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그동안 경험했던 과정을 정리 정리하면 크게 네 단계로 나누고 싶다.
Phase 1. 데이터(인사·재무)로 회사를 해석하는 역량을 만들다.
Phase 2. 분석 경험을 규칙 기반 진단도구로 구현하다.
Phase 3. 전문가의 판단을 머신러닝에 학습시키다.
Phase 4. 나의 경험과 판단방식을 가진 HR Agent를 만들다.
현재 나는 Phase 3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머신러닝이나 Agent를 만들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 회사는 사람을 더 뽑아도 될까요?”, “올해 임금은 얼마나 올릴 수 있을까요?” 등 출발점은 인사노무 컨설팅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받았던 질문이었다.
나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재무 데이터부터 확인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자산과 부채, 인원과 인건비를 연도별로 정리하고 성장성·수익성·효율성·안정성과 HR Index를 분석했다. 여기에 다양한 인사 데이터를 함께 연결해 가설을 세우고 조직의 이슈를 찾아냈다.
매출이 증가했다고 반드시 사람을 더 뽑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매출보다 인원이 빠르게 증가했다면 오히려 노동생산성이 낮아졌을 수 있다. 회사가 흑자라고 내년도 연봉을 크게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건비는 매년 누적되기 때문에 현재의 이익보다 앞으로의 생산성과 지속가능성이 더 중요하다. 같은 숫자라도 어떤 지표와 연결해 보는지에 따라 결론은 달라진다. 여러 기업을 분석하면서 데이터로 회사를 읽는 역량과 나름의 판단 기준이 만들어졌다.
그러다 문득 “내가 반복해서 내리는 이 판단을 머신러닝이 학습할 수는 없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매주 또는 격주로 새로운 회사를 방문한다. 몇 년 전부터 동일한 재무 데이터 분석 프레임워크를 활용해 다양한 사례를 접해왔다. 또한 지난 몇년간 스터디와 공부방 등 외부 활동을 통해서도 여러 업종과 기업의 데이터를 꾸준히 정리했다.
머신러닝 구현을 위해 먼저 지금까지 분석했던 기업의 재무·인력 데이터를 하나의 Master로 통합했다. 각 기업의 매출성장률, 영업이익률, 인당매출, 인당인건비, 노동생산성, 노동소득분배율과 HCROI를 다시 계산하고 동일한 산업의 평균과 비교했다. 그리고 각 회사를 직접 판단했다.
인력 의사결정은 확장·유지·축소로, 보상 의사결정은 동결·최소인상·제한적 인상·적정수준 인상으로 구분했다. 단순히 특정 숫자 하나를 보고 분류한 것은 아니다. 성장성과 수익성, 인력생산성과 인건비 부담, 산업 내 위치와 지속가능성을 종합해 실제 컨설팅 현장에서 내릴 판단을 정답값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경험에 하나씩 라벨을 붙였다. 그리고 Random Forest 모델이 기업의 재무·인력 데이터와 내가 내린 판단 사이의 패턴을 학습하도록 했다. 데이터가 전문가의 경험을 학습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는 새로운 회사의 내가 관리하는 HR Index를 입력하면 모든 과정이 자동으로 실행된다. 기업정보와 연도별 데이터가 Master에 누적되고 해당 기업의 KSIC와 규모에 맞는 산업 평균이 연결된다. 재무·인력지표를 계산한 뒤 규칙 기반 진단과 머신러닝 예측을 동시에 수행한다.
마지막에는 경영진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에 답하는 보고서가 나온다.
우리 회사는 산업보다 잘 성장하고 있는가
인건비를 효율적으로 쓰고 있는가
인당매출과 인당영업이익은 개선되고 있는가
인건비 증가를 생산성이 따라가고 있는가
지금 사람을 늘려야 하는가
임금은 어느 수준까지 올릴 수 있는가
결과는 Excel과 PDF 보고서로 만들어진다. 단순히 지표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 비교, 규칙 판단, 머신러닝 예측을 연결해 “그래서 우리 회사가 어떤 상태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분석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새로운 회사를 분석할 때마다 Master에 사례가 누적되고 검토와 라벨링을 거쳐 다음 모델 학습에 다시 활용할 수 있다.
결국 새로운 경험이 새로운 데이터가 되고 새로운 데이터가 모델의 다음 판단을 만든다.
데이터로 경영진에게 보고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점은 숫자만 정확하다고 충분한 것은 아니였다. 현장의 언어로, 의사결정자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야 한다. 무엇보다 해당 기업의 비즈니스와 산업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후 SATURNLAB 체험단을 운영하면서 판단근거에 대한 한계를 명확히 깨닳았고 여러 피드백을 바탕으로 반영하며 보고서의 구조와 판단 문구를 계속 수정했다. 그 과정에서 머신러닝의 정확도만큼이나 결과를 이해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다음 목표는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도구가 아니다. 기업의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중요한 변화를 발견해 필요한 의사결정을 먼저 제안하는 HR Agent를 만들고 싶다. AI 기술의 발전 속도를 생각하면 이 단계도 그리 멀지 않았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Agent가 학습할 데이터와 판단 기준, 개입 조건을 만들어 놓는 일이다.
참고로 이러한 접근을 설명하면 대부분의 경영진의 눈은 반짝인다. 반면 인사 실무자에게는 원하는 반응을 얻지 못할 경우가 많다. 아마도 인사 업무에서 재무 데이터와 머신러닝을 함께 활용하는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흥미로운 변화도 생기고 있다. 이직이나 면접을 준비하는 인사담당자들이 새롭게 합류할 회사를 분석해 달라며 이 보고서를 부탁하는 경우가 조금씩 늘고 있다. 회사를 선택하기 전에 매출과 이익, 인력과 인건비의 흐름을 확인하고, 자신이 맡게 될 조직의 상태를 미리 이해하려는 것이다. 데이터로 회사를 읽는 역량이 인사담당자의 새로운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짧은 시간 내 경영진을 설득시켜야 하는 업의 특성에 중요한 도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더욱 재밌을 것 같다.
E.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