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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cripted : AI가 채울 수 없는 마지막 1%

Unscripted : AI가 채울 수 없는 마지막 1%

이제 인재의 기준은 '무엇을 아는가'가 아니라, '자신이 모르는 것을 어떻게 구조화하는가'로 바뀐다.
채용Tech HR조직설계전체
성식
윤성식Mar 22,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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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연주자들은 악보에 적힌 음표보다 음표 사이의 '여백'에서 진짜 실력을 증명합니다. 이를 언스크립티드(Unscripted), 즉 대본 없는 즉흥의 영역이라 부릅니다. 비즈니스 환경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과거의 우리는 이미 쓰인 대본(Script), 즉 교과서적인 지식과 선례를 완벽하게 외우고 실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손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방대한 대본을 가진 AI가 들려 있습니다. Chat GPT를 비롯한 생성형 AI는 수십 년간 쌓인 전문가의 지식 체계를 단 몇 초 만에 출력해냅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모두가 완벽한 대본을 갖게 된 세상에서, 대본에 적히지 않은 돌발 상황이 닥치면 우리는 왜 이토록 무력해지는가?

AI는 정해진 데이터 안에서 최적의 답을 찾지만,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는 언스크립티드한 상황, 즉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고 가치 판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는 멈춰버립니다. 이제 지능의 척도는 지식의 보유량이 아닙니다. 대본이 사라진 혼돈 속에서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가"를 정확히 인지(메타인지)하고, 파편화된 정보를 나만의 논리로 엮어내는(구조적 사고) 설계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1. 지식의 상향 평준화와 가치의 감소로 인해 전문성의 진입 장벽은 낮아졌다.

과거의 전문직은 자격증, 학위, 전문지식, 시험 등 도달하기까지 필요한 높은 비용과 시간을 요구했습니다. 수천 개의 판례를 머릿속에 담고 있는 법률적 식견, 수만 줄의 파이썬 코드를 비문 없이 짜 내려가는 숙련도, 혹은 방대한 시장 데이터를 통계 모델로 돌려 분석하는 기술은 그 자체로 범접할 수 없는 높은 진입장벽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진입장벽 안에 머무는 이들을 전문가라 불렀고, 그들이 들인 시간과 노력을 고액의 연봉으로 보상했습니다.

하지만 AI 워크(AI Work)가 보편화된 오늘날, 이 높았던 진입장벽과 비용은 압도적으로 낮아졌고 누구나 원한다면 자유롭고 쉽게 접근가능한 공공재로 변했습니다. 법전의 세세한 조항을 외우지 않아도 AI가 승소 가능성을 예측하고, 코딩 문법을 모르는 문과생도 자연어(Natural Language)로 소프트웨어를 구현합니다. 이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아니어도 전문가 수준의 전략 리포트를 단 몇 초 만에 생성할 수 있습니다.

즉 역설적이게도 지식이 상향 평준화될수록, 무엇을 아느냐의 가치는 감소합니다. 정보 탐색과 데이터 분석 비용이 제로(Zero)에 수렴하면서, 지식은 더 이상 조직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희소자본이 아닙니다. 전문 지식은 이제 승패를 가르는 변수가 아니라,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 당연히 갖춰야 할 상수가 되었습니다. 실력은 환경의 함수입니다. AI라는 초고속/저비용 환경에서 진짜 차별점은 지식의 소유가 아니라, 보편화된 지식을 어떤 맥락에 배치하고 어떤 결론을 도출해내느냐는 판단력에서 나옵니다.

2. AI는 '답'을 내지만, 인간은 '질문'을 던진다

AI는 현상을 가시화하고 방대한 데이터를 정리하는 데 있어 인간을 압도합니다. 하지만 이 압도적인 도구에게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습니다. 바로 '왜(Why)'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AI는 기존 데이터를 학습하여 이미 존재하는 자료 중 최적의 답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거나(Problem Framing), 조직의 철학에 기반해 고통스러운 결단을 내리는 언스크립티드한 영역은 AI이 가능한 범주를 벗어납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2025 보고서는 이 냉혹한 현실을 수치로 증명합니다. 언어 역량의 80%, 프로그래밍 역량의 70%가 이미 AI에 의해 대체 가능한 영역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우리가 전문성이라 믿었던 기술들이 빠르게 자동화의 파도에 휩쓸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역설이 발생합니다. 정보 탐색과 분석 비용이 제로(Zero)에 수렴할수록, 인간의 직관과 의사결정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합니다. 데이터가 완벽해질수록, 그 데이터를 해석해 마지막 1%의 방향을 트는 인간의 통찰력은 더욱 날카로워져야 합니다.

AI는 리스크를 계산할 수 있지만, 리스크를 감수할 수는 없습니다. 의사결정은 단순히 데이터를 선택하는 행위가 아니라,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분석이 자동화될수록 리더는 더 고차원적인 철학적 판단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3. 비싼 검색엔진을 뽑을 것인가, 사고의 설계자를 뽑을 것인가?

지금까지의 채용은 일종의 지식 보유량 테스트였습니다. 이력서에 적힌 화려한 기술 스택과 자격증은 그가 얼마나 많은 정답을 머릿속에 저장하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었습니다. 하지만 AI가 세상의 모든 정답을 0.1초 만에 내놓는 지금, 과거의 우수 인재는 순식간에 유지비가 비싼 검색엔진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제 질문의 방향은 완전히 바뀌어야 합니다. “그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가 아니라, “그는 자신이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알며(메타인지), 산재한 정보를 어떻게 연결하여 가치를 만드는가(구조적 사고)?”가 인재 판별의 중요한 척도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보의 탐색과 분석 비용이 제로(Zero)에 수렴할 때, 인간에게 남겨진 숙제는 그 정보를 '어디에, 왜, 어떻게' 배치할지 결정하는 설계 역량이기 때문입니다.

  • 메타인지: AI라는 거울 앞에서 나를 객관화하는 능력
    메타인지는 자신의 인지 과정에 대한 인지 입니다. AI 시대의 인재는 AI가 내놓은 답을 무조건적으로 맹신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Knowing what you don't know), AI의 결과물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나 편향을 잡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메타인지가 낮은 사람은 AI가 준 그럴싸한 가짜 정답에 휘둘리지만, 메타인지가 높은 사람은 AI를 자신의 능력을 확장하는 지렛대로 활용합니다.

  • 구조적 사고: 파편화된 정보를 가치 있는 솔루션으로 엮는 힘
    AI는 인간이 하기 어려운 수만 개의 데이터를 빠른 시간 내에 분석할 수 있지만, 그 점들을 연결해 유의미한 해석의 결과로 만드는 것은 구조적 사고의 영역입니다. 복잡한 비즈니스 상황을 논리적인 하위 요소로 분해하고, 각 요소 간의 상관관계를 파악하여 문제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는 설계 능력이 필요합니다. 지식은 이제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공공재에 불과합니다. 진짜 실력은 그 지식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구조적 사고에서 나옵니다.

4. 지식의 시대는 저물고 판단의 시대 입니다.

우리는 지금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 교차하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내 일자리가 AI에 의해 지워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번거로운 작업에서 해방되어 압도적인 생산성을 얻으리라는 기대감 입니다.

AI는 직업(Job)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직무(Task)를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분석 데이터가 보여주듯, 우리가 과거에 전문성의 핵심이라 믿었던 영역의 70~80%는 이미 AI가 인간보다 더 정확하고 빠르게 수행할 수 있는 자동화의 영역으로 넘어갔습니다. 정보 요약, 수학적 계산, 코드 구현과 같은 고숙련 지식 노동이 이제는 실행 비용이 압도적으로 낮아지며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공공재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AI는 우리에게 두 가지 거대한 선물을 주었습니다. 누구나 전문가의 뇌에 접속할 수 있는 정보의 접근성과, 수만 개의 데이터를 초 단위로 훑어내는 분석 시간의 절감입니다. AI가 정보의 탐색과 가공이라는 하드워크(Hard-work)를 떠안으며 우리에게 '시간'과 '여유'를 돌려주었다면, 이제 질문은 하나로 귀결됩니다. 우리는 그 귀한 리소스를 어디에 쏟아야 할까요? 그 답은 명확합니다. 바로 판단입니다.

이제 세상은 정답을 머릿속에 답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파편화된 정보들 사이에서 맥락을 읽고 최선의 선택을 내리는 판단을 하는 사람을 간절히 필요로 합니다. 지식의 시대는 저물었습니다. 이제는 판단의 시대입니다.


성식
윤성식
지속가능한 성장과 사람, 시스템, 문화를 고민합니다.
성장과 조직문화를 고민하는 HR 담당자이자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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