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로 버려진 테무진은 어떻게 자기 사람을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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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로 버려진 테무진은 어떻게 자기 사람을 만들었을까

人事萬史 : 칭기즈칸, 씨족에서 제국으로 ①
조직설계리더임원CEO
영준
유영준Aug 3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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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초원 앞에서

12세기 후반 몽골 초원에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의 ‘몽골’이 존재하지 않았다. 여러 씨족과 부족이 흩어져 있었고 서로 혼인하고 동맹을 맺다가도 가축과 목초지, 오래된 원한을 둘러싸고 다시 싸웠다. 타타르, 메르키트, 케레이트, 나이만, 타이치우드 같은 집단들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였으며 한 사람의 지위도 그가 어느 혈통에 속해 있는지, 얼마나 많은 가족과 전사를 거느리고 있는지와 떨어져 생각하기 어려웠다.

테무진의 아버지 예수게이도 이런 초원의 유력자 가운데 하나였다. 보르지긴 계통의 귀족이었으며 일정한 세력과 인맥을 가지고 있었고 강력한 세력인 케레이트의 토그릴과도 관계를 맺고 있었다. 테무진은 그런 아버지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니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는 아이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고귀한 혈통이었다.

그러나 초원에서 아버지의 지위가 곧 아들의 지위를 보장하지는 않았다. 특히 아들이 아직 어리다면 더욱 그랬다. 예수게이가 죽자 그가 묶어두었던 관계도 함께 풀리기 시작했고, 어린 테무진에게 남겨진 것은 아버지의 권력이 아니라 그 권력이 사라진 뒤의 빈자리였다.

훗날 유라시아를 뒤흔드는 세력은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1. 우리 회사는

직원 일곱 명인 작은 회사가 있다. 대표와 함께 창업한 사람은 둘뿐이고 나머지는 회사가 제대로 자리 잡기 전에 들어왔다. 연봉이 특별히 높은 것도 아니다. 사무실도 작고 복지제도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다. 회사 이름을 말해도 알아듣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런데 첫 번째 직원이 아는 사람을 데려왔고 그 사람이 다시 함께 일했던 사람을 소개했다. 어떤 직원은 대기업 제안을 받고도 당장 회사를 떠나지 않았다. 대표가 사람을 붙잡는 특별한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일이 터지면 함께 고객사를 찾아갔고 매출이 부족한 달에는 자신이 먼저 급여를 늦게 받아갔으며 직원이 실수했을 때 고객 앞에서 책임을 대신 지기도 했다.

이런 회사의 초기 구성원에게 입사 이유를 물으면 답은 의외로 단순할 때가 있다.

“저 사람이라면 한번 같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사가 아직 조직으로서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했을 때 사람은 무엇을 보고 합류하는 것일까. 테무진의 곁에 처음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 과정도 이 질문에서 바라볼 수 있다.

2. 아버지가 죽자 사람들도 떠났다

『몽골비사』는 예수게이가 어린 테무진의 혼인을 의논하기 위해 옹기라트계 집단을 찾아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타타르인들의 게르에서 묵었다. 타타르인은 적이었지만 당시 초원에서는 피아를 떠나 손님을 융숭히 대접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관례는 깨어졌고 예수게이는 결국 그곳에서 독을 먹은 뒤 숨졌다고 전한다. 정확한 연대와 세부 경위는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예수게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가족의 지위를 크게 흔들었다는 점은 여러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예수게이를 따르던 사람들은 어린 테무진을 새로운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타이치우드계 지도자들이 사람들을 이끌고 떠나면서 테무진의 어머니 호엘룬과 아이들은 사실상 버려졌다. 얼마 전까지 유력자의 가족이었던 이들은 갑자기 스스로 먹을 것을 찾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몽골비사』는 호엘룬이 야생 열매와 뿌리를 캐고 물고기를 잡아 아이들을 먹였다고 묘사한다. 이 장면에는 후대 서사적 표현이 섞여 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지만 예수게이의 죽음 이후 가족이 심각한 생존 위기에 놓였다는 사실 자체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가족 안의 갈등도 커졌다. 테무진과 동생 카사르는 이복형 벡테르를 죽였다. 먹을 것과 가족 내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이 배경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오늘의 기준에서 이 사건을 성장담의 일부로 미화할 이유는 없다. 아직 십대였던 테무진이 살고 있던 세계가 그만큼 거칠었으며 그의 초기 권력 형성에도 폭력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건에 가깝다.

더 큰 위기도 찾아왔다. 한때 예수게이와 같은 정치적 관계망 안에 있었던 타이치우드 사람들이 성장하는 테무진을 붙잡았다. 정확한 시점과 경위에는 논쟁이 있지만 『몽골비사』에는 그가 목에 나무 형틀을 찬 채 포로로 끌려다니는 장면이 등장한다.

아버지의 이름만으로 사람을 움직일 수 있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게이의 아들이라는 혈통은 테무진에게 어느 정도의 정치적 자산을 남겼지만 그를 보호해주는 조직까지 남겨주지는 않았다.

3. 도망자를 숨겨준 사람

테무진은 타이치우드의 감시에서 탈출했다. 『몽골비사』에 따르면 그는 연회가 벌어진 틈을 이용해 자신을 지키던 사람을 따돌린 뒤 물속에 몸을 숨겼다. 사람들이 흩어져 그를 찾는 동안 소르칸 시라라는 사람이 테무진을 발견했다.

흥미로운 점은 소르칸 시라가 테무진 편의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타이치우드 쪽에 속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테무진을 즉시 고발하지 않았고 수색자들이 다른 곳을 찾아보도록 돌려보냈다. 이후 테무진은 그의 집을 찾아갔고 소르칸 시라의 아들 칠라운과 침바이도 그를 돕는 데 관여한다. 가족은 테무진의 형틀을 벗기고 양털 속에 숨겨주었다고 『몽골비사』는 전한다.

이 이야기가 전해지는 형태 그대로 모두 사실이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몽골비사』 자체가 칭기즈 칸 가문의 기억과 정치적 정당성을 담아 편찬된 문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서사가 흥미로운 이유는 테무진의 초창기 관계가 반드시 자신의 씨족 안에서만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테무진은 이때 아직 다른 사람에게 높은 지위를 약속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넓은 목초지도 없었고 전리품을 나누어 줄 군대도 없었다. 오히려 그를 도와준 사람이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소르칸 시라의 선택을 테무진의 ‘인재경영’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이 순간 관계를 선택한 사람은 테무진이 아니라 오히려 소르칸 시라였다. 하지만 훗날 테무진이 세력을 키워가는 과정에서 소르칸 시라의 아들 칠라운은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하나가 된다. 한 번의 도움으로 즉시 충성 관계가 완성되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초원의 정치적 관계가 혈연 하나만으로 만들어졌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여기에서도 드러난다.

4. 말을 찾아 나선 길에서 만난 사람

테무진과 보오르추의 만남은 더욱 인상적이다. 『몽골비사』에 따르면 어느 날 테무진 가족의 말들이 도둑맞았다. 테무진은 남은 말 한 필을 타고 흔적을 따라갔고 길에서 젊은 보오르추를 만났다.

보오르추는 처음 보는 테무진의 사정을 듣고 함께 말을 찾아 나섰다고 전한다. 두 사람은 도둑맞은 말들을 되찾았고 테무진은 그에게 보답하려 했지만 보오르추는 이를 받지 않았다. 이후 보오르추는 자신의 가족을 떠나 테무진에게 합류한다.

이 장면 역시 후대의 영웅서사처럼 다듬어졌을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말 한 번 찾아준 선행 자체가 아니다. 훗날 칭기즈 칸의 가장 가까운 동료 가운데 하나가 되는 보오르추의 관계가 혈연이나 정략혼이 아니라 두 젊은이가 함께 위험한 일을 해결한 경험으로 설명되고 있다는 점이다.

초원 사회에는 ‘노코르’라고 불리는 관계가 있었다. 단순한 부하라기보다 특정 인물을 선택해 따르는 개인적 동반자에 가까웠다. 혈연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태어나는 것과 달리 스스로 관계를 선택한다는 성격이 있었다.

테무진에게 이런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보오르추뿐만 아니라 젤메도 초창기부터 그의 곁에 들어왔다. 『몽골비사』에서는 젤메의 아버지 자르치우다이가 과거 예수게이와의 관계를 언급하며 아들을 테무진에게 보내는 장면이 등장한다. 따라서 젤메의 합류까지 모두 ‘혈연을 뛰어넘은 순수한 능력 중심의 인재 영입’으로 설명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아버지 세대의 관계와 기존 사회의 인맥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하나의 변화는 보인다. 예수게이에게서 물려받은 사람들이 테무진 곁을 떠난 자리에 테무진 자신의 경험을 통해 연결된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5. 물려받은 사람과 함께 겪은 사람

테무진에게 처음부터 특별한 조직철학이 있었다고 생각할 근거는 없다. 어린 시절 버림받은 경험 때문에 의도적으로 수평적인 문화를 만들었다거나 ‘신뢰경영’을 깨달았다고 말하는 것도 후대의 결과를 과거에 투영하는 해석이다.

그가 세력을 얻는 과정에는 혈통도 중요했고 혼인도 중요했으며 아버지 예수게이가 남긴 관계 역시 활용되었다. 훗날 보르테와 결혼하고 케레이트의 토그릴에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도 기존 관계망과 무관하지 않았다. 초원의 정치에서 혈연과 귀족적 계보가 갑자기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테무진의 세력이 커지는 과정에는 그것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계속 등장한다. 보오르추처럼 스스로 찾아온 사람, 젤메처럼 기존 관계를 통해 합류했지만 이후 자신의 행동으로 자리를 만든 사람, 소르칸 시라의 가족처럼 한때 적대 세력 안에 있으면서도 다른 선택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출신이 같다는 데 있지 않았다. 테무진과 무엇인가를 함께 겪었다는 데 있었다.

조직이 아직 크지 않을 때 직함은 큰 의미를 갖기 어렵다. 정교한 인사제도도 없고 평가체계도 없다. 누구에게 어떤 권한이 있는지조차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이 시기에 사람을 붙드는 것은 제도보다 반복해서 확인되는 행동이다. 위험할 때 누가 도망가지 않았는지, 얻은 것을 어떻게 나누었는지, 약속을 지켰는지 같은 경험이 관계의 기준이 된다.

테무진의 초기 세력에서도 이런 개인적 신뢰가 중요한 결속 장치 가운데 하나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이후의 성공을 설명해서는 안 된다. 테무진은 동맹과 혼인을 활용했고 전쟁에서 승리했으며 때로는 적에게 가혹한 폭력을 행사했다. 초원 각 세력의 대립과 금나라를 비롯한 주변 정치환경도 그의 부상에 영향을 미쳤다. 사람의 신뢰는 그 가운데 한 요소였다.

6. 조직이 생기기 전의 조직

오늘의 HR에서는 조직에 들어온 사람을 어떻게 정착시키고 관계를 형성할 것인지 여러 제도로 설명한다. 채용, 온보딩, 조직문화 같은 용어가 있고 규모가 커지면 평가와 보상체계도 필요해진다.

그러나 작은 회사의 시작에는 그런 제도가 제대로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첫 직원은 완성된 회사를 선택하지 않는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회사불확실한 미래를 선택한다.

그때 사람들은 사업계획서보다 함께 일할 사람의 행동을 더 가까이에서 본다. 대표가 고객과 약속을 어떻게 지키는지, 돈이 부족해졌을 때 누구의 몫부터 줄이는지, 실패한 직원을 어떻게 대하는지,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에서도 했던 말을 지키는지를 본다. 작은 행동이 반복되면서 그 사람과 다시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

여기서 형성되는 신뢰는 좋은 분위기와는 다르다. 서로 좋아하는 사람끼리 모이는 것만으로 조직이 되는 것도 아니다. 함께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상대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게 되는 상태에 가깝다.

초기의 테무진에게도 거대한 제국의 인사제도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먼저 몇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들이 전쟁과 이동, 배신과 생존 등 생삳고락을 함께 겪으며 그 관계 위에 조금씩 더 많은 사람이 붙었다.

제도보다 관계가 먼저 생긴 것이다.

이 방식에는 분명한 한계도 있다. 조직이 커지고도 계속 개인적 신뢰만으로 운영하면 대표와 가까운 사람이 힘을 갖게 되고 새로운 구성원은 중심부에 들어가기 어려워진다. 테무진의 세력이 커지면서 결국 관계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겼고 그것은 훗날 조직 편제권한 배분의 변화로 이어진다.

하지만 아직은 그 이전이었다. 사람 몇 명의 선택이 조직의 거의 전부였던 시기였다.

7. 다시 우리 회사로

직원 일곱 명인 그 회사가 언젠가 일흔 명이 된다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운영할 수는 없다. 친밀함은 규칙을 대신할 수 없고 대표에 대한 신뢰만으로 모든 갈등을 해결할 수도 없다. 결국 역할과 권한, 평가와 보상 같은 제도가 필요해진다.

그렇다고 제도가 신뢰를 대신해주는 것도 아니다. 초기 구성원이 왜 이 회사에 들어왔는지를 들여다보면 회사가 아직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던 시절 누군가 먼저 위험을 감수했고 다른 사람이 그 행동을 지켜본 시간이 남아 있을 때가 있다.

예수게이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테무진의 가족을 떠났다. 아버지에게 속했던 사람들이 아들에게 자동으로 승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뒤 테무진 주변에는 조금씩 다른 사람들이 생겨났다. 소르칸 시라처럼 위기의 순간 그를 도왔던 사람도 있었고 보오르추처럼 함께 위험을 감수했던 사람도 있었으며 젤메처럼 이전 세대의 인연에서 출발해 오랫동안 곁을 지킨 사람도 있었다.

제국은 훨씬 뒤의 이야기다. 그보다 먼저 몇 사람이 한 사람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 회사에 있는 사람들은 연봉과 직함 때문에 남아 있는 것일까, 아니면 함께 일할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영준
유영준
일과 사람을 잇는 한량
일과 사람을 잇는 한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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