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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왕’ 조용필에게 배우는 커리어 지속성의 기술

‘가왕’ 조용필에게 배우는 커리어 지속성의 기술

조용필은 어떻게 ‘한 시대의 가수’가 아니라 ‘모든 시대의 가수’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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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석
이호석Nov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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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커리어의 아이콘 ‘조용필’

2025년 추석 밤, TV에서 방영된 ‘조용필, 이 순간을 영원히’ 공연은 추억 소환을 넘어, 그의 음악이 당대 얼마나 혁신적이고 세련된 사운드였는지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올해로 음악 인생 57주년을 맞은 조용필은 게스트도 없이 혼자서 밴드를 이끌며 150분간 28곡을 선보였다. 히트곡이 꼬리를 물었고 순간 최고 시청률은 18.2%까지 치솟았으며 방송 이후 곳곳에선 명불허전이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시대를 타지 않는 멜로디 라인과 탄탄한 코드 진행은 전혀 촌스럽지 않았고 일흔다섯의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흐트러짐도 없는 그의 무대 장악력은 압권이었다.

그는 과거의 영광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의 사운드로 끊임없이 자신의 음악을 재해석하며, 세대와 시대를 잇는 거대한 다리가 되었다. 제목은 몰라도 모두가 아는 노래, 그 선율에 깃든 각자의 서사가 한데 모여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잊지 못할 음악적 순간을 영원히 아로새겼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명곡, 세대를 잇는 감각, 2시간 반을 순식간에 지나가게 만드는 젊은 에너지까지 우리는 느꼈다. 57년 동안 정상에서 활동한 가수는 거의 없다. 시대가 변하고, 산업이 흔들리고, 기술이 바뀌어도 끝까지 ‘현역’으로 남는다는 것은 커리어의 영역에서 기적에 가깝다.

조용필은 어떻게 ‘한 시대의 가수’가 아니라 ‘모든 시대의 가수’가 되었을까?

오프피스트에서는 여러가지 요소 중 ‘직무전환’에 관해 정리해 본다.

예상치 못한 직무전환, 새로운 길이 되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밴드를 시작했고, 음악감상실과 나이트클럽에서 기타를 치던 조용필에게 알고 있던 한 무명 밴드가 연락을 했다. 기타리스트가 사고가 났으니 1주일만 그 자리를 맡아 달라는 얘기였다.

1971년 봄,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던 친구가 보컬을 담당했는데 입대영장이 나왔고, 그 자리를 메울 멤버는 없었으며, 밖에서 보컬을 구해 오자니 입맛대로 구하기에는 시간이 걸리고, 그래서 조용필이 맡게 된 거다.

연주와 노래를 병행한 연습 겸 무대활동의 시작이었다. 당시 연습량은 엄청났다. 밤에 숙소로 돌아와 다음날 아침 일어나면 음악살롱 연주 때까지 갖가지 음악을 들으면서 가슴에 와 닿는 대목을 악보에 옮겨 적는 일 채보를 했다. 광주 미8군클럽 연주생활을 하던 조용필은 1971년 현재 타악기 연주가로 명성을 얻고 있는 김대환, 나중에 그룹 ‘사랑과 평화’로 이름을 얻은 최이철과 함께 유명한 ‘김트리오’를 결성하고 부산에서 활동하게 된다.

직무전환의 성공 요소는 명확한 목표 설정, 꾸준한 역량 개발, 기존 경험의 활용,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다. 다시 말해, 현재 직무의 불만족 요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새로운 직무에 대한 열정과 적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며, 단기, 중기, 장기적 목표를 세우고, 새로운 기술과 '소프트 스킬'을 꾸준히 개발해야 한다.

이전 직무에서 쌓은 경험과 역량을 새로운 직무에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새로운 조직문화와 업무 방식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타벅스 CEO ‘하워드 워드 슐츠’의 사례를 살펴보자. 원래 제록스(Xerox)의 영업사원이었던 그는 스타벅스 매장을 우연히 방문하고 ‘경험의 비즈니스’에 빠져든다. 전혀 다른 산업이었지만 그는 자신이 가진 고객 관찰력과 비즈니스 감각을 새 영역에 맞게 재해석했고, 결국 스타벅스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운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의 사례도 흥미있다. 전형적인 금융 커리어를 걷다가 인터넷의 미래를 보고 아마존을 창업했다. 전혀 새로운 산업이었지만, 리스크 분석과 실행력은 오히려 초기 스타트업에서 강점이 되었다.

조용필의 사례를 대입해 보자. 조용필은 의정부 미군기지 밴드에서 리드 기타연주를 하는 동안 어깨 너머로 따라부르기를 지속하며 노래도 제법 할 수 있었다.

소리를 어떻게 ‘따야’하는지, 또 발성은 어떻게 하고 기타 연주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기에 혼자 모든 것을 궁리하고 생각하고 해결해 나갔다. 무대에 올라 ‘현실’그리고 ‘현장’과 부닥쳤다. 보컬을 맡아 소리를 질러대다 보니 목소리가 눈꼽만큼씩 트이기 시작했고 미세하게 음역도 넓어져 갔다.

문학수업으로 치면 ‘습작’의 연속이었다. 무대 위에서의 노래와 연주도 곧 연습이나 마찬가지였다. 음악살롱과 클럽 연주로 압축되는 조용필의 ‘습작’기간은 1969년 처음 그룹사운드 활동을 시작한 이후부터 12년이란 이어졌다. 무대 위에서 열창하고 연주하고, 연습하는 동안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개척한 것이다.

지속 가능한 커리어의 조건

트렌드는 바뀌고 스타는 사라지지만, 가왕은 여전히 무대 위에 있다. 지금 이 질문은 단순한 음악의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이 어떻게 생애 전체를 걸쳐 ‘현역’으로 남을 수 있는가에 대한 탐구다.

조용필의 롱런은 우연이 아니라 전략이고, 천재성만이 아니라 태도였다. 우리는 그의 음악에서, 그리고 그의 일하는 방식에서 ‘지속 가능한 커리어’의 조건을 읽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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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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