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는 꽤 괜찮은 사람이다. 고객이 무리한 요구를 해도 일단 듣는다. 상사가 애매하게 지시해도 표정을 관리한다. 팀원이 같은 실수를 반복해도 이렇게 말한다.
“괜찮습니다. 다시 한번 해보죠.”
그런데 집에 오면 달라진다.
아이의 짧은 대답에 목소리가 올라간다. 배우자가 별 뜻 없이 던진 말도 비난처럼 들린다. 부모님의 걱정은 잔소리로 받아들인다. 회사에서 잘 참던 사람이 왜 집에서는 쉽게 폭발할까?
회사에서 잘 참는 사람은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회의실에서 눌러둔 짜증, 고객 앞에서 삼킨 억울함, 상사 앞에서 감춘 불안, 팀원 앞에서 접어둔 실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몸은 퇴근했지만 감정은 아직 회의실에 남아 있을 수 있다. 문제는 그 감정을 가족이 만든 것이 아닐 때가 많다는 점이다. 가족은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일 뿐이다. 우리는 마지막에 만난 사람에게 가장 먼저 감정을 쏟아낸다. 가족이 만만해서가 아니다. 가장 안전하다고 믿기 때문에 풀어놓는 것이다. 그러나 받는 사람에게는 똑같이 상처다.
퇴근길에도 회의 장면이 계속 떠오른다.
‘그때 왜 그렇게 말했지?’
‘내가 너무 물렀나?’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지?’
그 상태로 집에 들어갔는데 아이가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놓았다. 평소라면 넘어갈 수 있지만 그날은 말이 세게 나간다.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니? 신발 좀 똑바로 둘 수 없어?”
신발은 방아쇠였을 뿐이다. 이미 피로와 억울함, 통제감을 잃은 불안, 인정받지 못한 마음이 장전돼 있었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집에서 신발 문제로 둔갑한 것이다. 여기서 더 참으면 안 된다. 이미 충분히 참았다.
필요한 것은 인내가 아니라 감정의 출처를 확인하는 일이다.
해외에서 돌아오면 공항에서 짐을 확인한다. 그런데 우리는 집에 들어갈 때 감정 가방은 확인하지 않는다.
오늘 회사에서 짜증을 들고 왔는지, 서운함을 들고 왔는지, 불안을 들고 왔는지 모른다. 확인하지 않으면 그 감정은 집 안에서 풀린다. 퇴근하기 전 반드시 감정의 입국심사를 해야 한다.
(우리 뇌는 입국심사를 반복할 수록 감정사용 숙련도를 높여준다. 조물주가 주신 놀라운 능력!)
https://www.6seconds.org/2023/07/13/enhance-emotional-literacy/

출처 : https://pubmed.ncbi.nlm.nih.gov/17576282/ 감정을 말하면 생기는 능력
집 앞 주차장, 엘리베이터 또는 현관문 앞에서 세 가지만 물어보자.
오늘 회사에서 가져온 감정은 무엇인가?
이 감정은 가족이 만든 것인가, 내가 들고 온 것인가?
지금 들어가면 이 감정이 누구에게 새어나갈 것인가?
답을 길게 쓸 필요는 없다. 감정의 이름 하나만 확인하면 된다.
“나는 지금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무시당해서 억울하다.”
“아이 때문에 짜증 난 것이 아니라 오늘 일이 풀리지 않아 불안하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올라오는 감정은 자동일 수 있다. 그러나 그다음에 어떤 말을 할지는 선택이다. 감정을 없애는 것이 정서지능이 아니다. 감정이 나를 끌고 가기 전에 알아차리고 행동을 선택하는 힘이 정서지능이다.
모르면 감정이 나를 운전한다. 알면 운전대를 다시 가져올 수 있다.
오늘부터 퇴근 전 1분은 반드시 멈춰야 한다. 이 확인을 하지 않으면 회사에서 받은 감정의 대가를 가족이 대신 치르게 된다. 현관문을 열기 전에 감정 가방부터 열어보자.
나는 오늘 무엇을 집으로 가져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