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R을 선택한 주니어에게 왜 이 일을 하느냐고 물으면 대답은 거의 정해져 있다. 사람이 좋아서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게 좋아서요. 누군가를 돕는 일이 보람 있어서요. 십 년 동안 이 질문을 수십 번 해봤지만, 답은 놀라울 만큼 비슷했다. 선의로 가득하고, 이타적이고, 듣는 사람을 안심시키는 대답이다.
그런데 이 대답을 한 사람들의 3년 후, 5년 후를 보면 흥미로운 일이 일어난다. 같은 질문에 같은 사람이 더 이상 같은 답을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말끝을 흐리고, 어떤 사람은 다른 단어를 찾는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이미 HR을 떠난 뒤다.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감정만으로는 이 일을 끝까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HR의 일상은 사람과의 따뜻한 대화로 채워지지 않는다. 나의 입장이 아닌 회사의 입장에서 해고나 권고사직을 통보하고,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두 부서 사이에 서고, 누군가의 기대를 깎아내리고, 정답이 없는 결정을 내린다. 사람이 좋다는 마음은 이 모든 순간에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부담이 된다. 좋아하는 마음으로는 거리를 둘 수 없고, 거리를 두지 못하면 판단할 수 없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사람이 좋다는 감정은 일의 원동력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좋아함은 동기로는 약하고, 버티는 이유로는 더 약하다. 좋아하는 일은 좋지 않은 순간이 오면 흔들리지만, 의미 있다고 믿는 일은 좋지 않은 순간에도 남는다. HR을 오래 한 사람들은 어느 시점에 이 차이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발견은 보통 조용히, 본인도 모르게 일어난다.
"사람이 좋아서요"라는 대답은 틀린 대답이 아니다. 다만 HR을 시작하는 입구의 대답일 뿐이다. 입구에서는 충분하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지속가능하지 않다. 이 일을 오래 한 사람들이 같은 질문에 다른 답을 하게 되는 이유는, 그들이 사람을 덜 좋아하게 되어서가 아니다. 사람을 좋아하는 것과 사람의 일을 잘하는 것이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HR을 오래 한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태도가 있다. 그들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동시에 그 사람이 놓인 환경을 본다. 누군가의 퇴사 면담에서 "팀장이 너무 힘들게 했다"는 말을 들으면, 일반적인 반응은 그 팀장의 행동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래 한 사람들은 한 단계 위를 본다. 그 팀장이 그렇게 행동하게 만드는 평가 구조는 무엇인가, 보고 라인은 어떻게 짜여 있는가, 권한과 책임이 어떻게 배분되어 있는가. 그들은 사람의 행동을 사람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이 태도는 사람을 싫어하게 되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사람을 진짜로 바꾸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결과다. 좋은 사람을 뽑아도 나쁜 구조 안에 들어가면 빠르게 망가진다. 평범한 사람도 좋은 환경 안에서는 기대 이상의 일을 한다. 십 년을 일하면 이 사실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시점부터 시선의 무게중심이 사람에서 환경 쪽으로 옮겨간다.
이 이동은 건축의 일과 닮아 있다. 건축가는 사람을 위해 건물을 짓지만, 사람과 일일이 대화하지 않는다. 그가 하는 일은 공간의 형태를 결정하는 것이다. 천장의 높이, 창의 위치, 동선의 흐름, 빛이 들어오는 각도. 이 결정들이 그 안에 살게 될 사람들의 행동을 바꾼다. 천장이 높은 공간에서 사람들은 더 추상적으로 사고하고, 좁은 복도에서는 마주침이 늘어난다(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환경심리학에서 반복적으로 검증된 결과다).
예를 들어 스티브 잡스가 픽사 본사를 설계할 때 가장 집착했던 결정 중 하나는 화장실의 위치였다. 캠퍼스 전체에서 화장실을 단 한 곳, 중앙 아트리움에만 배치하라고 지시했다. 컴퓨터 그래픽 엔지니어, 애니메이터, 시나리오 작가가 서로 다른 공간에서 일하면서도 하루에 몇 번씩은 같은 공간에서 마주치도록 만든 설계다. 잡스는 협업을 독려하는 캠페인을 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더 많이 소통하자"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저 화장실의 위치를 옮겼을 뿐이다(픽사의 한 임원은 이 결정에 대해 "처음에는 우리를 미치게 만들었지만, 그래서 하루 동안 모두를 마주치게 됐다"고 회고했다). 사람의 행동을 바꾸기 위해 사람을 설득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움직이는 동선을 바꿨다.
HR이 시간이 지나면서 도달하는 자리도 정확히 같은 자리다. 채용 프로세스의 형태, 평가 사이클의 주기, 보상 체계의 구조, 미팅 룰의 설계. 이 결정들이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결정한다. HR은 사람을 직접 바꾸려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일하는 환경의 형태를 바꾸고, 그 환경이 사람들을 바꾸는 것을 기다린다. 이것이 환경설계자(environmental architect)로서의 HR이다.
오래 한 사람들이 같은 질문에 다른 답을 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의 일이 더 이상 "사람을 돕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잘 작동하는 환경을 설계하는 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같은 직업이지만, 다른 직업이다.
환경설계자로서의 HR을 받아들이면, 일의 목표가 자연스럽게 재정의된다.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구성원 행복"이라는 익숙한 목표다. 많은 HR 조직이 자신의 임무를 구성원의 행복도, 만족도, 몰입도를 높이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매년 서베이를 돌리고 점수를 추적한다. 점수가 떨어지면 원인을 찾고, 점수가 오르면 성과로 보고한다. 이 사이클이 거의 모든 회사에서 반복된다.
문제는 이 사이클이 결과를 측정할 뿐 원인을 설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족도 점수는 환경의 결과물이지 환경 그 자체가 아니다. 점수가 낮아졌을 때 "왜 만족도가 낮은가"를 묻는 것은 이미 한 단계 늦은 질문이다. 그 점수를 만든 환경인 평가 구조, 의사결정 구조, 보상 체계와 행동의 연결점, 권한의 설계와 방식은 어떻게 짜여 있는지를 묻지 않으면, 만족도는 의미없이 오르내리는 지표일 뿐이다. (애초에 직원 만족도가 높으면 행복하고 낮으면 불행한가? 라는 질문도 이상하다)점수에 반응하는 일과 점수를 만드는 환경을 설계하는 일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많은 HR 조직이 첫 번째에 머무르고, 두 번째로 넘어가지 못한다).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은 이를 선택 설계(choice architecture)라는 개념으로 정리했다. 사람의 결정은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 그 결정이 일어나는 환경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같은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는 협력하고, 어떤 환경에서는 경쟁한다. 같은 사람이 어떤 평가 구조에서는 장기적으로 사고하고, 어떤 평가 구조에서는 분기 단위로만 사고한다. 사람을 바꾸려 하지 말고, 사람이 결정을 내리는 환경을 바꾸라는 것이 이 이론의 요지다. HR이 도달해야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그래서 오래 한 사람들이 묻는 질문은 다르다. 그들은 "구성원이 행복한가"를 묻기 전에 "이 조직의 평가 사이클은 어떤 행동을 보상하고 있는가"를 묻는다. "팀 만족도가 왜 떨어졌는가"를 묻기 전에 "이 팀의 의사결정 권한이 어디에 어떻게 배분되어 있는가"를 묻는다. 만족도는 환경이 잘 설계되었을 때 따라오는 결과지, 그 자체로 추구해야 하는 목표가 아니다. 행복을 직접 좇으면 행복은 도망간다. 환경을 정확히 설계하면 행복은 부산물로 따라온다.
이 관점의 전환은 HR의 일을 한 층 더 깊게 내려가게 만든다. 표면의 지표가 아니라 그 지표를 만드는 구조로, 결과가 아니라 원인의 형태로, 측정이 아니라 설계로. 이 한 층 아래에서 고민하고 일하는것이 진정한 일의 방식이지 않을까 한다.
환경설계자로서 일하는 사람이 지금 마주한 가장 큰 사건은 AI 다. 누구나 다 같은 이야기를 하겠지만 당연한 흐름이고 개인마다 느끼는 수준은 다르겠지만 이것은 새로운 도구가 등장했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들이 일하는 환경 자체가 재구성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채용 프로세스의 형태, 직무의 경계, 협업이 일어나는 단위, 의사결정에 필요한 시간과 같은 환경설계자가 다루는 모든 변수가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이 시점에 HR의 일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한쪽은 사람을 직접 돕는 일이다. 채용 일정을 잡고, 입사자에게 안내를 보내고, 평가 결과를 정리하고, 온보딩과 교육을 통해 인사정책을 안내한다. 이 일들은 AI가 빠르게 흡수한다(이미 흡수되고 있다).
다른 한쪽은 환경을 설계하는 일이다. 이 일은 AI가 흡수하기 어렵다. 어떤 환경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본질적으로 가치판단이며, 가치판단은 도구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구는 환경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지만, 어떤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는지는 결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AI 시대의 HR은 더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커진다. 단, 그것은 운영자로서가 아니라 설계자로서다. AI가 환경의 일부가 된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AI를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가 아니다. "AI가 일부가 된 환경 안에서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성장하고, 의미를 찾을 것인가"다. 이 질문에 답하는 일은 AI가 할 수 없다. 그 질문 자체가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글의 시작으로 돌아가게 된다. "사람이 좋아서요"라는 주니어의 첫 대답은 여전히 정답이다. 환경을 설계하는 일도 결국 사람에 대한 이해 위에서만 작동한다. 그러나 그 답은 더 이상 입구의 답으로만 머무를 수 없다.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 위에, 사람이 작동하는 환경을 읽고 다시 짜는 능력이 얹혀야 한다. 이것이 십 년이 지나도, 그리고 AI가 환경을 다시 흔드는 지금에도, HR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사람을 돕는 가장 정직한 방법은 사람을 직접 돕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잘 작동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 환경의 형태가 또 한 번 바뀌고 있다. 이번에는 AI가 그 환경의 일부가 되었다.
[🔍 Insight Summary]
HR을 시작하는 거의 모든 사람이 "사람이 좋아서"라고 답한다. 그러나 사람을 좋아한다는 감정만으로는 이 일을 끝까지 할 수 없다. 좋아함은 동기로는 약하고, 버티는 이유로는 더 약하다.
HR을 오래 한 사람들의 공통된 태도는 사람보다 환경을 본다는 것이다. 그들은 사람을 싫어하게 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진짜로 바꾸는 것이 환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다.
환경설계자로서 HR이 추구해야 하는 것은 구성원의 만족도가 아니라, 그 만족도를 만들어내는 환경의 형태다. 행복을 직접 좇으면 도망간다. 환경을 정확히 설계하면 행복은 부산물로 따라온다.
AI는 사람을 직접 돕는 일을 빠르게 흡수한다. 그러나 어떤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은 흡수하지 못한다. 이 시점에 HR은 운영자로서가 아니라 설계자로서 더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