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넣으면 바로 뛰쳐나오지만
찬물에 넣고 서서히 데우면 온도가 오르는 줄도
모르고 죽는다는 이야기를 아실 것입니다.
조용히 무너지는 과정을 설명할 때마다 이 개구리가 등장합니다.
저도 오랫동안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개구리는 물이 뜨거워지면 뛰쳐나옵니다.
아무리 천천히 데워도 그렇습니다.
개구리가 그대로 죽었다는 오래된 실험은
개구리의 뇌를 건드린 뒤에 얻은 결과였다 합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 저는 비유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대신
질문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개구리는 나옵니다. 그런데 사람은 왜 남아 있을까요?
오래 전 함께 일하던 팀장님 한 분이 떠올랐습니다.
회의 때마다 가장 먼저 손을 들던 분이었습니다.
의견이 많아 피곤하다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그 사람이 있는 회의는 어딘가 살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손이 덜 올라갔습니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한번에 멈춘 게 아니라 조금씩 줄었기 때문입니다.
몇달 뒤에는 회의록에 그 분의 이름이
발언자로 적히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회의는 짧아졌고 사람들은 효율적이라고 좋아했습니다.
그가 사직서를 냈을 때 대표는 전혀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더 서늘했습니다.
그 사람은 개구리처럼 뛰쳐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물속에서 움직임을 멈췄고
나간 것은 마지막 절차였을 뿐입니다.
개구리에게는 없고 사람에게만 있는
무엇이 그를 오래 붙잡아 두었을 것입니다.
이유를 들여다 보면 몇가지로 추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은 뜨거운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개구리는 물이 왜 뜨거워지는지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뜨거우면 나갑니다.
사람은 이유를 알고 싶어 하고
이유를 알게 되면 이상하게도 조금 더 견딜 수 있게 됩니다.
지금은 신규 사업 때문에 바쁜 시기라서 그렇다는 말,
새로 온 본부장이 자리 잡을 때 까지만 그렇다는 말 등 다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해한다는 것과 괜찮다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이 둘이 자주 하나로 섞입니다.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일수록 오래 남습니다.
그리고 오래 남은 사람일수록 온도계를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어제를 기준으로 오늘을 잽니다.
개구리는 물의 온도를 느끼지만 사람은 온도의 변화를 느낍니다.
지난달보다 나아졌으면 좋아진 것이고
지난달과 같으면 괜찮은 것입니다.
물이 몇 도인지는 아무도 묻지 않습니다.
회의에서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 것이
처음에는 이상했다가 나중에는 평화로운 것이 됩니다.
야근이 잦아지는 것이 처음에는 특별한 일이었다가
어느새 그냥 우리 팀의 방식이 됩니다.
누구도 기준을 낮추자고 결정한 적이 없습니다.
그냥 낮아져 있습니다.
이 과정이 무서운 이유는 나쁜 사람이 없어도 진행된다는 데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람은 혼자가 아닙니다.
개구리는 혼자 물속에 있지만 사람은 여럿이 함께 있습니다.
여럿이 있으면 누군가는 온도를
보고 있을 거라고 서로 믿게 됩니다.
옆 사람이 아직 나가지 않았으니 아직은 괜찮은 것입니다.
팀장이 아무말 없으니 아직은 괜찮은 것입니다.
그런데 팀장도 같은 이유로 조용합니다.
대표가 아무말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서로를 온도계로 삼고 있는데 정작 온도계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저는 여기서 늘 새로 들어온 사람을 떠올립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은 조직에서
유일하게 물 밖에서 들어온 사람입니다.
그 사람만이 지금 물이 몇 도인지 압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자주 이상한 질문을 합니다.
왜 이 회의는 매번 한 시간을 넘기는지?
왜 이 결재는 세 사람을 거쳐야 하는지?
왜 아무도 저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는지?
우리는 그 질문에 대부분 이렇게 답합니다.
원래 그래요~
그 대답을 몇 번 듣고 나면 새로 온 사람도 조용해집니다.
조직은 그렇게 가장 정확한 온도계를 몇 달 안에 고장 냅니다.
인사 일을 하면서 저는 한동안
개구리를 건져내는 일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친 사람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팀을 옮겨주고 휴가를 권하는 일 말입니다.
그 일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뜨거워진 물에서
한 마리씩 건지는 일입니다. 건지는 동안 물은 계속 데워집니다.
지금은 다르게 생각합니다.
인사가 할 일은 개구리를 건지는 것이 아니라
온도계를 벽에 걸어두는 것입니다.
회의에서 발언자가 몇 명이었는지,
이번 분기에 누가 한 번도 손을 들지 않았는지,
새로 온 사람이 첫 달에 했던 질문 중 몇개가 실제로 검토됐는지,
이런 것들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자리에 두는 일입니다.
온도계가 걸려 있으면 설명이 사실을 덮기 어려워집니다.
어제와 비교하는 대신 몇 도인지를 말하게 됩니다.
옆 사람을 보는 대신 벽을 보게 됩니다.
온도계는 물을 식히지 못합니다.
그것을 식히는 것은 결국 경영진의 결정이고
팀장의 태도이고 구성원 각자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온도계가 없으면 그 결정과
태도와 선택이 시작될 이유도 없습니다.
아무도 뜨겁다고 말하지 않는
물은 뜨겁지 않은 것으로 기록되기 때문입니다.
개구리는 뛰쳐나옵니다.
사람이 남아 있는 것은 둔해서가 아닙니다.
너무 많이 이해하고 너무 많이 비교하고
너무 많이 서로를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직에 필요한 것은 더 예민한 개구리가 아니라
모두가 같은 숫자를 읽을 수 있는 온도계 하나입니다.
여러분의 조직에는 지금 그 온도계가 걸려 있나요?
그리고 가장 최근에 그것을 읽은 사람은 누구였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