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한 임원을 코칭했습니다. 마케팅과 비즈니스 개발을 맡은 분이었습니다. 새롭게 부서를 맡았지만 아직 조직은 완전히 갖춰지지 않았고, 일부 영역에서는 임원이면서 팀장 역할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분은 누구보다 바쁘고 열심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코칭을 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바쁘기 때문에, 오히려 가장 중요한 일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바쁜 사람을 일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정이 빽빽하고, 메일에 빠르게 답하고, 회의에서 회의로 이동하는 사람을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바쁘다는 것이 곧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급한 일은 소리를 냅니다. 메일은 알림으로 우리를 부르고, 회의는 캘린더를 차지하고, 상사와 다른 부서의 요청은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할 일처럼 다가옵니다.
반면 중요한 일은 조용합니다. 전략을 생각하는 일, 사람을 키우는 일, 팀의 방향을 다시 정렬하는 일은 오늘 하지 않는다고 당장 문제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자꾸 뒤로 밀립니다. 하지만 미룬 중요한 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더 큰 문제로 돌아옵니다. 구성원은 의욕을 잃고, 팀의 방향은 흐릿해지고, 성과는 떨어지고, 결국 리더 자신이 지쳐갑니다.
많은 리더들이 말합니다. “너무 바빠서 사람을 키울 시간이 없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리더들을 만나며 자주 느끼는 것은 조금 다릅니다. 바빠서 사람을 키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지 않았기 때문에 더 바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성원을 성장시키는 일은 당장은 시간이 드는 일처럼 보입니다. 대화해야 하고, 기다려야 하고, 피드백해야 합니다. 그래서 급한 업무 앞에서는 쉽게 밀립니다.
하지만 구성원의 역량이 성장하면 그 성장의 결과는 계속해서 리더에게 돌아옵니다. 반대로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리더가 팀원의 일을 계속 대신하면, 팀원은 자라지 못하고 리더의 일은 줄지 않습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이메일에는 더 많이 참조되고, 회의에는 더 많이 초대되고, 결정할 일은 더 많아집니다. 하루 종일 바쁘게 반응하다 보면, 정작 자신만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생각은 시작도 못 한 채 하루가 끝납니다.
Lynda Cardwell은 중요한 일이지만 긴급하지 않은 일을 해내기 위해 ‘Slow Time’, 즉 느린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느린 시간은 쉬는 시간이 아닙니다. 급한 일에 가려진 중요한 일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저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습니다. 주로 새벽입니다. 아직 세상이 잠든 고요한 시간에 저는 일기를 쓰고,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합니다. 회사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는 메모지를 꺼냅니다. 적어둔 고민의 주제를 한 장씩 넘기며 지금 가장 중요하게 붙잡아야 할 질문을 다시 바라봅니다.
그 시간에는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해야 할 일의 목록에서 잠시 떨어져 나와 생각을 따라가게 됩니다. 흐릿했던 고민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따로 떨어져 있던 생각들이 연결됩니다.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다시 보이기 시작합니다. 반대로 느린 시간 없이 바쁘게 일만 할 때는 마음이 헝클어진 느낌이 듭니다. 몸은 움직이지만, 머릿속은 정리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일과 급한 일이 뒤섞이고, 내 판단보다 외부 요청에 더 많이 반응합니다. 그럴 때 저는 다시 주간계획을 펼치고, 지금 붙잡아야 할 중요한 주제가 무엇인지 확인합니다. 흩어진 마음을 다시 한 곳에 모으는 일입니다.
저도 처음부터 느린 시간의 가치를 알았던 것은 아닙니다. 팀장이 처음 되었을 때 저는 느린 시간을 게으름이나 사치처럼 생각했습니다. 하루 일정을 빼곡히 적어두고, 하나씩 지워가는 만족감으로 살았습니다. 할 일을 많이 지우면 일을 잘한 것 같았습니다. 생각만 하는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일을 지워낼수록 일은 더 쌓였습니다. 더 열심히 했는데 더 여유가 없어졌습니다. 더 빨리 움직였는데 더 중요한 것은 멀어졌습니다.
결국 어느 순간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몸과 마음이 한계에 가까워졌고, 병원을 제 발로 찾아갈 정도로 지쳐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정신을 잃고, 링거를 맞고, 다시 눈을 떴을 때 하얀 천장이 보였습니다. 그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이건 아닌 것 같다.’ 그때 처음으로 묻게 되었습니다. 정말 효율적인 것은 무엇일까. 정말 일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 이후로 저는 느린 시간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느린 시간은 멈춰 있는 시간이 아니라 나를 다시 정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흩어진 생각을 모으고, 분절된 아이디어를 연결하고, 전체의 우선순위를 다시 결정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리더에게 생각하는 시간은 중요한 노동입니다. 그 시간에 리더는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결정하고, 흩어진 신호들을 연결하며, 당장의 반응을 넘어 더 큰 방향을 바라봅니다. 결국 무엇을 할지, 무엇을 하지 않을지 결심합니다. 좋은 리더는 무조건 빠른 리더가 아닙니다. 달릴 때 달리고, 멈출 때 멈출 줄 아는 리더입니다. 계속 달리다 보면 멈추는 법을 잊습니다. 속도에는 관성이 있고, 바쁨에도 중독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달리기만 하면 언젠가는 다리가 풀려 쉽게 넘어집니다.
리더가 멈추지 않으면, 팀도 계속 급한 일에만 반응합니다. 리더가 생각하지 않으면, 조직은 외부 요청과 당장의 문제에 끌려갑니다. 리더가 사람을 키우지 않으면, 리더의 바쁨은 끝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느린 시간은 리더에게 선택이 아니라 책임에 가깝습니다.
매일 아침, 커피 한 잔이나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메모지에 한 주제만 생각하고 적어보면 좋겠습니다. “오늘 내가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 하나만으로도 하루의 방향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을 다 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루가 급한 일에만 끌려가지 않도록, 가장 중요한 일을 먼저 바라보는 것입니다.
열심히 달리기 위해서도 준비가 필요합니다. 숨을 고르고, 운동화 끈을 묶고, 내가 달려야 할 방향을 확인해야 합니다. 느린 시간은 달리기를 멈추는 시간이 아닙니다. 더 잘 달리기 위한 준비의 시간입니다. 저에게 느린 시간은 '나다운 생각을 장착하는 시간'입니다. 남의 요청에만 반응하는 시간이 아니라, 내가 중요하다고 믿는 것을 다시 붙잡는 시간입니다. 속도에 휩쓸려 잃어버린 방향을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Making the most of "Slow Time" - Lynda Cardwell
1. Slow Time is not simply rest; it is time to deeply think about and work on what is important but not urgent.
Slow Time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을 깊이 생각하고 실행하는 시간이다.
2. The busier we become, the more we are pulled toward urgent tasks like emails, meetings, and immediate requests.
우리는 바쁠수록 이메일, 회의, 즉각적인 요청 같은 ‘급한 일’에 끌려가며 중요한 일을 뒤로 미룬다.
3. Strategic thinking, relationship building, people development, and future preparation all require Slow Time.
전략 수립, 관계 형성, 사람 육성, 미래 준비 같은 일은 Slow Time이 있어야 제대로 할 수 있다.
4. Important work does not happen with leftover time; it requires intentionally protected time.
중요한 일은 시간이 남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시간을 확보해야 가능하다.
5. Real performance comes not only from reacting quickly, but also from slowing down and thinking deeply.
좋은 성과를 내려면 더 빨리 반응하는 능력뿐 아니라, 속도를 늦추고 깊이 생각하는 능력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