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존을 메우는 사람들: 조직시민행동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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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존을 메우는 사람들: 조직시민행동의 두 얼굴

"그건 제 일이 아닌데요"와 "제가 좀 더 해볼게요"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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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환 Oct 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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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레이존의 사람들

앞선 글에서 나는 조직을 지탱하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건 네 일, 이건 내 일, 그건 모르겠어"라고 선을 긋는 사람이 아니라, "그럼 이것도 제가 좀 더 나아가서 할 테니 함께 만들어보자"고 말하는 사람. 경계가 모호한 영역, 즉 그레이존을 스스로 메우는 사람. 나는 이런 사람이 개인 성과 지표에는 잘 잡히지 않아도 팀 전체의 성과를 끌어올린다고 봤다.

이것을 조직심리학은 조직시민행동(Organizational Citizenship Behavior, OCB) 이라 부른다. 계약서에 없고 공식적인 보상도 없는데 조직에 도움이 되는 자발적 행동이다. 제작년에 한참 OCB에 몰두 했을 때 읽었던 논문을 다른 분에게 추천하고 보니, 오랜만에 다시 내용을 살펴보고 싶어졌다. 대부분의 텍스트가 그렇듯이 다시 읽어보면 다른 면이 읽히듯이 이 논문들에서도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다른 부분이 읽혔다. 나는 이 그레이존의 사람들에 대해 더 정교하게 그리고 더 조심스럽게 생각하게 됐다.

세 편의 논문을 근거로, 그레이존을 메우는 사람의 유형을 내 나름대로 세분화하고, 이들이 조직에 미치는 영향과 이들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정리해 보겠다.

OCB의 다섯 얼굴: 그레이존을 메우는 사람의 유형화

먼저 '그레이존을 메우는 사람'은 한 종류가 아니다. Organ(1988)의 고전적 분류에 따르면 OCB는 다섯 가지 하위 차원으로 나뉜다. 고성주(2021)의 연구도, 허문영 외(2024)의 연구도 이 틀을 공유한다. 각 유형을 실무의 언어로 옮기면 이렇다.

1. 이타주의(altruism) : "제가 도울게요" 형. 결근한 동료, 일이 몰린 동료, 신입을 자발적으로 돕는 사람. 보상을 바라지 않고 남의 문제 해결에 손을 보탠다.

2. 예의(courtesy) : "미리 알려드릴게요" 형. 자기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사전에 협의하고 조율하는 사람. 갈등을 예방한다.

3. 성실함(conscientiousness) : "요구 이상으로" 형. 조직이 요구하는 최소 수준을 넘어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 규칙을 남이 안 볼 때도 지킨다.

4. 시민의식(civic virtue) : "조직 일에 참여하는" 형. 꼭 참석 안 해도 되는 회의에 나가고, 조직의 방향과 변화에 관심을 갖고 솔선수범하는 사람.

5. 스포츠맨십(sportsmanship) : "불평하지 않는" 형. 사소한 문제에 불평하지 않고, 조직의 결정을 건설적으로 수용하며 일시적 불편을 견디는 사람.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하나 더 있다. Williams & Anderson(1991)은 OCB를 향하는 대상에 따라 나눴다.

  • OCB-I(개인 지향): 이타주의, 예의처럼 사람을 향하는 행동

  • OCB-O(조직 지향): 성실함, 시민의식, 스포츠맨십처럼 조직을 향하는 행동

이 구분이 왜 중요한지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레이존을 메우는 사람 중에서도 '동료를 직접 돕느라 자기 시간과 체력을 쓰는 사람(OCB-I)'과 '조직 전체를 위해 기여하는 사람(OCB-O)'은 조직에 미치는 영향도, 본인이 치르는 대가도 다르기 때문이다.

밝은 얼굴: OCB는 어떻게 조직을 끌어올리는가

첫 번째 논문, 고성주(2021)의 연구는 OCB의 밝은 얼굴을 보여준다.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 구성원 210명을 분석한 이 연구의 인과 사슬은 명확하다.

직무특성 → 조직몰입 → 회복탄력성 → 조직시민행동.

구체적으로, 직무의 다섯 특성(기술다양성, 직무정체성, 직무중요성, 자율성, 피드백) 중 직무정체성을 뺀 네 가지가 조직몰입을 높였고, 조직몰입은 회복탄력성과 OCB를 모두 끌어올렸으며, 회복탄력성이 그 사이를 부분적으로 매개했다.

이 결과가 그레이존 논의에 주는 함의는 결정적이다. OCB는 타고난 성격이 아니라 설계의 산물이라는 것. 자기 일에 다양한 기술을 쓰고(기술다양성), 그 일이 중요하다고 느끼고(직무중요성),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자율성), 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피드백) 사람일수록 조직에 몰입하고, 역경에서 빠르게 회복하며, 그 결과 경계 너머로 한 발 더 나아간다.

바꿔 말하면, 그레이존을 메우는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될 수 있는 직무 환경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앞선 글에서 다룬 '동기는 주입되지 않고 환경에서 자란다'는 이야기와 정확히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어두운 얼굴: 좋은 사람이 먼저 지친다

두 번째 논문, 허문영 외(2024)의 연구는 정반대의 얼굴을 보여준다. 중앙, 지방 공무원 4,133명을 분석한 이 연구의 핵심 발견은 불편하지만 중요하다.

조직시민행동이 이직의도를 "높인다".

그동안 OCB는 좋은 것으로만 여겨졌다. 그런데 이 연구는 OCB의 어두운 면을 정면으로 겨눈다. 특히 동료를 직접 돕는 이타적 OCB-I가 문제였다. 논리는 이렇다. 적절한 보상 없이 자기 업무 범위 밖의 일에 시간과 체력을 계속 쏟으면, 그 사람은 업무 스트레스, 소진, 업무 과부하, 일가정 갈등을 겪게 되고, 이것이 결국 이직의도로 이어진다. 이른바 "좋은 군인(good soldier)"이 가장 먼저 지쳐 떠난다는 것이다.

이 발견은 앞선 글에서 내가 던졌던 우려에 실증적 근거를 준다. 그레이존을 메우는 사람은 팀엔 이롭지만, 그 기여가 인정, 보상, 관리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당사자에겐 순수한 비용이 된다. 그리고 조직은 가장 헌신적인 사람을 잃는다. 소중한 인적 자원의 손실이다.

논문의 표현을 빌리면, 개인의 자발적 헌신이 "당사자 본인에게는 비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레이존을 메우는 사람을 칭찬만 하고 방치하는 조직은, 사실 그 사람을 조용히 소진시키고 있는 셈이다.

완충장치: 무엇이 헌신을 지키는가

그렇다면 그레이존을 메우는 사람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허문영 외(2024)의 연구는 하나의 답을 제시한다. 공직가치(public service value)의 조절효과다.

분석 결과, OCB는 이직의도를 높이지만, 그 사람이 공직가치를 강하게 내재하고 있으면 그 부정적 효과가 억제됐다. 공직가치란 공익에 봉사하기 위해 추구해야 할 신념과 태도로 민주적, 윤리적, 인간적, 전문직업적 가치의 총합이다. 자기 일에 대한 의미와 사명감이 강한 사람은, 같은 헌신을 하더라도 덜 소진되고 덜 떠난다는 것이다.

이것을 민간의 언어로 옮기면 무엇일까. 공직가치의 자리에 '일의 의미', '조직 목적과의 정렬', '자기 일에 대한 소명감'을 넣을 수 있다. 즉 그레이존을 메우는 사람이 그 행동의 의미를 스스로 납득하고 있을 때, 그 헌신은 소진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기여가 된다.

여기서 세 번째 논문, 최윤희 외(2024)의 주창을 더할 수 있다. 공무원 4,133명을 대상으로 혁신행동의 영향요인을 비교한 이 연구는 두 가지를 말해준다. 첫째, 혁신행동을 이끄는 가장 강한 힘은 공공봉사동기와 성취동기 같은 내재적 동기, 그리고 전문성·역량이었다. 둘째, 위계지향 문화는 그 기여를 억제하고, 혁신·관계지향 문화는 촉진한다. 개인의 헌신을 실제 성과와 혁신으로 전환하는 데는 문화라는 조건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세 논문을 엮으면: 그레이존을 지키는 설계도

세 편의 연구를 겹쳐 놓으면, 그레이존을 메우는 사람에 대한 하나의 통합된 그림이 나온다.

1. OCB는 성격이 아니라 설계다 (고성주, 2021). 직무에 다양성, 중요성, 자율성, 피드백을 심으면 몰입과 회복탄력성이 자라고, 그 결과로 그레이존을 메우는 행동이 나온다. 좋은 사람을 찾기 전에, 좋은 행동이 나오는 직무를 설계하라.

2. 그러나 방치된 OCB는 사람을 잃게 한다 (허문영 외, 2024). 보상과 인정 없는 헌신은 소진과 이직으로 이어진다. 특히 동료를 직접 돕는 사람(OCB-I)이 위험하다. 그레이존을 메우는 사람을 '알아서 잘하는 사람'으로 두지 마라.

3. 의미가 헌신을 지킨다 (허문영 외, 2024). 일의 의미와 소명감(공직가치)이 강한 사람은 같은 헌신을 해도 덜 소진된다. 그레이존을 메우는 행동이 '왜 가치 있는지'를 함께 만들어라.

4. 문화가 헌신을 성과로 바꾼다 (최윤희 외, 2024). 위계적 통제 문화는 기여를 억누르고, 혁신과 관계 지향 문화는 살린다. 그레이존을 메우는 사람이 숨 쉴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라.

실무로: 그레이존을 메우는 사람을 위한 네 가지

이 통합된 그림을 인사 제도의 언어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첫째, OCB가 자라는 직무를 설계한다. 앞선 '직무 분석' 글과 이어지는 지점이다. 각 직무에 자율성, 중요성, 피드백을 의도적으로 심는다. 그레이존을 메우는 행동은 그런 직무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

둘째, 보이지 않는 기여를 보이게 만든다. OCB는 성과 지표에 안 잡히므로, 방치하면 소진되고 사라진다. 그레이존을 메우는 기여를 의도적으로 관찰하고, 인정하고, 평가와 보상에 반영한다. 다만 허문영 외(2024)가 경계했듯, 성과 없이 OCB만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 다수가 되지 않도록 제도는 정교해야 한다.

셋째, 특정인에게 그레이존이 몰리지 않게 관리한다. 헌신적인 소수에게 애매한 업무가 계속 쌓이면, 그가 바로 가장 먼저 지쳐 떠나는 사람이 된다. 그레이존의 부하를 분산하고, 그 일이 특정인의 '조용한 희생'이 되지 않도록 한다.

넷째, 일의 의미를 함께 만든다. 소명감이 헌신을 지킨다. 그레이존을 메우는 행동이 조직과 동료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가시화하고, 그 사람이 자기 기여의 가치를 스스로 납득하도록 돕는다. 그리고 위계적 통제보다 신뢰와 참여의 문화를 지향한다.

남는 생각

말은 쉽지, 실천 가능한 제도로 구성하는 것은 절대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왜 이런 고려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납득 가능한 언어로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여러분의 몫이다.

앞선 글에서 나는 그레이존을 메우는 사람의 가치를 예찬했다. 이번에 세 편의 논문을 다시 읽으며, 나는 그 예찬에 조심스러운 단서를 붙이게 됐다.

그레이존을 메우는 사람은 조직의 축복이지만, 방치하면 조직이 가장 먼저 잃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건 제 일이 아닌데요"라고 선을 긋는 사람과 "제가 좀 더 해볼게요"라고 나서는 사람. 우리는 당연히 후자를 원한다. 하지만 후자를 원한다면, 그 사람이 지치지 않도록 지키는 것 또한 우리의 몫이다. 헌신을 당연하게 여기는 순간, 그 헌신은 비용이 되고, 결국 떠남이 된다.

좋은 사람이 계속 좋은 사람일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그레이존을 메우는 사람들에게 조직이 갚아야 할 최소한의 빚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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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고성주 (2021). 「직무특성이 조직몰입, 회복탄력성, 조직시민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 과학기술분야 출연연구기관 조직구성원들을 대상으로」, 부경대학교 대학원 공학박사 학위논문. (직무특성→조직몰입→회복탄력성→OCB의 경로모형, N=210)

  • 허문영·조병우·양승범 (2024). "조직시민행동이 공무원의 이직의도에 미치는 영향에서 공직가치의 조절효과", 『국정관리연구』 19(3), 147-181. (OCB→이직의도 정, 공직가치의 조절효과, N=4,133)

  • 최윤희·전세혁·김서용 (2024). "조직혁신행동 영향요인 비교분석: 조직문화 유형의 직접, 간접효과를 중심으로", 『한국행정연구』 33(2), 45-98. (혁신행동 영향요인 비교, 조직문화 조절효과, N=4,133)

  • Organ, D. W. (1988). Organizational Citizenship Behavior: The Good Soldier Syndrome. — OCB 5차원(이타주의·예의·성실함·시민의식·스포츠맨십)의 원출처.

  • Williams, L. J. & Anderson, S. E. (1991). — OCB-I(개인 지향)와 OCB-O(조직 지향)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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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환
프로액티브 한 문제해결자
L&D 직무를 졸업하며, 개발자에서 콘텐츠 기획과 마케팅, 교육과 조직문화 담당자로 일하면서 얻은 모든 인사이트와 노하우를 공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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