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나갈 사람이라는 전제] ① 가장 비싼 선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곧 나갈 사람이라는 전제] ① 가장 비싼 선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정년은 늘고 경험의 유효기간은 줄어든다. 현재 조건에서 고경력 인력을 그대로 두는 것은 가장 조용하고 가장 비싼 선택이다.
조직문화전체
정연
인생여행자 정연Oct 2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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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력 직원에 대한 논의는 대개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한다. 저 사람들은 받는 만큼 일하고 있는가. 인건비 표를 펼쳐 놓은 회의실에서 이 질문은 정당하고 냉정해 보인다. 연차를 따라 가파르게 올라간 보상 곡선이 있고, 그 곡선을 따라오지 못하는 듯한 기여 곡선이 있다. 두 선 사이의 면적에는 '비용'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그러나 이 질문은 출발점부터 기울어져 있다. 질문이 틀리면, 답이 정교할수록 더 멀리 빗나간다. 그래서 이 글은 그 질문을 잠시 내려놓고, 조직이 실제로 손에 쥔 선택지가 무엇인지부터 따져 보려 한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이렇다. 선택지는 생각보다 적고, 가장 흔한 선택이 가장 비싸다.

반대로 도는 두 개의 시계

이 문제를 지금 다시 꺼내야 하는 이유는 두 개의 시계가 동시에, 그러나 반대 방향으로 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시계는 재직 기간이다. 법정 정년을 65세로 올리는 논의가 입법의 문턱에 와 있다. 시행 시기와 방식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정년 60세를 전제로 짜인 경력 경로와 보상 곡선, 인력 계획은 유효 기간의 끝자락에 서 있다. 개인의 경력 수명이 조직이 설계한 경력 경로의 수명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두 번째 시계는 경험의 유효기간이다. 생성형 AI를 도입한 고객상담 현장을 추적한 미국 연구진의 분석은 이 변화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AI의 도움을 받은 입사 두 달 차 상담원이, 도움 없이 일한 여섯 달 차 상담원만큼의 성과를 냈다. 반면 가장 숙련된 상담원에게서는 이렇다 할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AI가 고성과자의 노하우를 추출해 신입에게 건네면서, 경험이 만들어 내던 격차가 빠르게 좁혀진 것이다. '오래 해서 안다'는 형태의 우위는 약해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AI가 배우는 원천이 바로 그 경험이라는 역설이 있지만, 그 이야기는 이 연재의 뒤편에서 따로 다루기로 한다.

한쪽 시계는 사람을 더 오래 머물게 하고, 다른 쪽 시계는 그 사람이 가진 것의 유통기한을 줄인다. 두 시계가 반대로 도는 한 그 사이의 간극은 저절로 좁혀지지 않는다. 오히려 해마다 넓어진다.

잠겨 있는 두 개의 문

간극 앞에서 조직이 고를 수 있는 길은 원칙적으로 세 가지다. 내보내거나, 스스로 나가도록 유도하거나, 그대로 두는 것이다. 그런데 앞의 두 문은 생각보다 단단히 잠겨 있다.

첫 번째 문은 법이 닫았다.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가 성립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 합리적이고 공정한 대상자 선정 기준, 근로자대표와의 성실한 협의가 모두 갖춰져야 한다. 나이는 공정한 선정 기준이 되기 어렵고, 나이를 이유로 한 차별적 해고는 별도의 법이 명시적으로 금한다. 심각한 경영 위기가 아니라면 이 문은 열리지 않는다.

두 번째 문은 시장이 닫았다. 희망퇴직이나 전직 지원 패키지가 작동하려면 문밖에 걸어갈 만한 길이 있어야 한다. 통계가 보여주는 문밖의 풍경은 그렇지 않다. 국내 중·고령층이 생애에서 가장 오래 일한 일자리를 떠나는 평균 나이는 52.9세다. 반면 앞으로 일하고 싶은 나이는 평균 73.4세다. 그 스무 해 남짓을 채울 일자리는 이전보다 훨씬 낮은 보상과 불안정한 조건 위에 놓이기 쉽다. 일찍 떠난 이들조차 스스로 원해서 떠난 경우는 백 명 중 세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연공형 보상 곡선의 꼭대기에 선 장기근속자에게, 이 차이를 상쇄할 만큼 두툼한 패키지는 현실적으로 만들기 어렵다. 경기가 나빠지면 문밖은 더 좁아진다.

그러니 정년까지 남는 것은 개인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다. 이것은 버티기나 무임승차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조건에 놓이면 누구라도 같은 계산을 한다. 퇴직 프로그램을 아무리 정교하게 다듬어도 이 계산은 바뀌지 않는다. 결국 조직 앞에 남는 것은 세 번째 문, 그대로 두는 길이다. 그리고 그 문은 열려 있다는 이유만으로 안전해 보인다.

열려 있는 문의 가격

그대로 두는 것은 선택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아무도 결정하지 않았고, 아무도 책임질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 문의 가격표를 뒤집어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건비는 정년까지 조금도 줄지 않고 그대로 나간다. 그 사이 역할은 좁아지고, 판단할 기회는 줄고, 쓰이지 않는 숙련은 조용히 녹슨다. 비용은 온전히 치르고, 기여는 해마다 덜 돌려받는 거래다.

더 큰 손실은 장부 밖에서 일어난다. 사고를 미리 막아 온 감각, 오랜 거래 관계에 쌓인 신뢰, 숱한 분쟁을 치르며 다듬어진 판단은 재무제표 어디에도 계상되지 않는다. 계상되지 않으니 사라져도 손실로 기록되지 않는다. 한 사람이 퇴직하는 날, 그가 가진 것 가운데 조직에 남는 것은 인사 기록 몇 줄뿐인 경우가 많다.

비용은 그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도 않는다. 후배들은 선배가 어떻게 대우받는지를 보며 이 조직에서의 자기 미래를 가늠한다. 선배의 오늘이 후배의 내일이라면, 방치는 한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전체에 보내는 신호가 된다. 가장 비싼 선택은 이렇게 소리 없이, 매일 지불되고 있다.

이 비용이 더 위험한 이유는 체감에 시차가 있기 때문이다. 같은 조직 안에서도 이 문제의 온도는 자리마다 다르게 측정된다. 현장에서는 체감이 시작된 지 오래다. 선배의 역할이 줄어드는 속도, 회의에서 한 사람의 발언이 사라지는 빈도, 교육 명단에서 특정 연령대가 빠지는 방식이 이미 일상의 풍경이다. 반면 의사결정 권한이 모인 본사에서 이 문제는 아직 보고서의 한 장, 인건비 시뮬레이션의 한 줄에 가깝다.

그리고 그 본사의 한가운데에는 대개 HR이 앉아 있다. 문제를 가장 늦게 느끼는 자리가, 문제를 가장 먼저 설계해야 하는 자리다. 시차가 길어질수록 대응은 늦어지고, 늦어진 만큼 비용은 쌓인다.

질문을 바꾸면 보이는 것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저 사람들은 받는 만큼 일하고 있는가. 노동경제학자 에드워드 래지어의 이론은 이 질문이 왜 성립하기 어려운지 보여준다. 연공형 임금은 경력 초기에는 기여보다 적게, 후기에는 기여보다 많이 지급하도록 짜인 일종의 이연보상 계약이다. 젊은 날 덜 받은 몫을 뒤에서 돌려받기로 약속함으로써, 조직은 구성원이 오래 머물고 성실히 일할 유인을 얻는다. 생애 전체로 보면 기여와 보상은 균형을 이룬다.

이 구조에서 경력 후기에 보상이 기여를 앞서는 것은 개인의 태만이 아니라 계약에 예정된 귀결이다. 생애 단위의 계약을 한 해의 단면으로 잘라 재면 누구라도 과보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래지어가 이 논리를 정리한 논문의 제목이 '왜 정년제가 존재하는가'였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정년은 이 계약의 종료 조항이었다. 정년이 늦춰진다는 것은 곧 계약의 뒷부분이 길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니 실제로 남는 길은 둘이다. 보상 곡선 자체를 다시 그리거나, 곡선의 뒷부분에서 기여를 되살리는 것이다. 앞의 길은 노사 합의와 법적 제약을 넘어야 하는 긴 과제다. 뒤의 길은 역할 배분과 평가 기준을 바꾸는 일이어서 HR이 당장 손댈 수 있다. 질문도 그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저 사람들은 받는 만큼 일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저 사람들이 기여할 수 있는 만큼 쓰고 있는가.

나이가 먼저 정하지 않는 조직

이 방향을 흔히 에이지리스(Ageless) 조직이라 부른다. 다만 이 말은 자주 오해된다. 모두가 같은 방식, 같은 강도로 일하는 조직을 뜻하지 않는다. 기여의 내용과 형태는 나이와 경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자연스럽고, 그 차이를 설계에 반영하지 않을 때 손실이 생긴다. 에이지리스는 기여가 똑같아지는 상태가 아니라, 나이가 기여의 기회를 미리 결정하지 않는 상태다.

기대 효과를 과장할 필요도 없다. 이 설계가 하룻밤 사이에 생산성을 끌어올리지는 않는다. 다만 이미 지급하고 있는 인건비에 걸맞은 기여를 되찾고, 퇴직과 함께 사라질 무형의 자산을 붙잡아 두고, 후배 세대가 이 조직에서의 마지막 장면을 다르게 상상하게 만든다. 새 포지션을 만들거나 큰 예산을 들이는 일이 아니라, 이미 있는 조직 안에서 역할과 평가와 리더십을 조정하는 일이다. 함께 가되 다르게 일하게 하는 설계는 온정의 선택이 아니다. 주어진 제약 아래 남는 유일한 합리적 경로다.

HR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여기까지는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문제는 이 결론이 현장에서는 좀처럼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조직은 고경력자를 자산이라 부르면서, 운영에서는 정년까지 남은 기간만큼 그 가치를 미리 깎아 반영한다. 장부에는 자산으로 올려 두고, 실제로는 조기 상각하고 있는 셈이다.

현장에는 이유를 묻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문장이 하나 있다. 곧 나갈 사람이니까. 이 문장은 누구의 지시도 없이 작동한다. 더 곤란한 것은, 그것이 자주 선의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 글은 그 문장에 관한 이야기다.

인생여행자 정연이 건네는 질문

우리 조직에서 고경력자에 관한 논의는 어떤 질문으로 시작될까. 최근의 회의 자료와 보고서를 떠올려 보자. '받는 만큼 일하는가'를 묻는 표와 '기여할 수 있는 만큼 쓰고 있는가'를 묻는 표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많았는지. 질문이 바뀌지 않으면 답도 바뀌지 않는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②아무도 빼자고 말하지 않았다'


정연
인생여행자 정연
현대자동차그룹 미래경영연구센터 (HR,ER,PR 연구)
이십 년간 HR매니저로 일해오면서 조직과 사람, 일과 문화, 성과와 성장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몸으로 답하는 시간을 보내왔어요. 지층처럼 쌓아두었던 고민의 시간을 글로 담아, 그룹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칼럼을 쓰기도 했어요. 11년차 요가 수련자이기도 한 저는 스스로를 인생여행자라고 부르며, 일상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글을 짓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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