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이점의 시대(Age of Singularity)'는 1950년대 수학자 존 폰 노이만이 "기술의 가속화하는 진보가 인류 역사상 어떤 본질적 특이점에 접근하고 있다"고 언급한 개념을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이 발전시킨 개념입니다. AI가 인간의 삶과 문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변곡점을 의미하는데요.
수많은 채널을 통해 AI 관련 소식이 쏟아지는 요즘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 업데이트가 쏟아지고 있고, 또 많은 이들이 ‘특이점의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이점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걸까요?
‘집단’이 사라지는 시대
에드가 샤인 교수가 조직문화를 ‘특정 집단이 공유하고 있는 기본 가정(basic assumptions)’이라고 정의하듯, 조직문화의 기본 단위는 ‘집단’입니다. L&D가 구성원 개인의 개발에 포커싱한다면, 조직문화의 담론은 ‘집단’을 전제로 전개됩니다.
‘집단’의 변화관리의 지향점을 설정하고(MVC), ‘집단’의 기본 가정을 탐색하며(진단), 변화관리(혹은 MVC의 내재화)를 위한 각종 인터벤션을 진행해(이벤트, 워크숍, 교육 등), 기본 가정을 변화시키는 작업들을 진행하게 되죠. 그리고, 이는 Human Worker를 기본 단위로 하며, 기본적으로 ‘조직 내 모든 구성원은 유사한 능력치를 갖고 있으며, 유사하게 존중받아야 한다’는 ‘포용’이라는 가치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AI의 등장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 전제를 흔들고 있습니다.
먼저, AI Worker의 등장입니다. 생성형AI와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해 보신 분들은, 마이크로소프트가 <The Year the Frontier Firm is Born(2025)>에서 예견한 ‘인간-에이전트팀’의 등장이 그리 먼 미래가 아님에 공감하실 것입니다.
직무간 경계가 없어지는 지금, 조직내 커뮤니케이션의 형태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하나의 앱을 출시하기 위해서는 프론트엔드, 백엔드, UX 디자이너 모두가 필요했고, 그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했다면 이제는 AI의 도움으로 프로덕트 엔지니어가 홀로 모든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기존에 HR 담당자가 사내홍보 컨텐츠를 만들기 위해 사내 PR팀과 협의가 필요했다면, 이제는 혼자 가능하게 되었죠. 내 생각을 타인과 교류할 필요 없이, 그냥 프로덕트에 온전히 담아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존에 진행하던, Communication Cost를 줄이기 위해 진행했던 회의 문화 개선 담론은 어디까지 유효할까요?
두 번째, 모든 구성원은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는 포용적 ‘가정’의 흔들림입니다. 타운홀 미팅, OKR, DEI, 온보딩. 이 모든 아이템의 전제에는 우리 조직의 구성원들은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는 ‘가정’이 있고, 이 가정의 이면에는 “어차피 우리 조직에 있는 한, 업무 수준에 특출난 성과 차이가 없어”라는 숨겨진 가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많은 연구들은 AI가 고성과 인력과 저성과 인력간 격차를 더욱 심화시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홍보 수단의 발달(인스타)이 맛집 웨이팅 문화를 만들며 F&B 시장에서 양극화를 심화시키듯이 말이죠. 조직내 개인간 생산성의 차이가 심화된다고 할 때, 개인 각각의 의견이 조직 내에서 동등하게 다뤄질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전제로 한 각종 조직문화 담론들이 유효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기업의 기본 이념이 ‘민주주의’는 아니니까요.
최근 메타로부터 촉발된 AI 인재 쟁탈전과 ‘스타 플레이어’들의 등장은, 지금 당장은 AI 고급 인재의 부족 현상에 따른 것이지만, 향후 전 분야로 확산될 수 있는 이슈입니다. 보통 사람 5명으로 구성된 팀과, S급 인재 1명과 그에게 커스터마이징된 AI Worker 4명으로 구성된 팀이 있을 경우, 어떤 팀이 더 높은 성과를 낼 것인지는 자명해 보입니다. 또한 메타의 AI 인재 영입을 대해 Dell CEO가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현상이 내부 문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도 예상 가능한 모습이죠.
기업들은 포용과 성과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대규모 직원들의 align을 목표로 하는 타운홀, OKR 같은 아이템들은 앞으로도 유효한 담론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모두를 위한 문화’로서의 조직문화의 정체성은 유지되어야 할까요, 수정되어야 할까요?
‘문화’가 사라지는 시대
샤인의 정의로 다시 돌아가보겠습니다. 조직문화란 한 집단이 문제해결(외부 환경 적응, 내부 통합) 과정에서 학습, 발견, 만들어낸 ‘공유된’ 기본 가정입니다. 이처럼 조직문화는 Human Worker들이 함께 ‘문제해결’ 과정에서 경험하며 ‘공유된’ 가정들입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듯이, AI Worker의 등장은 업무환경을 초개인화시킵니다. 또 LLM이 중급 전문가 이상의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정말 우리 조직에 고유한 것이 아니라면 동료에게 도움을 요청할 일은 거의 없게 되죠.
업무환경이 개인화되고, 구성원들간의 문제 해결을 위한 상호간 협업이 사라질수록 조직내 축적되는 ‘공유 경험’ 자체가 줄어들게 됩니다. 회사 전체의 ‘하나의 문화’는 희미해지고, 각 개인 혹은 소수정예 팀 단위의 마이크로 컬쳐(Micro-Culture)가 부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직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 담론으로서의 조직문화는 희미해지는 것이죠.
그리고, 기본적으로 문화는 ‘문제해결’의 도구입니다. 불확실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문제 해결의 방향성을 제시해주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조직문화가 성과, 혹은 현재 조직의 생존에 FIT하지 않을 때 우리가 주로 꺼내드는 카드가 조직문화 ‘혁신’입니다.
하지만, 문제해결에 있어 AI가 가장 효율적인 방법론을 제시한다면? AI의 알고리즘과 효율성이 바로 조직의 성과로 이어진다면? 문화가 해 주던 ‘나침반’의 역할을 AI가 더 정교하게 수행한다면? 과연 조직문화의 존재 의의는 어디에 위치하게 될까요?
“당신이 지금 쓰는 AI는 앞으로 나올 최악의 AI”
<듀얼 브레인>에서 이선 몰릭 교수는 AI에 대응하는 전략으로 “당신이 현재 쓰는 AI가 앞으로 당신이 경험하게 될 AI 중 최악의 AI라고 가정하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위에 제가 언급한 화두 중 어떤 것은 현재에, 어떤 것은 근미래에, 몇몇은 좀 더 먼 미래에 위치해 있지만, 확실한 건 어제의 AI와 오늘의 AI가 다르고, 이러한 변화의 속도는 갈수록 점차 빨라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특이점의 시대를 맞아, 기존의 조직문화 담론은 도전을 맞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발전시켜 나가야할까요? 이는 단순한 HR의 고민이 아닌, 조직의 생존과 직결된 전략적 문제가 될 것입니다.
다음 글부터는 세부적인 아이템들에 대해 이어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