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나갈 사람이라는 전제] ③ 교육 정원표는 누구의 미래를 계산하는가

[곧 나갈 사람이라는 전제] ③ 교육 정원표는 누구의 미래를 계산하는가

교육 정원을 남은 기간이 긴 사람부터 채우는 것은 편견이 아니라 산수다. 그러나 그 식에는 빠진 항이 있다.
조직문화리더십전체
정연
인생여행자 정연Nov 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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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가 되면 교육 담당자의 책상 위에 정원표가 놓인다. 과정별 정원과 부서별 배정 인원, 그리고 부서에서 올라온 추천 대상자 명단. 표 어디에도 나이를 적는 칸은 없다. 그런데 명단의 연령 분포를 들여다보면 한 가지가 눈에 띈다. 정년을 몇 해 앞둔 이름은 드물거나, 아예 없다. 누구도 그렇게 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정원은 한정되어 있고 투자에는 회수 기간이 있다는 상식이, 명단을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다.

정원표의 산수

이 상식에는 탄탄한 이론적 뒷받침이 있다. 교육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이고, 투자는 회수할 수 있는 기간이 길수록 유리하다. 경제학자 게리 베커가 체계화한 인적자본 이론의 가장 기본적인 명제다. 같은 비용을 들여 같은 기술을 가르친다면, 그 기술을 20년 쓸 사람이 5년 쓸 사람보다 조직에 더 많은 것을 돌려준다. 정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남은 기간이 긴 사람을 먼저 고르는 것은 편견이 아니라 산수다.

2편에서 퇴장 전제를 '편견이 아니라 계산'이라고 불렀는데, 교육 정원표는 그 계산이 가장 투명하게 드러나는 문서다. 그리고 바로 그 투명함 때문에 좀처럼 의심받지 않는다. 숫자에 기반한 결정은 공정해 보인다. 그러나 산수가 정확하다고 해서 식이 올바른 것은 아니다. 이 식에는 적어도 세 개의 항이 빠져 있다.

식에서 빠진 세 개의 항

첫 번째로 빠진 것은 기간 그 자체의 변화다. 회수 기간을 정년까지의 햇수로 잡는다면, 정년이 늘어나는 순간 모든 사람의 회수 기간을 다시 잡아야 한다. 쉰다섯 살 직원의 남은 기간은 정년 60세 기준으로 5년이지만, 65세 기준으로는 10년이다. 식은 그대로인데 변수가 바뀌었다. 그런데도 정원표의 순서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2편에서 말한 옛 상각표가 여기서도 쓰이고 있는 셈이다.

두 번째로 빠진 것은 머물 가능성이다. 기대 재직 기간은 남은 햇수만으로 정해지지 않고, 실제로 그만큼 머물 가능성을 함께 따져야 한다. 1편에서 보았듯 정년을 앞둔 장기근속자는 조직에서 가장 떠나지 않을 사람들이다. 이 사실이 투자의 우선순위를 뒤집지는 않더라도, 남은 햇수 하나로 순서를 정하는 셈법이 생각만큼 정밀하지 않다는 점은 보여준다.

세 번째로 빠진 것은 투자하지 않는 비용이다. 정원표의 식은 교육비와 그 회수만 따진다. 그러나 교육을 받지 못한 고경력자의 인건비는 어차피 정년까지 지급된다. 이미 치르고 있는 비용 위에서 기여만 낮은 채로 남는다면, 그 차이가 곧 투자하지 않은 대가다. 게다가 고경력자가 새로 익힌 것은 그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오랜 경험과 새로운 도구가 결합되면, 그것은 후배들에게 가장 빨리 전달되는 지식 전수 형태가 된다. 회수의 주체를 개인으로만 잡은 계산은 이 승수를 보지 못한다.

가장 근거 있는 고정관념

여기까지는 정원표를 짜는 쪽의 이야기다. 이제 반대편, 명단에서 빠진 사람들 쪽을 보자.

고경력 근로자에 대한 흔한 고정관념 여섯 가지를 20만 명이 넘는 표본으로 검증한 메타분석이 있다. 의욕이 낮다, 변화를 싫어한다, 남을 덜 믿는다, 덜 건강하다, 일과 가정의 균형에 취약하다. 이 다섯은 근거가 없었다. 단 하나만 데이터와 맞아떨어졌다. 교육과 경력개발에 참여하려는 의지가 낮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정원표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발견이다. 본인들도 배우려 하지 않는데 굳이 자리를 내줄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메타분석은 그런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 이유까지 말해 주지는 않는다. 몇 해째 대기 순번에 머물러 본 사람, 교육을 다녀오면 자리를 비운 사람으로 평가받을까 걱정해 본 사람, 결원이 생길 부서 사정 때문에 신청서를 접어 본 사람의 참여 의지는 어떻게 될까. 무엇보다, 배운 것을 쓸 자리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이라면.

진로 심리학은 이를 ‘결과기대’라는 말로 설명한다. 어떤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기대할 수 없을 때, 사람은 능력이 있어도 그 행동을 시작하지 않는다. 배워도 쓸 곳이 없다면 배울 이유가 없다. 그렇게 보면 여섯 가지 고정관념 가운데 유일하게 사실로 확인된 그것은, 원인이라기보다 결과에 가깝다. 가장 근거 있는 고정관념이, 가장 잘 만들어진 결과일 수 있다. 2편에서 말한 스스로를 증명하는 예언이 교육의 영역에서 작동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교육을 늘리면 되는가

여기서 자연스러운 결론이 하나 떠오른다. 정원을 더 배정하면 되지 않는가. 고경력자 전용 과정을 만들고, 대기 순번을 없애면 되지 않는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맞는 절반은 배분이다. 정원표의 순서가 남은 햇수로 정해지는 한, 참여를 독려하는 어떤 캠페인도 효과가 제한된다. 기회 자체가 오지 않는 사람에게 참여 의지를 묻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질문이다. 대기 순번을 없애는 일은 필요조건이다. 틀린 절반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믿는 데 있다.

교육을 다녀온 직후 반짝 살아난 의욕이 몇 주 만에 가라앉는 장면은 HR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보았을 것이다. 과정은 훌륭했고 만족도도 높았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돌아온 자리에서 하는 일이 떠나기 전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교육의 효과는 교육장 안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이수한 다음 무엇을 맡게 되는지에서 결정된다. 배운 것을 쓸 자리가 이어지지 않으면, 교육은 잠시의 환기에 그치고 앞서 말한 결과기대는 한 번 더 낮아진다. 기회를 늘리기만 하는 처방이 오히려 체념을 확인시키는 경로가 될 수도 있다.

도구의 격차가 목소리의 격차로

이 문제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디지털 도구다. 협업 도구와 데이터 용어에 서툰 사람은 회의에서 자연스럽게 말수가 줄고, 주도권이 옆으로 넘어간다. 판단력이나 통찰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도구를 다루는 속도가 발언의 무게를 대신 결정할 뿐이다. 그렇게 도구의 격차는 목소리의 격차가 된다.

더 곤란한 것은 그 침묵이 다르게 번역된다는 점이다. 말수가 줄어든 사람은 관심이 없거나 변화를 꺼리는 사람으로 읽히기 쉽다. 도구의 문제가 태도의 문제로 둔갑하는 순간이다. 이 번역의 문제는 연재의 뒤편, 조직 문화를 다루는 편에서 다시 이야기하려 한다.

격차 자체는 교육으로 좁힐 수 있다. 다만 여기서도 원칙은 같다. 도구를 익힌 뒤 그 도구로 해야 할 일이 있어야 한다. 후배가 도구를 가르치고 선배가 맥락을 가르치는 상호 멘토링은 좋은 출발점이다. 배움과 세대 사이의 교류가 한 자리에서 일어나고, 배운 것을 곧바로 함께 쓸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과정보다 역할을 먼저

그래서 처방의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 교육 과정을 설계하기 전에, 그 과정을 마친 사람이 맡을 역할을 먼저 정의하는 것이다. 교육 이수 후 맡을 자리가 정해지지 않은 과정은 새로 만들지 않는다는 원칙이면 충분하다. 데이터 분석 과정이라면 부서의 데이터 검증 업무를, 리스크 관리 과정이라면 신규 과제의 초기 위험 검토를 함께 설계하는 식이다. 이렇게 설계하면 부수적인 효과도 생긴다. 교육을 보내는 부서 입장에서 교육은 더 이상 결원이 아니라, 부서에 새로운 역할을 들여오는 일이 된다. 참여를 가로막던 현장의 셈법이 함께 바뀌는 것이다.

교육 부서의 성과 지표도 따라 바뀌어야 한다. 수료 인원과 만족도가 아니라, 이수 후 실제로 역할을 맡은 비율로 교육을 평가하는 것이다. 무엇을 재느냐가 무엇을 설계하느냐를 정한다.

그다음은 남은 장애물을 문서로 걷어내는 일이다. 교육 참여가 평가에서 불이익이 아니라 가점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평가 지침에 명시해야 한다. 구두의 약속은 한 번의 인사 평가를 넘기지 못한다. 현장 직무와 운영 직무라면 교육 시간을 제도로 보장해야 한다. 결원을 걱정하며 신청서를 접는 일이 개인의 선택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정원표의 질문을 바꾼다. 얼마나 오래 쓸 사람인가를 묻는 대신, 배운 것을 어디에 쓸 것인가를 묻는다. 앞의 질문에는 나이가 답하지만, 뒤의 질문에는 역할이 답한다.

결국 교육의 문제는 교육 안에서 풀리지 않는다. 배운 것을 쓸 무대, 곧 역할의 문제로 이어진다. 다음 글은 그 무대가 어떻게 사라지는지, 일을 주도하던 사람이 어떻게 남의 일을 점검하는 사람이 되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인생여행자 정연이 건네는 질문

지난 1년 우리 조직이 운영한 교육 과정 가운데, 이수 후 맡을 역할이 미리 정해져 있던 과정은 몇 개였을까. 그리고 그 과정을 마친 사람 가운데 실제로 그 역할을 맡은 사람은 몇 명이었을까. 배움의 성과는 수료증이 아니라 그다음 자리에서 확인된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④ 사다리의 끝, 지도에 없는 구간'


정연
인생여행자 정연
현대자동차그룹 미래경영연구센터 (HR,ER,PR 연구)
이십 년간 HR매니저로 일해오면서 조직과 사람, 일과 문화, 성과와 성장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몸으로 답하는 시간을 보내왔어요. 지층처럼 쌓아두었던 고민의 시간을 글로 담아, 그룹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칼럼을 쓰기도 했어요. 11년차 요가 수련자이기도 한 저는 스스로를 인생여행자라고 부르며, 일상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글을 짓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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