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제는 기회가 아니다. 문제는 감당할 수 없는 성장이다."
스타트업은 빠르게 커진다. 아니, 커지려 한다. 투자 유치에 성공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인재 채용이다. 이제 막 제품-시장 적합성(PMF)을 입증한 팀이 다음 라운드 준비를 위해 인력을 늘리고 조직을 확장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사람은 두 배로 늘었는데 속도는 반토막 난다. 더 많은 개발자가 생겼지만 출시 주기는 늦어지고, 더 많은 영업 인력이 생겼지만 계약 전환율은 떨어진다.
이것은 ‘인력이 부족해서 일이 안 된다’는 관점에서 보면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역설에 가깝다. 성장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를 만든다. 우리는 이 지점을 펜로즈 효과(Penrose Effect)라고 부른다.
(사람이 늘어날수록 소통에 드는 비용이 비선형적으로 커지는 결과를 만들며 심지어 갈등 조정 비용까지 증가하며 수 많은 비효율을 만들기도 한다. 이 부분은 이후 아티클 브룩스의 법칙에서 별도로 다루어 보겠습니다.)
경제학자 에디스 펜로즈는 『The Theory of the Growth of the Firm』(1959)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업은 시장 기회 때문에가 아니라, 내부의 관리 역량(managerial capacity) 때문에 성장 속도에 제약을 받는다.”
펜로즈 효과는 스타트업이 확장 과정에서 겪는 성장의 한계에 대해 명확한 통찰을 준다. 기업의 성장은 단지 외부 수요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 자원(인력, 리더십, 조직시스템)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가 병목이 된다. 특히 펜로즈는 ‘해당 조직의 맥락과 특수성, 일하는 방식을 이해한 구성원(내재화 구성원)’는 단기간에 대량으로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무리한 채용과 사업 확장은 온보딩과 조정 비용을 폭발시키고 오히려 기존의 효율을 무너뜨린다고 본다.
중요한 건 단순히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의 관리 역량이 따라오느냐다. 아마존은 여기에 대한 모범 사례다. 아마존은 조직 규모가 거대함 불구(2025년 기준 약 150만명)하고, '투 피자 팀(two-pizza team)' 원칙, 강력한 리더십 원칙, 분산된 의사결정 구조를 통해 관리 자원을 함께 확장시켜왔다. 즉, 인력 확충과 시스템 설계가 동시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펜로즈 효과를 상대적으로 관리하면서 확장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존은 펜로즈 효과가 없는 조직이 아니라, 그 효과가 발현되지 않도록 설계된 조직이다.
즉 펜로즈 이론은 간단하다. 속도를 늦추는 건 시장이 아니라 내부 시스템의 미비다.
성장기를 맞이했거나 성장을 하려는 전형적인 스타트업의 사례들은 아래와 케이스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즉 성장을 감당하지 못한 기업과 아닌 기업으로 구분된다.
한 SaaS 스타트업은 시리즈 A 투자 유치 직후 30명이던 조직을 80명으로 확장했다. 개발자, 영업, 마케터를 한꺼번에 채용하며, 성장을 가속화할 준비를 했다. 그런데 버그는 급증했고, 신규 기능 출시 속도는 늦어졌다. 고객 응대도 뒤따르지 못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창업자와 초기 핵심 인력 3~4명이 여전히 대부분의 승인, 의사결정, 온보딩을 책임지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일을 할 사람’은 늘었지만, ‘일을 만들고 조율할 사람’은 그대로였다. 성장의 병목은 채용이 아니라 관리 역량 부족이었다.
직접 제품도 기획하고 영업도 하던 창업자가 있었다. 20명 규모에선 괜찮았다. 하지만 인원이 50명을 넘어서면서 대부분의 결정이 창업자에게 몰렸다. 이슈는 쌓였고, 의사결정은 늦어졌다. 팀 리더도, 중간 관리자도 없던 조직은 결국 '창업자 1인의 역량'이라는 병목에 갇히고 말았다. 이것이 펜로즈가 말한 관리 한계선의 실체다.
반대로 어떤 스타트업은 시리즈 B 직후에도 채용을 급격히 늘리지 않았다. 6개월간 채용을 멈추고, 팀 리더를 육성하고 온보딩 시스템을 구축하며 조직 정비에 집중했다. 이후 다시 채용을 시작했을 때, 인당 생산성과 매출이 동시에 증가했다. 이 조직은 ‘관리 용량’을 먼저 설계한 다음, ‘사람’을 늘렸다. 결과는 예측 가능했고, 안정적이었다.
시스템이 없으면 조직은 성장으로 무너진다. 스타트업의 핵심 문제는 '사람을 못 뽑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채용은 단순한 숫자 확대가 아니다.
그 채용이 실제 역량으로 전환되기 위해선 다음 세 가지가 반드시 설계되어야 한다:
온보딩과 내재화 체계: 신규 입사자가 조직 맥락을 이해하고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게 만드는 구조
조직간 인터페이스 협업 구조: 기능 간 협업이 병목 없이 작동하도록 만드는 커뮤니케이션 구조
결정의 분산 구조: 리더 1인의 의사결정에 조직 전체가 의존하지 않도록 권한을 분산시키는 설계
이 모든 것이 부재한 상태에서 채용은 ‘성장’이 아니라 ‘혼란’이다. 사람은 많아지지만 역할은 불명확해지고, 책임은 모호해지며, 실행은 지연된다.
1. 채용은 선택이 아니라 구조 설계의 결과다
HR은 더 이상 “몇 명을 뽑을 것인가”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먼저 질문해야 한다. “꼭 사람을 뽑아야 하는가?” “일을 줄이거나 자동화할 수는 없는가?” 일을 늘리기 전에 줄일 수 있는 일부터 설계해야 한다. 채용은 마지막 옵션이어야 한다. 단기적 성장을 인력으로 덮으려는 결정은 시스템 부재를 조직 비용으로 해결하겠다는 전략일 뿐이다.
2. 채용의 성과는 headcount가 아니라 전력화 기간이다
사람을 뽑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얼마나 빨리 그 사람이 전력화되는가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신규 인력은 합류 직후 오히려 생산성을 낮춘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온보딩, 시스템 적응, 협업 맥락 이해, 심지어 도구 사용까지 모든 것이 병목이기 때문이다. 결국 차이를 만드는 것은 ‘내재화 구조’다. 채용 성공이 아니라 내재화 성공이 조직 성과의 분기점을 만든다.
3. 일은 유동적이지만 사람은 고정적이다
일은 줄어들 수도 있고, 늘어날 수도 있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팀 규모도 줄어들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고용된 인력은 고정비다. 이 간극은 조직이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을 때만 해결된다. 일을 정리하지 못하는 조직은, 사람을 더 뽑으면서도 더 비효율적으로 일하게 된다. 역설적으로, 일을 하지 않기로 결정할 수 있는 조직만이 성장을 선택할 수 있다.
스타트업의 병목은 시장이 아니라 내부 구조에서 온다
조직이 확장되며 성장하려면 관리 역량(capacity)을 함께 키워야 한다
펜로즈 효과는 HR에게 채용 전략이 아닌 조직 설계 전략을 요구한다
사람을 뽑기 전에, 그 사람이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먼저 설계하라
HR은 headcount가 아니라 execution capacity를 설계하는 역할이다
“강한 조직은 더 많은 사람을 데려오기보다, 더 많은 사람이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