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커리어의 정점에서 내려왔을까

나는 왜 커리어의 정점에서 내려왔을까

이제 막 시작하는 회사들의 파트너로_Offpiste PIONEER 3기, 그 첫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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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훈
장세훈Jul 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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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가장 빠르게 크던 시절이 있었다.

매출이 뛰었고, 그만큼 사람이 뛰었다. 5년 동안 40여명 남짓이던 조직은 어느새 200명이 되어 있었다. 직책을 단 사람의 수가 두 배로 늘었다. 밖에서 보면 분명한 성공이었다. 그런데 매일 그 안을 살던 나는, 무언가가 조금씩 어긋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스무 명일 때 잘 돌아가던 정산 방식이, 사람이 늘자 병목이 되었다. 소수일 때는 티 나지 않던 평가와 보상의 허점이, 백 명을 넘어서자 불만이 되어 돌아왔다. 무엇보다, 그렇게 자랑스럽던 조직문화가 사람이 불어난 속도만큼 옅어져 갔다.

그 시절 나는 하나를 몸으로 배웠다. 계획 없이 실행하고, 계획 없이 조직을 바꾸면 반드시 내부에서 잡음이 인다는 것. 성장에는 시행착오가 따른다. 그건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겪은 그 혼란만큼은, 먼저 그림을 그리고 움직였다면 상당 부분 피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실행 앞에 '계획'이라는 한 칸을 반드시 끼워 넣을 것이다.

나는 19년 동안 그 뒷단에 서 있던 사람이다. 사람을 뽑고 내보내는 일(인사), 돈이 새지 않고 흐르게 하는 일(회계), 회사가 굴러가도록 보이지 않게 받치는 일(총무), 그리고 사고가 나지 않도록 지키는 일(안전). 회사의 앞이 화려하게 달릴 때, 나는 늘 그 뒤를 붙잡고 있었다.

그런 내가 어느 날, 커리어의 정점이라 불리는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왔다.

이유는 단순했다. 조직이 통폐합되는 과정을 지나며, 내 권한과 역할이 하나씩 줄어드는 걸 지켜봤다. 큰 회사는 잘 짜인 프로세스로 움직인다. 글로벌 본사의 지침이 있고, 나는 그 안에서만 손을 쓸 수 있었다. 자리는 높아졌는데, 정작 내 손이 닿는 범위는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그러다 이상한 결론에 도달했다. 내 손이 정말로 필요한 곳은 프로세스가 완벽한 큰 회사가 아니라 아직 프로세스가 없는 작은 회사들이라는 것.

퇴사 후 경력 전문가를 위한 액셀러레이터 교육을 들었다. 거기서 여러 강사분들이 약속이나 한 듯 같은 말을 했다. 아이디어 하나로 출발한 예비 창업가, 이제 막 걸음을 뗀 초기 기업이 가장 먼저, 가장 절실하게 손 내미는 곳이 인사·총무·회계라고. 내가 막연히 느끼던 것이, 실은 시장이었다.

기술 개발, 영업, 마케팅.

이런 영역은 창업가 자신이 누구보다 뛰어날 수 있다. 뛰어난 사람을 뽑아 맡길 수도 있다. 그런데 백오피스는 다르다. 백오피스는 회사의 뿌리다. 회사의 시작을 여는 것도, 마지막을 정리하는 것도 결국 이 자리다. 그리고 뿌리는 눈에 보이지 않기에, 대개 썩기 시작한 뒤에야 관심을 받는다. 회사가 성장할 거라고 진심으로 믿는다면, 단기부터 장기까지 경영지원의 구조만큼은 처음부터 명확히 세워두어야 한다.

많은 대표가 이렇게 말한다. "경영지원은 아무나 와서 하면 되지. 세무사, 회계사한테 맡기면 되고."

세무와 회계는 맡길 수 있다. 하지만 회사를 '운영'하는 일은 통째로 맡길 수 없다. 사람과 돈과 시스템과 위험은 서로 얽혀 있어서, 따로 떼어 세 사람에게 나눠주는 순간 그 사이에 빈틈이 생긴다. 회사가 무너질 때는, 대개 그 빈틈에서 무너진다.

그래서 나는 AI 시대의 경영지원을 조금 다르게 본다. 이제 필요한 건 인사 담당, 총무 담당, 회계 담당 세 사람이 아니다. 그 전부를 연결해서 보는 한 사람, 사람과 AI라는 도구를 함께 부리며, 흩어진 기능을 하나의 흐름으로 통합해 관리하는 사람이다. 나는 앞으로 만날 대표들에게, 그리고 이 길을 걸으려는 후배들에게 그런 인재상을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정점에서 내려온 이유가 여기 있다.

규모는 작아도 가치 있게 크려는 회사들. 새로 시작했거나, 시작했지만 성장통을 앓고 있는 사람들. 그 뒷단에서 놓치기 쉬운 것들을, 이번엔 내가 옆에서 챙겨보려 한다.

이 글은 그 다짐의 첫 페이지다. 앞으로 6개월, 나는 그 뒷단의 이야기를 한 편씩 써 내려갈 생각이다.


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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