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교수님의 다양성 수업, 이번 주제는 ‘Social Class and Diversity’였습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지만, 두껍고 어려워 끝까지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21세기 자본’ 이야기로 강의를 시작하셨습니다.
1950년대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Simon Kuznets)는 경제발전과 소득불평등의 관계를 ‘역U자 곡선’으로 설명했습니다. 경제발전 초기에는 산업화 과정에서 불평등이 확대되지만, 경제가 충분히 성장하면 교육의 확산과 복지제도의 발전 등을 통해 다시 격차가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성장의 과실이 결국 사회 전체로 확산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었습니다.
하지만 반세기가 지난 뒤, 피케티는 자본에서 얻는 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지속적으로 높다면 이미 자본을 가진 사람의 부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빠르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서 불평등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21세기 자본’을 통해 피케티는 쿠즈네츠의 낙관적인 전망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피케티가 경고한 부의 집중과 세습 현상이 대한민국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난다는 점은 아이러니합니다.
2026년 세계 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53%, 전체 부의 75%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반대로 하위 50%는 전체 소득의 8%, 전체 부의 2%만 보유하고 있습니다. 좀 더 극단적으로 보면, 전 세계 상위 0.001%, 즉 6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초고액 자산가들이 가진 부가 전 세계 하위 50% 전체가 가진 부의 약 3배라고 합니다. 상위 0.001%의 세계 부 점유율은 1995년 약 4%에서 최근에는 6%를 넘어섰습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떨까요? 상위 10%가 전체 부의 약 66%를 보유한 반면, 하위 50%가 가진 부는 1.8%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소득보다 부, 즉 자산의 상·하위 격차가 더 커지면서 이제는 과거처럼 개천에서 용이 나기도 어려워지고, Class(계층) 간 이동도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은 사회계층과 관련해 한국과 해외의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우선 미국입니다. 미국은 저소득층이라고 쇼핑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고소득층이 가는 쇼핑몰에는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계층별로 이용하는 공간 자체가 다르다는 이야기인데, 한국보다 훨씬 더 ‘계층적으로 분절된 사회’처럼 느껴졌습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미국에는 미디에이터(Mediator)라는 제도화된 ‘갈등 조정 전문가’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협상 결과를 살펴 더 나은 중재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성숙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단순히 소득 수준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제3의 조정자를 신뢰하고, 그 조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신뢰도 중요합니다. 이러한 신뢰는 갈등 해결에 드는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을 낮추는 데, 한국에서는 아직 이런 역할과 문화가 충분히 자리 잡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다음은 독일의 사례입니다.
독일에서 가장 신뢰받는 기업 중 하나인 지멘스(Siemens)는 교수님의 표현을 빌리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을 한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회사의 구매팀은 협력업체의 단가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기 마련인데, 지멘스는 협력업체와 원가회계 장부를 함께 보면서 영업이익률을 맞춘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멘스 본사 직원과 3차 협력업체의 대장장이 직원이 같은 일을 한다면 보상 수준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설명이었습니다.
하는 일이 같더라도 갑과 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따라 보상의 차이가 큰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독일은 자신이 가진 능력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 잘 갖춰진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좋은, 더 높은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치열하게 Over Spec을 쌓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안쓰럽게 느껴졌습니다.
다음은 한국 이야기입니다.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같은 직급 호칭은 한국과 일본의 기업문화에서 특히 익숙한 모습입니다. 미국 등 서구에서는 직급 자체를 일상적인 호칭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다고 하는데요.
한국의 많은 기업들은 오랜 기간 조직 내 Social Class를 나누는 기준처럼 작동해 온 ‘호칭’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교수님이 S그룹 미래전략실에 직급 호칭을 없애자는 자문을 하셨는데, 직원들의 호칭은 ‘프로’로 통일하면서도 임원 호칭은 그대로 유지해 결국 취지가 제대로 살아나지 못했다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저희 회사도 꽤 오래전부터 ‘매니저’로 호칭을 통일했지만, 지금까지도 조직 내 계층이 완전히 없어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뿌리 깊은 Social Class를 바꾸는 일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끝으로 교수님은 재미있는 경험담 하나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정경화의 뒤를 잇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Anne-Sophie Mutter)가 예술의전당에서 내한 공연을 했다고 합니다. 티켓 가격이 매우 고가인데도 1분도 안 돼 매진되었는데, 정작 공연이 끝나기도 전에 밖으로 나가려던 사람들의 모습을 기립박수로 착각해 계속 앙코르 연주를 했다고 합니다.
교수님이 보기에는 꽤 낯뜨거운 상황이었는데, 갑작스러운 사회계층의 상승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문화적 소양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로 들렸습니다.
저는 이번 주제에 대한 Experience Log를 무엇으로 쓸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동안 제가 탔던 자동차들을 통해 저의 Social Class를 표현해 보기로 했습니다.
마라톤 대회에서 나보다 먼저 반환점을 돌아오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한참 뒤처진 것 같고, 내가 반환점을 돌아 아직 반환점을 향해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반대로 꽤 앞서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세상은 위를 올려다보면 끝이 없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바닥이 없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차 A
계속 뚜벅이로 살다가 큰아이가 태어날 무렵, 산부인과에 빨리 갈 수 있도록 첫 차로 A를 샀습니다.
‘나만 떳떳하면 내가 타는 차가 무엇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주유소에서 은근히 무시를 당하거나 고속도로에서 추월을 당하는 일들을 종종 겪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손주를 잘 키우라’는 어머니의 성화에 큰아이를 집 근처 사립초등학교에 보냈습니다. (이때는 둘째가 태어나기 전입니다.)
평범한 직장인인 제 눈에는 ‘무슨 일을 하길래 저렇게 화려한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탈까?’라는 생각이 드는 학부모들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 갔다가 말로만 듣던 고급 외제차들 사이에 A를 주차하는 민망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아이가 아빠 차 때문에 위축되지 않도록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학교에 갔습니다.
두 번째 차 S
새 차를 알아보기 위해 H자동차 대리점에 갔습니다.
‘지금 타는 차가 무엇이냐?’, ‘중형 SUV는 생각보다 비싸다.’ 등 영업사원의 무시하는 듯한 말을 듣고, 생각지도 않았던 K자동차 S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할리데이비슨 같은 디젤 엔진 소리가 좋았고,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진 모습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저에게는 ‘볼수록 매력적인 차’였습니다.
큰아이가 중학교에 진학했고, 첫 학부모 상담을 하러 갔습니다.
“○○가 좋은 운동화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학교에 올 때는 조금만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같은 반 친구들 중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몇 명 있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2010년대 서울 한복판에 아직도 기초생활수급자가 있다는 사실이 당시의 저에게는 놀라웠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사립초등학교의 상황과 너무나 대비되어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세 번째 차 G
S를 15년 동안 12만km 탔습니다.
그런데 영원할 것 같았던 저의 S 사랑이 MBA에 진학하면서 조금씩 식기 시작했습니다. MBA에는 부자들이 많이 다니는 건지,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주차장에 갔다가 함께 수업을 듣는 원우들의 차를 보고 저의 S가 참 초라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날 고민 끝에 올해 G로 차를 바꿨습니다.
그동안 ‘타는 차’만 신경 썼던 제가 어느새 ‘내리는 차’도 신경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차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대한민국에서 저는 왜 초연하지 못하는지 스스로에게 실망감이 들면서도, 이번 차가 제 삶에서 타게 될 차의 정점일지, 아니면 더 좋은 차가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저 역시 Social Class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사람입니다.
평범한 인생이지만 군 제대 후 부모님의 도움 없이 이 정도면 충분히 성공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어릴 때 부모님이 저에게 기대하고 지원해 주셨던 것에 비해 한참 못 미치는 현재의 저를 보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처럼 Social Class가 복잡하게 얽힌 사회에서 부모를 잘 만나 3루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자기 힘으로 삶을 일궈낸 멋진 분들을 Respect합니다. 저 역시 그분들처럼 제 Class를 높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마다의 사정으로 낮은 사회 계층에 있는 분들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동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본인의 Social Class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다음 다양성 주제는 ‘Stereotypes and Unconscious Biases’입니다.
–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