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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 선 사람들(HR)에게

경계에 선 사람들(HR)에게

HR의 정서적 피로감, 감정의 무게에 대해 건네는 작은 위로
HRBPHR 커리어코칭기타전체
승원
연승원Apr 3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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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이면 사무실 문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게 됩니다. 오늘은 어떤 목소리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 가만히 헤아려 보는 시간입니다. 18년을 같은 자리에 서 있었지만, 그 짧은 망설임만큼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HR은 늘 '사이'에 선 사람입니다. 회사의 언어와 구성원의 언어, 그 두 강 사이에 놓인 다리 같은 존재이지요. 조직행동 연구에서는 이런 위치를 일컬어 '경계 역할(boundary-spanning role)'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두 세계를 잇되,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자리. 다리는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양쪽 모두의 무게를 묵묵히 견뎌야 합니다.

100명이 있다면 100개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목소리들은 저마다 자기 사정이 가장 절실하다고 믿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사정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정이니까요. 그러나 HR의 책상 위에는 그 100개의 사정이 한꺼번에 쌓입니다.
누구의 손을 먼저 잡아야 할지, 누구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야 할지, 우리는 늘 미안한 마음으로 우선순위를 매기게 됩니다. 그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분은 우리에게 실망하고, 그 실망은 우리 마음에 크고 작은 멍으로 남습니다.

비밀을 안고 사는 일도 HR의 몫입니다. 누군가의 퇴사 사유, 누군가의 연봉, 누군가의 평가. 알지만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니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조차 마음을 풀어낼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그렇게 하루치의 감정을 가방에 담아 집으로 가져옵니다. 가방은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무거워져 가지요.

연구자들은 이러한 일을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이라 부릅니다. 자신의 감정을 누르고, 직무에 맞는 정서를 표현해야 하는 일. HR의 하루는 어쩌면 그 감정노동의 가장 농밀한 형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회사는 우리를 '직원의 편'이라 부르고, 직원은 우리를 '회사의 사람'이라 부릅니다.


어느 쪽에서 보아도 우리는 늘 반대편에 서 있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 어떤 날에는, 우리 자신이 누구의 편인지조차 흐릿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자주 피로한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자주 흔들리는 것도, 자주 소진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단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언제나, 가장 무거운 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무게를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요. 거창한 답은 없습니다. 다만 스스로에게 몇 가지 작은 약속을 건네 봅니다.

첫째,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무능이 아니라, 이 직무의 본질에 가까운 조건입니다.
둘째, 일과 나를 분리하는 연습입니다. 누군가의 실망은 그 분의 판단/감정이지만, 그 판단/감정만이 나의 본질 혹은 가치는 아닐 수 있습니다.
셋째, 같은 자리에 서 본 동료를 곁에 두는 일입니다. 회사 안에서 마음을 풀 곳이 없다면, 회사 밖에서라도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 이어져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만 아는 피로가 있고, 그 피로는 같은 자리에 서 본 사람만이 정확히 알아봅니다. (그런 연유로, 지금 바로 이 HR커뮤니티가 활발히 운영될 수 있고, 그 어느 직무보다도 HR들의 네트워킹 모임이 활발한 걸지도 모를 일이죠…!)
넷째, 작은 순간을 기록해 두는 일입니다. 누군가의 짧은 감사 인사, 어렵게 풀린 갈등 하나, 무사히 마친 채용 한 건. 그 작은 빛들을 모아두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가 해낸 일을 너무 쉽게 잊고 맙니다.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늘 사무실 문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 사람이, 이 글을 쓰는 저 말고도 분명 어딘가에 또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의 눈물 앞에서 함께 울지 못해 미안했던 사람, 좋은 답을 드릴 수 없어 밤 잠을 설친 사람, 회사의 결정을 전하면서 마치 자신이 그 결정을 내린 듯 죄송해한 사람. 그 모든 사람이 곧 우리입니다.

그러니 너무 혼자 짊어지지는 마시기를 바랍니다. 다리는 혼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양쪽 기슭이 함께 받쳐주고 있는 구조물입니다. 그리고 이 다리 위에는, 우리 말고도 같은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 늘 함께 있습니다.

오늘도 그 자리에 서 계셔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오늘은 우선 오늘을 묵묵히 살아가면 되는 날도 있다, Wonnie


승원
연승원
행동하는 철학가
HR로 시작한 커리어, 어느덧 십수년째 이 길에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소통이 있는 조직을 만드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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