로 인식하며 생활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복동’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최고의 복지는 동료다!) 우리가 느끼는 일하는 환경의 수준은 결국 바로 옆의 동료들을 통해서 상당 부분 형성됨을 말해주는 표현입니다. 가끔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수화기 너머로 “회사는 좀 어떻니”라고 물으실 때, 저는 “좀 바쁘지만 괜찮아요, 잘 다녀요”라고 얘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무실 동료들을 떠올립니다. 회사의 건물이나 간판, 쓰다 만 보고서 같은 것들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매일 부대끼며 성취하는 그 시간들이 저에게는 ’회사‘이고, ’문화‘인 것 같습니다.
요즘은 구성원들의 개성을 존중해야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박정열 박사님과 고려대 심리학부 박선웅 교수님이 공저하신 책 <자기다움 리더십>에서도, 빅블러 시대에 걸맞는 혁신을 위해서는 당근과 채찍이 아니라, 직원들 개개인이 바라는 성장에 대한 이해와 지원이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존중’이라는 단어의 원어적 의미를 소개하는데요.
“존중을 의미하는 ‘Respect’는 라틴어 ’Respectus’에서 나왔다. ‘Re’는 ’되돌아‘ ’반복해서‘를, ’Spectus’는 어원상 ‘Specere’, 즉 ’본다‘를 뜻한다.”
“이렇게 볼 때 상대를 존중한다는 것, 즉 상대를 높여서 귀중하게 대한다는 것은 상대를 본질적으로 깊이 들여다보려고 애쓰는 일이다. 직원을 높여서 귀중하게 대하려면 직원 하나하나를 본질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저는 이 ‘존중’의 의미를 개인이 조직을 대하는 관점에도 똑같이 적용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회사는 이래서 문제야” 같은 말로 일터에서의 경험을 쉽게 뭉뚱그리기보다는, 오늘 내가 마주한 상대방과 일의 맥락들을 하나의 고유한 실체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마음입니다.
진정한 자기다움은 단순히 집단 속에서 나를 지켜내는 것을 넘어서, 세상과 의미있게 연결될 때 완성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가진 고유함을 맞대어야 할 상대는 ‘회사’ 나 ‘조직문화’ 같은 크고 추상적인 무엇이 아니라, 바로 내 옆의 동료, 나의 고객, 오늘 나에게 맡겨진 문제 같은 것들임을 마음에 새겨봅니다. 내가 써내려갈 수 있는 오롯한 내 삶의 이야기는 바로 그 지점에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요.
부족한 생각 짧게 나누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박정열, 박선웅 님의 책 <자기다움 리더십>을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