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게도 나에게 투자해 주는 회사를 만났다]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대기업 그룹사에 HR 신입공채로 들어가 훌륭한 선배/동료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운이 좋았던 포인트가 또 있습니다. 조직차원의 HR역량을 높이는 노하우를 배운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그 노하우가 무엇이라 짐작하십니까? ‘미친 인재밀도나 조직문화겠지 뭐’ 라고 생각하셨다면 잠시 다른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 옆 HR팀원의 성장정도가 곧 조직의 HR역량을 좌우한다는 것’ 입니다.
원티드를 비롯해 HRer들의 커뮤니티에 종종 나가보면, 스타트업이나 외국계 기업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주니어분들을 여럿 뵙습니다. 배우고 성장해서 조직에 공헌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고 가르쳐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그분들이 지닌 문제의식 입니다. 그래서 영향력 있는 멘토를 찾아가 커피챗도 하고 스터디도 하며 지식을 넓히고 조직에 적용하며 성장합니다. 그 분들의 CEO분들도 그들의 대외활동을 지지해 주신다는 것은 중요한 공통점입니다. HRer 의 성장이 조직의 HR역량을 좌우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아시기 떄문일 겁니다.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사실)
[잘 가르치는 회사가 알려준 HRer 성장 원리 : 이랜드 EHI 모델]
제가 운이 좋았던 포인트로 다시 돌아갑니다. 첫 회사 이랜드에서 HR 신입사원 10명 정도를 모아 EHI (Eland Hr Intelligence) 라는 과정을 진행해 주셨습니다. 면접왕 이형 이준희 선배님이 PM이셨고 탁월한 선배들이 커리큘럼을 짜서 저와 신입사원들을 가르쳐 주셨죠. 지면 사정상 과정을 다 설명 드릴 수는 없지만, 해당 커리큘럼의 핵심원리는 ‘영역별 사내 고수’를 통한 심층학습과 액션러닝 이었습니다. 대략 이렇게 진행됐습니다. HR의 영역을 보통 5~6가지로 구분하는데요. (확보-개발-평가-유지-보상-이직) 각 영역마다 사내에서 탁월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HR 선배들이 격주마다 자신이 진행한 프로젝트의 배경과 성공패턴을 말씀해 주십니다. 말씀이 끝나면 저와 신입사원들은 본.깨.적. 이라는 피드백을 꼭 합니다. 본 것 (들은 것), 깨달은 것 (새롭게 알게 된 것), 적용할 것의 약자죠. 그리고 조별로 쉐어를 하며 뇌에 한번 더 새깁니다. 그리고 1~2주를 살아가고 (액션러닝) 다음 커리큘럼 때에 다시 모여서 배운 것을 나눕니다. PM의 총평과 코칭을 듣고 개선점을 다시 찾아가죠. 선배들을 Best Practice로 한 일종의 Reverse Engineering 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은 창업자의 지시이기도 하셨고, 전준수 당시 CHO님 (지금은 멘토라이브러리 대표님) 의 설계이기도 하셨습니다. 요약하면 ‘회사’가 그렇게 하신 것이죠.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리고 어떤 유익이 있었을까요.
그렇게 배운 HRer 들은 다양한 성장경로 (누군가는 지주사의 HR파트 팀장으로, 누군가는 사업부에서 영업부서장으로, 누군가는 다른 계열사의 HR파트장 등으로) 를 거치며 각 계열사와 사업부의 HR 책임자들로 성장합니다. 지금은 HRBP 라는 말이 통상적인데요. 2010년 초반 이랜드는 JHO (CHO는 그룹을 총괄하는 개념이고 그 아래 레벨이라는 개념. Junior HO) 라는 이름으로 사업과 매우 밀착한 전략적 인사파트너 개념이 이미 있었습니다. CHO님 혼자 10조 넘는 회사의 HR을 책임질 수 없었지만, 이 과정을 통해 역설적으로 혼자서도 책임질 수 있게 되셨습니다. 잘 배운 HRer 들이 사업부에 나가 사업부 경영자들과 함께 조직의 HR력 전반을 올리는 선순환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잘 되는 조직은 어김없이 ‘잘 배운 HRer’가 있었고, 그들 밑에서 더 뛰어난 HR들이 키워지는 모습을 계속해서 발견하게 됩니다.
[나만의 인재경영 실험 : 성공과 실패]
2021년 입사 10년 차에 저는 또 큰 운과 만납니다. 그룹사 핵심법인의 인사총괄이 된 겁니다. 2년 동안 이 직을 맡으며 제 위 HR 상사(그룹사 CHO)는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룹사 사정과 전략에 의한 의도적인 공백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CHO로 불리며 (그룹에 2명의 CHO를 세우고 경쟁시키셨습니다) 지주사/대주주께 매주 보고하고 사업과 사람을 대하는 혜안과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저와 사업부의 인재경영에 대한 증명도 함께 해내야 하는 과제도 함께 받습니다. 실무도 챙기고 지주사 이슈에 모두 대처해야 하는, 이른 바 혼자 다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거죠.
그 때 저는 신입 사원때 제가 배운 그대로 ‘HR들을 키우는데 제 시간을 투자’ 합니다. 채용부터 노무, 급여까지 10여개의 커리큘럼을 세우고 30명 정도 되는 HRer들을 모아 매주/격주로 클래스를 엽니다. 제가 모든 걸 다 티칭 할 수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기에, 영역별로 팀장들을 강사로 세워줍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가르치는 과정을 통해 배우고, 듣는 사람은 질문과 액션러닝을 통해 배우게 되죠. 그 과정을 통해 저는 혼자 할 수 없는 것을 혼자 할 수 있게 됩니다. 잘 성장해준 법인의 HR 동료들과 함께 말이죠. 그 때 감당했던 매출이 2조였고 M&A 2건을 포함해 정말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랜드를 떠나 경험의 경계를 넓히기 위해 이직한 현 회사에서도 가장 먼저 이것부터 했습니다. 그런데 초기 실패가 있긴 했습니다. 당시 팀원분들은 정말 훌륭한 분들이었지만, 말로만 듣던 스타트업의 조직정치가 있던 시기라 그들을 강점에 맞게 배치하여 기회를 주지 못한 부분이 당시 제 실패의 원인이었습니다. HRer 들을 키우는 원리는 영역별 가르침도 중요한 요소지만 ‘강점에 의한 배치’ 가 선행조건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P. Drucker 는 ‘고성과는 강점배치와 정보제공으로 이뤄진다’ 라고 말했습니다. 즉, 영역별 커리큘럼은 정보제공에 가까운데 강점배치가 되지 않으면 고성과 즉, 조직의 HR력이 미치도록 높아지지 않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저보다 뛰어난 팀원분들이 새롭게 합류했고, 조직정치를 잘 정리하면서 HR 팀원들을 강점에 맞게 세워 다시 한번 영역별 커리를 통해 함께 배우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매주 2시간 (1달에 8시간) 의 시간할애를 통해, 저는 점차 HR 뿐만 아니라 조직의 운영과 전략 파트에도 조금씩 관여할 수 있게 됐습니다. 팀원분들은 각 영역에서 조용히, 때로는 화려하게 잘 활약하고 있습니다. 인재경영에 대한 투자 ROI를 확실히 보여주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제언 : 당신은 인재를 활용하고 계십니까 경영하고 계십니까]
실리콘밸리에서 오래 근무하셨던 분들의 강연을 종종 듣습니다. 그 분들의 말씀을 듣다 보면 공통적으로 ‘한국은 HRer들의 영역이 너무 넓은데, 미국은 Manager 들이 HR 영역을 함께 감당한다’ 라는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즉, 조직의 HR력이 성과를 좌우한다는 것을 알기에 HRer들에게만 맡겨두지 않고 조직의 HR력 자체를 성공요소로 본다는 것으로 해석 가능합니다.
조직의 미친 HR역량을 만드는 첫 단추로 저는 여러분 옆의 HR팀원의 성장을 다시 한번 강조 드리고 싶습니다. 제 성공과 실패 사례를 말씀 드린 것도 이 때문입니다. 더 뛰어난 HRer가 되어 조직에 기여하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먼저 '인재경영'을 시작해야 합니다. 팀원이 있다면 시간을 기꺼이 '투자'하여 키워 보시면 어떨까요. 시니어나 배울 사람 없이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면, 최고의 스승을 찾아 배우는 노력을 멈추지 마시길 바랍니다. 결국 한 사람의 성장이 옆 사람의 성장을 이끌고 그 에너지가 모여 조직의 레벨과 성취수준을 바꾸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