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3년 10월 10일 저녁, 수양대군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김종서의 집으로 향했다. 논의할 일이 있다며 김종서를 문밖으로 불러낸 뒤 수양의 부하인 임어을운이 철퇴를 내리쳤다. 아들 김승규가 아버지를 감싸다가 함께 쓰러졌다.

그날 밤 황보인과 조극관을 비롯한 대신들도 궁궐로 불려 들어가 죽임을 당하거나 붙잡혔다. 정식 군사동원도 공개된 국정회의도 없었다. 조선의 정권은 한 왕자의 사저와 소수 무사의 손에서 뒤집혔다.
후대는 이를 ‘계유정난’이라 불렀다. 정난이란 어지러운 난을 평정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이름은 승리한 수양대군의 정권이 붙였다. 김종서와 황보인이 안평대군과 결탁해 종실을 해치려 했다는 주장이 반복됐지만, 이들이 실제로 단종을 폐하거나 수양대군을 살해하려 했다는 확정적인 증거는 남아 있지 않다.
칼을 먼저 움직인 사람은 수양대군이었다. 그 칼이 움직일 수 있도록 명분과 사람을 준비한 중심에는 한명회가 있었다. 그는 어린 군주와 강한 대신이 공존하는 조정의 균열을 읽었다. 권람을 통해 수양의 뜻을 살피고 홍달손을 비롯한 무사들을 끌어들였다. 거사를 망설이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정한 일을 멈출 수 없다며 결단을 재촉했다.
김종서와 한명회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권력의 공백 앞에 도달했다.
김종서는 세종과 문종이 내준 국가의 의자에 앉아 어린 단종을 지키려 했다. 한명회는 그 의자를 빼앗을 사람을 선택하고 새로운 권력의 자리를 설계했다. 김종서의 힘은 선왕의 고명과 공식 관직에서 나왔다. 한명회의 힘은 사적 관계망과 비밀 결사, 정변의 성공에서 생겨났다.
계유정난을 한 야심가의 대담한 행동으로만 설명해서는 안 된다. 단종은 어렸고 수렴청정을 맡을 대비는 없었다. 대신들에게는 국정을 운영할 실질적 권한이 있었지만 그 범위와 기한은 정해지지 않았다. 왕실의 성인 왕자들은 공식적인 국정 책임 없이 사저에서 사람과 무력을 모을 수 있었다.
권한과 책임이 서로 다른 곳에 놓여 있었다.
그 틈에서 김종서의 공식 권력은 지나치게 커 보였고 한명회의 비공식 권력은 보이지 않는 채 자라났다.
김종서는 본래 무장이 아니라 문신이었다. 지방의 세금과 진휼을 조사하고 관리의 잘못을 탄핵하며 국가의 명령이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살피는 관료였다.
세종은 그를 여러 지방에 반복해서 파견했다. 한 번의 파격적인 발탁으로 북방을 맡긴 것이 아니었다. 김종서는 작은 행정 문제를 해결하고 현장의 정보를 정확히 전달하면서 신뢰를 쌓았다.
그러던 중 1433년 세종은 김종서를 함길도관찰사로 임명했다. 조선이 두만강 유역의 여진 세력을 밀어내고 북방의 경계를 정비하던 시기였다. 육진 개척은 전투에서 한 번 승리한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성을 쌓고 군사를 배치해야 했다. 남쪽의 백성을 옮겨 살게 하고 토지와 군역, 세금과 식량을 다시 배분해야 했다. 귀순한 여진인을 받아들이고 토착 세력과 교섭하는 일도 필요했다.

김종서는 군사적 점령을 행정적 지배로 바꾸었다.
북방에서 그가 가진 권한은 컸다. 군사와 행정, 이주와 방어를 함께 다뤘다. 중앙의 결재를 기다리기 어려운 변경에서는 현장 책임자에게 넓은 재량권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권한은 김종서 개인의 소유가 아니었다. 그는 현장의 정보를 조정에 보고했고 세종은 대신들과 논의해 목표와 자원을 조정했다. 중앙은 방향을 정하고 현장은 실행방식을 수정했다.
세종은 김종서를 신뢰했지만 북방을 개인의 영역으로 내주지 않았다. 김종서 역시 자신의 성과를 이용해 독립적인 군사세력을 만들지 않았다. 이때 김종서의 강한 권한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권한의 출처와 목적, 최종결정권자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김종서가 만든 것도 성 여섯 곳만은 아니었다. 군사와 행정, 토지와 이주, 보고와 감독을 하나의 목표 아래 묶는 실행체계였다. 그가 떠난 뒤에도 육진은 국가의 경계로 남았다.
개인의 능력이 조직의 자산으로 전환된 것이다.
김종서의 강한 추진력은 세종이라는 최종결정권자 아래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일이 늦어지거나 책임이 흩어지면 그는 결론을 내리고 밀어붙였다. 김종서가 지나치게 앞서면 세종이 멈출 수 있었고, 동료와 충돌하면 왕이 역할을 다시 조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종이 죽고 문종마저 재위 2년 만에 세상을 떠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문종은 어린 단종을 황보인과 김종서, 정분 등의 대신에게 맡겼다. 누군가는 국가를 운영해야 했다. 문제는 고명대신들이 행사할 권한의 범위와 기한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언제까지 대신들이 어린 왕을 대신해 판단할 것인가. 단종이 성장하면 어떤 권한부터 돌려줄 것인가. 대신들 사이에 의견이 갈리면 누가 조정할 것인가. 왕실 종친은 어디까지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가. 고명은 사람을 지명했지만 운영 규칙까지 남기지 않았다.

김종서는 좌의정이 된 뒤 조정의 실질적 운영자가 됐다. 영의정 황보인이 있었지만 어려운 일은 김종서에게 몰렸다. 북방을 개척한 명망과 세종·문종의 신뢰가 그의 권위를 뒷받침했다.
이 시기 ‘황표정사’가 시행됐다. 대신들이 관직 후보를 올리며 적임자라고 판단한 사람에게 누런 표지를 붙이면 어린 왕이 대체로 그 사람을 낙점하는 방식이었다.
정보가 부족한 군주에게 전문적인 판단을 제공하는 절차라고 볼 수 있다. 동시에 왕이 결정하는 외형만 남고 실제 인사권은 대신들에게 넘어가는 구조이기도 했다.
세조 정권에서 편찬된 기록은 김종서가 친족과 측근을 요직에 앉히고 대간을 억압했다고 비판한다. 정변을 정당화하려는 승자의 관점이 섞여 있으므로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김종서가 왕위를 탐했다는 확실한 증거도 없다.
그러나 인사의 내용이 공정했는가와 별개로 공식 권한과 실제 권한 사이의 간격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남는다.
왕에게는 도장이 있었다. 정보를 선별하고 후보를 정하는 힘은 대신들에게 있었다.

김종서는 자신이 왕을 대신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종의 유명을 따르고 단종이 성장할 때까지 나라를 지키는 것이 자신의 직분이라고 여겼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권력은 의도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누가 정보와 인사, 군사와 정책을 실질적으로 통제하고 있는지가 더 직접적인 현실이다.
세종 때 김종서의 권한 위에는 세종의 최종 판단이 있었다. 단종 때에는 그 위가 비어 있었다. 같은 결단도 세종 아래에서는 충실한 집행이었고 단종 아래에서는 대신의 전단으로 보일 수 있었다.
김종서가 맡은 역할은 모순적이었다.
왕을 대신할 만큼 강해야 했지만 왕보다 강해 보이면 안 됐다. 왕실 종친의 야심을 막아야 했지만 왕실을 억압한다는 비판을 받아서는 안 됐다. 인사를 책임져야 했지만 자신의 사람을 심는다는 의심을 피해야 했다.
이 모순은 한 사람의 충성심과 능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단종 조정의 근본적인 문제는 강한 대신과 약한 왕이 아니었다. 어린 왕을 대신해 권한을 행사할 공식적인 후견체계를 만들지 못한 것이었다. 성인 군주 아래에서 의정부는 정책을 심의하고 왕이 최종적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단종은 복잡한 국정과 인사의 내용을 독립적으로 검토하기 어려웠다. 심의기관이 사실상 결정기관으로 바뀌었다.
제도의 이름은 같았지만 작동 방식은 달라졌다. 실제 권한이 의정부로 이동했다면 책임과 견제구조도 함께 바뀌어야 했다.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의 역할을 나누고 대간이 대신들을 비판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했다. 인사 추천의 근거도 기록해야 했다. 고명대신의 권한이 언제 종료되는지도 미리 정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일은 김종서에게 집중됐다. 한 사람이 뛰어나기 때문에 어려운 일을 맡겼고 어려운 일이 몰릴수록 그의 권한은 더 커졌다. 더 중요한 문제는 다른 이에게 일이 가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날의 조직에서도 자주 벌어지는 일이다.
대표가 믿는 임원 한 사람이 영업과 인사, 재무와 중요한 고객을 모두 맡는다. 처음에는 빠르다. 문제가 생기면 그 사람에게 물으면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조직이 그 사람을 통해서만 움직인다.
그가 회사를 떠나거나 대표와 갈등하면 업무 하나가 아니라 의사결정체계 전체가 멈춘다. 김종서의 강함이 단종 정부를 움직였다. 동시에 정부 전체가 김종서 한 사람과 동일시되게 만들었다. 이는 불안한 정국을 효과적으로 타개할 수 있었을 지 모르지만 김종서에 대한 신뢰까지도 없애고 있었다. 집현전 학자들조차 그를 반대하고 나서는 분위기였다. 이제 수양대군은 조선의 모든 관청을 무너뜨릴 필요가 없었다. 김종서와 그를 따르는 몇몇 대신을 제거하고 궁궐의 명령체계를 차지하면 됐다.
핵심 기능이 한 사람에게 모인 조직은 평상시에는 빠르다. 반면 공격자는 한 지점만 무너뜨리면 된다. 당시 단종과 그의 조정은 왕실 종친의 위치도 정하지 못했다. 수양대군에게 공식적인 국정 책임을 부여해 제도 안에 묶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저에서 무사와 관료를 모으는 일을 확실하게 통제하지도 않았다.

딱히 권한을 주지 않은 채 영향력만 키우게 두었다. 수양대군의 집에는 신숙주와 권람, 한명회 같은 문신과 홍달손·양정 같은 무인들이 모였다. 공식 조직 밖에 별도의 인재와 정보, 무력을 가진 작은 정부가 만들어졌다. 김종서가 수양의 세력을 알고도 제거하지 않은 것은 법을 지키려는 절제였을 수 있다. 범죄가 드러나지 않은 왕자를 선제적으로 처벌하면 자신이야말로 왕권을 농단하는 권신이 된다.
그러나 제거와 방치 사이에는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 수양에게 극히 제한된 공식 책임을 맡기고 관청의 감독을 받게 할 수 있었다. 종친의 사저에 무사가 상시 출입하고 병기를 모으는 일을 제한할 수도 있었다. 왕자들이 참여하는 국가사업의 예산과 인사를 공개하는 방법도 있었다.
비공식 권력은 직책이 없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공식적인 책임과 감독을 피한 채 사람과 정보를 모을 수 있을 때 생긴다.
한명회는 오랫동안 국가의 공식 인재선발 과정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과거에 여러 차례 실패했고 서른일곱이 넘어서야 음서로 경덕궁직이란 벼슬을 얻었다.

그렇다고 과거에 떨어졌다는 사실이 그의 탁월함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에게 시험이 충분히 측정하지 못한 능력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는 사람의 욕망과 관계를 읽었다. 흩어진 불만을 하나의 목표로 묶었다. 필요한 사람을 찾아 적절한 자리에 연결했다. 한명회가 수양대군에게 처음 제공한 것은 세부적인 작전보다 상황에 대한 해석이었다.
그는 김종서와 황보인의 정치를 어린 왕을 보필하는 대신의 정부가 아니라 간신들이 왕권을 가린 체제라고 규정했다. 수양의 야심은 왕실과 국가를 구하는 결단으로 번역됐다.
권력투쟁에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만큼 그 행동을 무엇이라고 부를 것인가가 중요하다.
왕의 숙부가 대신을 죽이고 정권을 차지하면 반역에 가깝다. 그러나 어린 왕을 위협하는 간신을 제거했다고 부르면 충성이 된다. 한명회는 수양이 칼을 들기 전에 칼의 이름부터 바꿨다. 그는 사람도 모았다. 문신과 무사를 연결해 수양의 사저에 실행조직을 만들었다. 공식 직급이 낮았던 한명회가 왕자와 관료, 무사를 잇는 중심이 됐다.
관직의 서열과 실제 영향력이 달라졌다. 김종서의 권력은 관청과 문서, 회의 속에서 드러났다. 한명회의 권력은 직제표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권력은 실패에 대한 공식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가 세운 계획이 실패하면 낮은 관직의 한 사람으로 사라질 수 있었다. 성공하면 왕을 만든 공을 차지할 수 있었다. 수양대군을 한명회가 조종했다고 보는 것도 과장이다. 수양은 세종의 아들로서 정치 경험과 야심을 가진 인물이었다. 한명회는 그 야심을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과 명분, 실행 순서를 갖춘 조직으로 전환했다.
두 사람의 관계에는 분명한 상호의존이 있었다.
한명회는 수양의 왕실 신분과 무력이 필요했다. 수양은 한명회의 인재와 정보, 조직력이 필요했다. 두 사람의 이해가 일치했기 때문에 결속은 강했다.
그러나 그 결속의 중심에는 국가의 목적이 아니라 함께 권력을 획득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리더와 참모의 이해가 지나치게 결합하면 실행은 빨라질 수 있다. 동시에 조직의 목적과 두 사람의 목적을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수양대군은 정규군을 이끌고 궁궐을 공격하지 않았다. 김종서의 집을 기습해 조정의 중심을 먼저 끊었다.
김종서가 공격받은 뒤 수양은 궁궐로 들어가 김종서 등이 모반을 꾀했으므로 자신이 먼저 처단했다고 보고했다. 이어 왕의 명령이라는 형식으로 대신들을 불러들였다.
공식 명령체계가 정변세력의 도구가 됐다.
왕의 명령은 문서와 도장만으로 진짜가 되지 않는다. 누가 정보를 작성했고 군주가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는 상태였는지 확인할 장치가 필요하다.
단종은 수양이 장악한 정보 속에 갇혔다. 김종서가 살아 있는지, 누가 먼저 모반했는지, 도성의 군대가 누구에게 충성하는지 독립적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김종서의 권력은 컸지만 그가 공격받았을 때 자동으로 작동할 비상체계는 없었다. 다른 고명대신과 승정원, 도성의 군사기관이 서로 연락해 왕을 보호하고 사실을 확인하는 절차도 마련돼 있지 않았다.
김종서 개인에게 사병이 필요했다는 뜻은 아니다. 공식 권력을 개인의 무력으로 지키려 했다면 수양이 주장한 권신의 모습에 가까워졌을 것이다. 필요했던 것은 개인의 경호조직이 아니라 국가의 업무연속성 체계였다.
핵심 책임자가 공격받거나 연락이 끊기면 다른 책임자가 권한을 이어받아야 한다. 명령의 진위를 복수의 기관이 확인해야 한다. 왕족이라도 무장한 사람을 궁궐에 들이려면 별도의 승인 절차를 거치게 해야 했다.
한명회가 준비한 관계망은 이런 절차보다 빨랐다.
후대에는 문학적 장치로서의 한명회의 ‘살생부’가 널리 알려졌다. 실제로 완성된 명단이 존재했는지는 신중히 봐야 한다. 다만 정변세력이 제거할 사람과 포섭할 사람을 미리 분류했고, 정변 이후 숙청과 공신 책봉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사실은 분명하다. 그 명단은 국가의 사법절차를 대신했다. 누가 실제 역모에 가담했는지 조사하기 전에 김종서와 가까운 사람, 안평대군과 교유한 사람, 수양에게 위협이 될 사람이 제거됐다.
사람을 파악하고 배치하는 능력은 인사의 중요한 역량이다. 그러나 공식 절차 밖에서 그 능력이 행사되면 인재 명부와 살생부의 경계는 사라진다.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으로 정권을 장악한 지 약 2년 뒤 단종에게서 왕위를 넘겨받는 형식을 거쳐 세조가 됐다.
한명회는 정난공신 1등에 오른 뒤 빠르게 승진했다. 이조판서와 병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좌의정·영의정에 올랐으며 세조 이후 예종과 성종의 시대에도 권력의 중심에 남았다.

그의 두 딸은 각각 예종과 성종의 왕비가 됐다. 한명회는 공신의 지위와 재상의 관직, 왕실의 혼인을 결합했다.
그의 의자는 하나의 공식 직책이 아니었다. 공신과 재상, 외척과 원로, 인사권과 사적 문객이 겹쳐진 복합적인 권력기반이었다. 한 관직에서 물러나도 다른 관계가 남았다.
김종서는 좌의정이라는 공식 의자가 무너지자 권력 전체를 잃었다. 한명회는 영의정에서 물러나더라도 공신과 왕의 장인이라는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한명회를 음모와 탐욕만으로 평가해서는 그의 장기 집권을 설명하기 어렵다. 그는 군사와 외교, 인사에서 실제 능력을 보였고 여러 국가사업에도 기여했다.

동시에 그의 권세와 재산 축적, 사적인 청탁과 관계망에 대한 비판도 강했다. 국가를 움직이는 능력과 국가를 자신의 관계망 안으로 끌어들이는 능력이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세조는 김종서의 대신정치가 왕권을 약화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왕위에 오른 뒤에는 한명회와 신숙주, 권람 같은 공신들에게 막대한 권력과 보상을 주었다.
왕권을 회복한다는 정변이 왕권과 거래할 수 있는 거대한 공신집단을 만든 것이다. 공신들은 자신들이 왕의 권력을 만들어주었다는 채권을 가지고 있었다. 왕은 그들의 공을 부정하기 어려웠고 공신들은 토지와 노비, 관직과 혼인을 통해 보상을 축적했다.

한명회는 그 채권의 가장 큰 보유자였다.
그의 관계망이 국가의 역량으로 전환되려면 인재와 외교관계, 군사정보가 관청의 기록과 절차에 귀속됐어야 했다. 그러나 상당 부분은 한명회의 집과 혼인관계, 공신집단 안에 남았다. 사람은 사라져도 조직이 사용해야 할 정보가 함께 사라지면 그것은 조직의 자산이 아니다. 가문과 측근이 혜택만 상속한다면 제도화가 아니라 사유화다.
김종서의 위험은 ‘공적 권력의 개인화’였다.
그는 공식 관직과 선왕의 고명에 따라 권한을 행사했다. 그러나 일이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모이면서 국가의 운영이 김종서 개인과 동일시됐다. 그가 공격받자 정부 전체가 마비됐다.
한명회의 위험은 ‘사적 권력의 제도화’였다.
정변을 위해 만든 관계망이 공신 책봉과 관직, 왕실 혼인을 통해 국가 안으로 들어왔다. 비공식 권력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공식 자리를 차지했다.

조직에는 김종서와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맡은 과제를 자신의 일처럼 책임지고 현장에서 끝까지 완수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잘할수록 정보와 권한이 집중된다. 대표는 그의 충성심을 믿는 데서 멈추지 말아야 한다. 다른 임원도 같은 업무를 운영할 수 있도록 기록과 절차를 남겨야 한다. 차선 책임자를 정하고 권한을 회수하거나 이전하는 조건도 마련해야 한다.
조직에는 한명회와 같은 사람도 필요할 수 있다. 공식 직급을 넘어 사람과 자원을 연결하고 리더가 보지 못하는 권력구조와 기회를 읽는 전략가다. 그런 사람은 조직 내부에서 대표가 파악하지 못하는 정보를 정제해서 대표에게 전달할 수 있고 조직 안팎의 문제에 대해 대표의 꾀주머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고객과 인재, 투자자와 정보가 그 사람에게만 귀속되면 그는 조직의 참모를 넘어 별도의 권력이 된다. ‘그 사람이 나가면 고객도 함께 나간다’면 고객은 회사의 자산이 아니었다. ‘그 사람을 통하지 않으면 대표를 만날 수 없다’면 직책보다 강한 비선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참모를 리더로 올릴 때에도 과거의 실행성과만 보아서는 안 된다. 참모는 최종결정권자의 신임 아래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다. 리더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도 안전을 제공해야 한다. 권한을 나누고 반대정보를 받아들이며 조직 전체의 불안을 관리해야 한다.
김종서는 강력하고 촘촘한 리더인 세종 아래에서는 뛰어난 실행자였다. 그러나 단종 대에는 실제 권력이 커진 만큼 종친과 관료, 젊은 인재를 하나의 질서 안에 묶어야 하는 책임도 커졌다. 왕위를 탐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그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실제 권한이 커지면 실제 책임도 커진다.

승계 역시 자리를 넘기는 행위가 아니다. 권력관계를 다시 계약하는 일이다.
선대 대표의 핵심 임원이 후계자와 함께 남는다면 어떤 권한을 행사하고 언제 물러날지 정해야 한다. 후계자가 성장하면서 어떤 권한부터 넘겨받을지도 명확해야 한다. 기존 임원을 보호할 장치와 견제할 장치가 함께 필요하다.
원로가 스스로 물러날 선의에만 의존하면 주변은 그가 영구히 권력을 가지려 한다고 의심한다. 후계자가 어느 날 갑자기 권한을 회수하면 원로와 측근들은 생존의 위협을 느낀다.
문종은 단종에게 유능한 사람을 남겼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규칙에 따라 권한을 행사할지는 남기지 못했다. 사람을 맡겼지만 체계를 맡기지 못했다. 좋은 조직은 개인이 선하다는 가정과 악하다는 가정 사이에 서야 한다.
김종서가 충성스러웠어도 그의 권력은 견제받아야 했다. 수양대군이 왕족이었어도 사적인 무력과 관계망은 통제돼야 했다. 한명회가 유능했어도 사람과 정보의 독점을 허용해서는 안 됐다.
조선이 계유정난을 막지 못한 이유는 인재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김종서와 황보인 같은 원로가 있었고 정인지와 신숙주, 성삼문처럼 뛰어난 관료도 있었다. 수양과 안평과 같은 세종의 아들들 역시 정치적 역량과 야심을 갖고 있었다.

능력있는 이는 많았다. 다만 그 능력을 하나의 합법적인 질서 안에 배치하는 방법이 없었다. 세종 후반기의 정치는 사실상 문종의 무대였다. 문무를 겸비한 문종 앞에선 수양대군과 안평대군, 다른 중신들마저 그 권위에 굴복하였다. 그리고 그 권위의 아래에서 계유정난의 씨앗이 나온 것이다.
김종서가 사라져도 북방의 육진은 남았다. 개인의 역량이 군현과 장부, 주민과 행정체계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조직도 그래야 한다. 핵심 인물이 떠나도 고객정보와 업무방식, 의사결정체계가 남아야 한다. 누군가 연락되지 않아도 권한이 이어져야 한다. 후계자가 경험이 부족하더라도 권한의 이동은 예측 가능해야 한다.
국가나 기업이 사람에게 의자를 내줄 때에는 세 가지를 함께 정해야 한다.

무엇을 위해 앉아 있는지, 어디까지 권한을 행사하는 지, 언제 누구에게 자리를 돌려주는 지.
이 세 질문에 답하지 못한 의자는 충신을 권신으로 보이게 한다. 유능한 참모를 비선권력으로 키운다. 후계자의 이름을 다른 사람의 결정을 승인하는 도장으로 만든다.
1453년 10월 10일 김종서의 의자는 철퇴에 부서졌다. 한명회의 의자는 그날부터 높아졌다.

그러나 어느 의자가 더 오래 남았는가만으로 승패를 판단할 수는 없다. 김종서가 남긴 북방의 경계는 조선의 역량이 됐다. 한명회의 관계망은 정권을 세우고 유지했지만 공신과 외척의 사적 권력도 함께 키웠다.
의자의 주인은 앉은 사람이 아니다. 조직의 권력이라면 앉은 사람이 바뀌어도 기능이 이어져야 한다. 권한에는 책임이 따라야 하며 의자를 비우는 때도 정해져 있어야 한다.
김종서와 한명회의 삶이 남긴 질문은 누가 더 충성스럽고 영리했는가가 아니다.
‘사람의 충성심과 야심보다 오래가는 의자를 만들었는가.’
조선은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한 의자를 부수고 다른 의자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