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초, 미국의 한 법률 회사가 계약서 검토 업무를 담당하던 변호사 보조 인력 수십 명을 감원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AI가 계약서 한 건을 검토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6초였다. 숙련된 법률 보조 인력이 같은 작업을 하는 데는 평균 92분이 걸렸다.¹ 정확도는 AI가 더 높았다. 비용은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감원된 인력의 상당수가 해외 아웃소싱 인력이었다는 점이다. 미국 법률 회사는 비용을 낮추기 위해 인도와 필리핀의 법률 보조 인력을 써왔다. 그런데 이제 그 자리를 AI가 대신했다. 지구 반대편의 저비용 노동력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번엔 AI와의 경쟁에서 졌다. 국경은 더 이상 보호막이 아니다.
지금 노동시장에서는 두 가지 경계가 동시에 허물어지고 있다.
첫 번째는 지리적 경계다. 원격 근무의 확산으로 서울의 기획자는 이제 뉴욕의 기획자와 같은 프로젝트를 놓고 경쟁한다. 디지털 노마드 플랫폼인 Upwork와 Fiverr에는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전문직 프리랜서가 동일한 업무를 놓고 가격 경쟁을 벌이고 있다.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