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나, 혹시 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아, HR을 하든, 리더를 하든, 늘 ‘깜짝 놀라고 긴장되는’ 그 말.
그리고 뇌 속 회로는 자동으로 돌아갑니다.
‘혹시 퇴사 면담?’
꼭 퇴사 면담이 아니더라도, 많은 경우 먼저 면담을 요청할 때는
구성원이 가진 문제 상황이나 이슈, 고민 거리를 나눌 때가 대부분입니다.
그래도 아직 ‘헤어질 결심’을 굳히기 전이라면,
그리고 더 늦기 전에 나를 찾아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상태라면,
사실 참으로 다행스러운 타이밍 일 겁니다.
아직 상황을 좀 더 개선해볼만한 여지가 있고,
모르던 이슈를 알게된 상태이니 함께 해결 방안을 찾아볼 수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 때는 저도 무의식중에 자동반사적으로 올라올 수 있는 방어 기제와 판단을 유보하고,
전심을 다해 열린 상태로 경청하고, 공감합니다.
그리고 이 대화 과정에서 3가지 ‘잔고’를 함께 점검하며 맥락에 대한 이해를 높여갑니다.
Body Budget(신체예산) · Mental Budget(마음예산) · Relation Budget(관계예산).
퇴사는 사건이 아니라 예산 불균형이 누적되는 과정입니다.
몸의 에너지 잔고가 바닥나면, 결국 판단·의사결정 능력까지 흔들립니다.
퇴사는 단번에 일어나는 사건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서서히 누적되는 ‘바디버젯(Body Budget)의 적자’,
즉 신체 에너지의 고갈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루종일 집중이 어렵고, 반복되는 감기나 피로가 잦아지며,
점심시간에도 휴식을 포기하고 모니터 앞을 지키는 팀원이 있다면
그건 단순한 근면함이 아니라 ‘몸의 회복 예산이 바닥난 상태’일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 바디버젯의 잔고가 부족해지기 시작하면
의사결정, 판단, 생각, 마음까지 상당한 영향을 주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회의적이고, 부정적이고, 시니컬한 생각의 단서들이 점점 더 커지죠.
그런데 이 바디버젯의 적자는 단순 업무량 과부하나 피로감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닐 수 있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현상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바디버젯 점검 사항>
그래서 1on1 때나 커피챗을 통해
이 바디버젯 잔고 상태부터 면밀히 살피고 살뜰히 챙겨 점검해봅니다.
‘진심으로’ 그 사람의 안정과 건강이 중요하기 때문에 물어보는 마음으로요.
최근 잠은 잘 자고 있는지, 식사는 어떤지, 활동량이나 운동량은 어떠한지를 찬찬히 같이 점검해보는거죠.
그리고 데이터가 있다면, 최근 주간 결근·지각 패턴, 사내 커피/식사 로그, 회식 참여율 등에서
어떤 리듬인지를 함께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겁니다.

초기 신호
하루 종일 집중 난이도↑, 잔병치레·피로 잦음
점심·휴식 스킵, 퇴근 후 회복시간 없음
동일 과업에 체감 난이도 급상승(“평소 같지 않다”는 동료 피드백)
1on1에서 확인하는 사항들
“최근 상태가 어때요? 아침/오후 언제 에너지가 떨어지나요?”
“식사·수분·움직임 패턴이 어떻게 바뀌었나요? 갑자기 나빠진 게 있나요?”
“요즘 업무·가정·건강 중 에너지를 가장 많이 쓰는 곳은 어디인가요?”
데이터로 보는 리듬(활용 가능한 사내 로그)
최근 4~8주 결근·지각/조퇴·연차 패턴
사내 카페테리아·커피 로그의 급격한 변화
회식·비공식 모임 참여율
마음의 예산이 ‘과거’에 묶이면, 현재 몰입이 어려워집니다.
몸이 잠시 회복되어도 마음의 예산이 ‘과거’에 묶여 있다면,
그 구성원은 현재의 관계나 과제에 몰입하기 어렵습니다.
원래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의 내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과거를 재현하며 현재를 살지만,
지나치게 ‘과거’에 묶여 있다는 건 이슈의 시그널입니다.
‘전에 했던 프로젝트가 더 좋았는데’,
‘그때 나를 인정해줬던 리더는 참 달랐지’,
‘지금의 팀에서는 내 자리가 애매한 것 같아.’
‘예전 우리 팀워크는 끈끈했는데’
이런 생각의 말이 그 사람 내면에 자주 들릴 때,
그건 단순한 ‘업무 불만’이 아니라 ‘멘탈버젯이 과거에 잠식된 상태’입니다.
현재 마음의 상태를 라벨링하지 못하는 상태,
그래서 정확한 원인이나 이유를 알지 못하고,
뭉뚱그려서 과거 경험을 분석없이 현재 상태에 비춰 오늘의 일상을 살고 있을 때
트리거가 생기면 퇴사 준비를 위한 엑션으로 바로 이어집니다.
구성원이 최근 감정 에너지를 어디에 쓰는지를 관찰하는 것,
그것도 리텐션 관리의 중요한 단서입니다.
<멘탈버젯 점검 사항>
바디버젯 상태를 확인했다면,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일”을 의논해봅니다.
답변이 ‘현재’ 나 ‘미래’보다 ‘과거 회상’이나 ‘타인 비교’로 향하면,
이미 멘탈버젯이 ‘부족’으로 기울기 시작하는 시점입니다.
대화를 통해 감정 라벨링(Emotion Tagging)을 할 수 있도록 함께 구체화해보며,
그 감정이 어디서 기인하고, 어떤 시점에 강화되고 반복되기 시작했는지
‘파헤치는 느낌’이 아닌 ‘진정한 호기심’으로 물으며 맥락을 따라가보는 겁니다.
멘탈버젯은 단순히 구성원의 ‘감정 관리’를 위한 감성적인 접근이 아니라
개인과 조직이 겪고 있는 상태를 심층적이고 다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구체화된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초기 신호
“그때가 더 나았지…”, “이 팀에서 내 자리가 애매해” 같은 회상·비교의 반복
현재 과제의 의미 부재, 성취보다 정당성/인정 탐색에 에너지 과투입
감정 라벨링의 공백(“그냥 답답해요”에서 멈춤)
1on1에서 확인하는 사항들
요즘 머릿속을 가장 오래 차지하는 생각은 언제/무엇과 관련돼 있나요?”
“최근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면요? (불안/서운/권태/의욕저하 등)”
“그 감정이 시작된 시점·사건이 떠오르나요? 반복 주기는요?”
감정 라벨링 동행 팁
‘왜 그랬어?’ 대신 ‘언제·어디서·누구와’(맥락 질문)
해석보다 묘사 먼저(몸 감각→생각→행동 순서로 풀기)
과거 회상으로 흐르면 현재·가까운 미래로 복귀(이번 주 내가 바꾸고 싶은 한 가지는?)
많은 구성원은 일이 아니라 사람을 떠납니다.
관계 온도=퇴사 예열 온도.
이럴 때는 성과 관리보다 관계의 균열 관리가 훨씬 더 중요해집니다.
회의 자리에서 점점 말이 줄고,
슬랙에선 리액션이 사라지며,
동료들의 농담에 미소는 남지만 눈빛은 멀어지는 순간들.
이건 모두 관계 예산의 마이너스입니다.
퇴사의 진짜 시작은 이직 사이트가 아니라, 조직과 팀 안의 대화에서 시작됩니다.
<리레이션버젯 점검 사항>
민감한 리더라면, 인담자라면
면담 전, 조기 신호를 발견하거나 확인해볼 수 있을 겁니다.
최근 회의 발언 빈도, 비공식 커뮤니케이션 참여율, 사내 메신저 반응률은
관계 예산을 확인해볼 수 있는 지표가 됩니다.
이 때 구성원들의 관계 지표가 ‘소속감’이 아니라 ‘거리두기’로 이동하고 있는 건 아닌지,
회복이나 회고가 필요한 조직 내 긴장 관계나 노후된 관계가 있는지
여러 구성원과 대화하며 이해하고 현황을 파악하는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이런 예산을 확인하는 작업은 ‘그 때만’ 일어나는 활동이 되어서는 안되겠죠.
‘퇴사를 막는 조직’이 아니라 ‘머물로 싶은 조직’이 목표가 된다면,
이 모든 예산 관리를 상시로 자연스럽게 리텐션과 상호작용이 원활하게 일어나고 있어야 합니다.
초기 신호
관회의 발언·슬랙 리액션 급감, 농담엔 미소하지만 무반응에 가까운 상태
1:1에선 무난, 집단 상황에선 은근한 거리두기
비공식 커뮤니케이션 사라짐(점심/커피 동행 단절)
팀 레벨 관찰 지표(4~8주 스냅샷)
회의 발언 비율·메신저 반응률(읽음→응답 전환 여부)
비공식 참여도(점심/티타임/스터디)
긴장 구간 존재 여부(협업 핸드오프 지연, 피드백 회피)
무엇보다 이 예산을 체크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1on1을 통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안하는 겁니다.
지표를 벌점·감시 수단으로 전용하지 않기
“의지 문제”로 환원하지 않기(대부분은 리듬 문제)
한 번의 행사성 케어로 끝내지 않기(상시 관심과 운영이 핵심)
퇴사는 언제나 ‘결정’으로 드러나지만,
그 근원은 몸·마음·관계 예산의 불균형 과정에서 시작됩니다.
HR의 리텐션 전략은 곧 인간의 에너지 회계 시스템을 이해하고,
이를 조기에 읽고·돌보고·회복시키는 일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놓치기 쉬운 시그널은
“성과 하락”이 아니라 리듬의 붕괴일지 모릅니다.
바디버젯을 살피고, 멘탈버젯을 관리하고, 리레이션버젯을 복구하는 것—
그것이 사람 중심 HR의 시도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