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후 4시, 작은 회의실 안에 탁자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다.
“지난 달 워노원(1on1) 이후 벌써, 한달이 지나갔네요. 요즘 회사생활은 좀 어떠세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최인사 팀장이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
“저야 뭐 언제나 즐겁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김문화 사원이 대답을 했다.
“늘 똑같이 좋다는 얘기겠지요? 문화씨는 언제나 긍정적이어서 같이 있는 사람도 기분좋게 만들어 줘요.
xx 불합리 개선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타팀 사람들도 하나같이 문화씨의 긍정에너지를 높게 평가하더라고요.”
의레적 멘트가 아닌, 구체적 사례를 활용한 칭찬과 인정 기법을 제대로 활용했다는 듯 스스로 뿌듯해 하는 표정이 최팀장의 얼굴에 비춰졌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내교육에서 배웠던 대로 사전에 김문화 사원이 다루고 싶은 주제에 대해 생각해오도록 했고, 해당 주제에 대해 10여 분간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최팀장은 중간에 끼어들고 싶은 욕구를 가까스로 참아내며, 경청스킬을 발휘했다.
“그래요. 정말 마음고생 많으셨을텐데, 꿋꿋하게 잘 이겨내셨네요. 앞으로도 근무시간 조정 등 제 도움이 필요하면 지금처럼 언제든지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그럼 이제 OKR 진척사항에 대해서도 잠깐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최팀장이 자연스럽게 1on1 주제의 전환을 시도했다.
"첫번째 목표인 'ㅇㅇㅇ 가격 경쟁력 강화'에 대한 핵심성과 중 '원가절감 아이템 10건 발굴'은 상반기가 다 끝났는데 진척사항이 제로(0) 군요. 이대로 가다가는 연말까지 똑같은 상황이 지속될 것 같은데, 목표달성 과정에서 방해가 되는 장애물이 무엇이 있을까요? 그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한 어떤 방법들이 있을까요?”
왜 못했냐고 다그치기 보다는 “무엇”과 “어떤”이 들어간 질문을 함으로써 긍정적 사고를 이끌어 내고자하는 노력하는 최팀장이었다.
“죄송합니다……”
김문화 사원이 선뜻 뒷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은 질책하는 자리가 아니니까, 편하게 말씀하시면 돼요. 문화씨를 도와드리려고 워노원을 하는 거에요.”
최팀장이 짐짓 목소리 톤을 밝게 하며, 책상 위로 양손의 깍지를 끼었다.
“그럼, 심리적 안전감을 갖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팀목표와 얼라인을 위해서 ㅇㅇㅇ 가격 경쟁력 강화와 원가절감 아이템 발굴을 OKR로 잡기는 했지만, 거기에 신경쓸 시간이 거의 없었어요.
아시는 것처럼 지난 주까지 xx 불합리 개선 프로젝트에 올인했구요.
작년에 할 수 있는 데까지 쥐어짜서 솔직히 더 이상 원가절감할 것도 없거든요.”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김문화 사원이 항변하듯 말했다.
“팀원 모두가 힘든 상황이란 걸 문화씨도 알고 있을 거에요. 문화씨가 여러모로 애쓰고 있는 건 고맙게 생각해요.
그런데 OKR은 탑다운으로 찍어내린 것이 아니라, 같이 협의를 해서 수립한 우선순위 업무 방향성이잖아요.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면 어쩌자는 거예요? 일단 다른 OKR 진행사항부터 먼저 확인하고, 원가절감 건은 마지막에 이야기하죠.”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기로 유명한 최팀장의 목소리에 약간의 떨림이 느껴졌다.
이후로 두 사람의 대화는 30분 가량 더 이어졌다.
목표와 핵심성과별 진행사항 확인과 언제까지 완료 계획인지 묻고, 답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이 할애되었다.
“끝으로 사원님이 좀 더 업무에 몰입할 수 있도록 제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1on1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진행하는 모습이 역시 베테랑 팀장다웠다.
“없습니다. 저만 열심히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럼 오늘 워노원은 이걸로 마치도록 할게요.”
오늘 하루도 최팀장은 리더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대표이사 보고, 정례 미팅 2건, 그리고 방금 전 1on1까지 하고 나니, 그 좋아하는 믹스커피도 1잔 밖에 마시지 못했다.
하루하루 성취감으로 충만한 최팀장이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찜찜함이 가슴 한 켠에 자리잡았다.
“사장님 빨간 거 한 병 더 주세요”
최인사 팀장이 단골 식당 주인에게 손가락 하나를 펼쳐 보이며 말했다.
“팀장님, 오늘 각 1병만 하자고 하시더니 이럴 줄 알았어요.”
빛의 속도로 나온 소주병의 목을 비틀며, 예이수 선임이 내심 싫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술은 홀수로 먹어야지요. 둘이서 3병만 먹읍시다.
그나저나 예선임님, 나하고 워노원 하고 나면 솔직히 어떤 느낌이 들어요?”
“혼자 소주 2병 마시기 전에는 공장 얘기 안꺼내시더니, 오늘은 빠르신데요?
팀장님 뒤끝없는 걸로 유명하시니까, 믿고 말씀드릴게요. 솔직히 기분이 별로예요.
학교 다닐 때 숙제검사 받는 느낌인데, 거기까지는 그러려니 해요.
근데, 숙제검사 하면서 그 자리에서 새로운 숙제를 왕창 내주시는 거는 정말 최악이에요.”
말의 내용과 어울리지 않게 평온한 목소리로 대꾸하는 예이수 선임이었다.
“지금까지 왜 그런 내색을 안했어요? 난 내가 제법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최팀장이 소주 잔을 입에 털어 넣으며 말했다.
소주가 달았다. 최고의 안주는 쓴 소리이다.
“팀장님이 일 잘하시는 거야 온 회사가 다 알지만, 스스로 워노원을 잘 한다고 생각하셨다니 놀랐어요.
지금까지 워노원 끝나고 나서 팀원들 표정 안보셨나요?”
“쨍그랑”
최팀장이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동시에 오늘 느꼈던 찜찜함의 정체가 뭔지 알 것 같았다.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