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레바리 <탁월함의 조건> 2번째 시즌의 첫 번째 책은 존 도어의 <OKR>이다. HR 담당자 중에서 OKR 때문에 울고 웃은 분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CEO가 조찬 모임에 갔다가, 혹은 책이나 영상을 통해 접하고 나서 "지금 당장 우리 조직도 OKR 도입해 보시죠!"라고 할 때, 그 막막함과 절망감을 충분히 공감한다. -
어쨌든, 지난 몇 년간 한국 기업들의 OKR 도입은 유행처럼 번졌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극명하다. "도입하길 잘했다"라는 평가도 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다" 혹은 "우리와는 맞지 않다"라고 말하는 분들도 많았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최근 트렌드는 '무조건 도입'에서 '검증 후 도입'으로 신중론이 우세한 것 같다. 좋은 기류라고 생각하며, 특히 경영진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도입은 결코 반대다.
레몬베이스에서 직간접적으로 느끼는 바에 따르면,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경영진의 적극성'이다. 목표 관리를 잘하는 조직은 예외 없이 경영진이 그것을 스스로의 책임으로 정의한다. 즉 OKR 도입 시, 우선순위, 얼라인, 투명성 이 3가지 목적이 중요하다는 것을 HR과 더불어 경영진이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OKR을 '평가 도구'가 아닌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시간은 걸릴 수 있지만, 끝내 조직 문화로 잘 정착시킬 수 있다. 3가지 목적을 구체적으로 파악해 보자.
OKR 프로세스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은 경영진 회의와 CEO의 결단이다. 모든 것을 다 잘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조직 에너지를 소수의 중요한 목표에 쏟아붓도록 설계된 것이 OKR이다.
만약, 지금 안정적인 비즈니스 상황이라면 여러 지표의 진척률을 확인하는 KPI 방식의 운영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물론 OKR는 목표 관리 체계를, KPI는 지표를 의미하기에 두 개념을 직접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럼에도 KPI는 성과를 '측정'하는 도구의 성격이 강하다. 전반적 프로세스를 챙기고 계기판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한다면 KPI를, 우선순위를 강조하기 위해선 OKR이 적절하다.
OKR을 수립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많은 비용이 요구되는데, 이는 OKR의 대표적인 단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부서 간 사일로 현상을 줄일 수 있다. 전사적으로 '중요한 우선순위'를 달성하기 위해 다른 부서와 긴밀하게 얼라인하고, 나아가 팀별로 좀 더 도전적인 목표를 고민하게 하는 것이 OKR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OKR 도입 시, 이러한 '장단점'을 명확히 알 필요가 있다.
반면, KPI는 기본적으로 맥락보다는 숫자를 강조하기에, 잘 설계되기만 하면 각 조직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돌아가는지를 측정하는데 강점이 있다. 다만, 이때 필연적으로 '터널 시야' 혹은 '부분 최적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른 팀의 요청을 들어주는 것이 우리 팀 KPI 달성에 도움이 안 될 때, '낭비'로 인식되기도 한다. 심지어 KPI 중심으로 부서 간 상대평가를 진행하는 경우, 더더욱 부서 간 협업을 방해하게 된다. 그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선, 부서 간 면밀한 KPI 설계와 소통이 필요하다.
잘 구성된 OKR은 구성원들이 회사의 목표와 우리 팀, 그리고 본인 업무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명확히 이해하게 한다. 내가 하는 일이 어떻게 상위 목표에 연결되는지 알면 몰입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팀이 무엇에 집중하는지 알 수 있기에 "아, 저 팀이 우리와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구나"라는 협력의 명분도 만들어준다. 물론, 그것은 단순히 OKR만 설정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리더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데, 전사 맥락을 잘 공유하고, 구성원의 강점을 바탕으로 OKR에 기여하도록 하는, 섬세한 커뮤니케이션이 요구된다.
반면, KPI 중심 조직에서는 이러한 '섬세한 얼라인'과 '맥락의 공유'가 실종되기 쉽다. 목표는 위에서 아래로 할당되지만, 구성원은 그 숫자가 왜 중요한지 모른다. 내가 하는 일이 전체 그림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 모르기에 몰입은 떨어지고, 옆 팀은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한정된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상대가 된다. 결국 리더십 또한 단순히 실적 달성 여부를 확인하는 '모니터링'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OKR 도입이 어려운 현실적인 이유들을 미리 살피고, 우리 조직에서의 도입이 적절한지 판단할 필요가 있다. 특히, 평가와 보상의 분리로 인한 어려움, 소통 비용, 잦은 주기로 인한 단점을 철저히 검토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될 때 차근차근 도입해야 할 것이다.
OKR의 특징이자 한국 정서상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바로 도전적인 목표 설정과 평가의 분리다. 우리는 오랜 기간 목표를 100% 달성하면 S등급을 받고, 달성하지 못하면 B나 C등급을 받는 정량적 평가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OKR은 70%만 달성해도 성공이라고 말한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막상 연말 평가 시즌이 되면 혼란이 온다. "엄청나게 높은 목표를 세워서 70% 달성한 A와, 만만한 목표를 세워서 120% 달성한 B 중 누구에게 고과를 더 잘 줘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공정한 평가 체계와 리더십이 없다면, OKR은 오히려 공정성 시비만 낳는 불쏘시개가 된다. 보상과 직결되지 않는 목표에 전력을 다할 구성원이 얼마나 될까? 이것이 현실적인 딜레마다. 그래서 개인적으론 OKR을 운영하더라도, '도전적 목표 설정'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말고 '우선순위'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편이다.
앞서 OKR을 좋은 커뮤니케이션 도구라고 했지만,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굴러가는 제도라는 뜻이다. OKR을 실제로 운영하는 엔진은 CFR(대화, 피드백, 인정)이다. 리더는 팀원과 1on1 미팅을 해야 하지만 문제는 현실 리더들은 그럴 시간도, 역량도 부족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준비되지 않은 조직에서 섣부르게 도입 시, 업무 시간 외에 별도로 해야 하는 성가신 행정 업무로 변질된다. 높은 소통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없는 조직, 특히 '단기간의 생존이 중요한' 조직에게 OKR은 권장하기 어렵다.
내가 주로 재직한 스타트업은 기술 변화가 극심한 산업에 속한다. 3개월마다 목표를 수정하고 기민하게 움직이는 것이 그리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모든 기업이 그렇진 않다. 제조업이나 단순 운영 업무 비중이 높은 조직, 혹은 이미 검증된 비즈니스 모델을 실수 없이 이행해야 하는 조직에게 OKR의 잦은 목표 설정 주기는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킨다.
나 또한 극 초기 스타트업을 제외하고, 거의 반기 위주의 사이클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즉, 매출과 이익이 안정적인 조직은 굳이 비싼 소통 비용을 치르며 OKR을 쓸 이유는 없다. 물론, 변화가 많이 필요하거나, 구성원들의 도전적 목표 의식을 불어넣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쓸 수도 있겠지만, 가급적 시범 운용 형태로 시작하는 것이 나은 선택이 될 것이다.
결국 OKR은 성능이 좋지만, 꽤나 까다로운 도구다. 존 도어의 책은 우리에게 이상적인 '북극성'을 보여주지만, 그곳으로 향하는 과정은 각자의 조직 상황에 맞춰 스스로 그려야 한다. 책에는 성공담이 가득하지만, 현실의 우리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마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트레바리 <탁월함의 조건> 2기, 첫 시간에는 이러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다. 책에 나오는 멋진 성공 사례보다는, 참가하시는 분들이 현장에서 겪은 처절한 실패담과 고민이 더 듣고 싶다. OKR 때문에 답답했던 마음, 혹은 우리 조직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막막했던 고민들을 가지고 오셨으면 좋겠다. 정해진 정답은 없겠지만, 서로의 경험을 나누다 보면 우리 조직에 맞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관심 있는 분들은 트레바리 <탁월함의 조건>을 신청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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