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불씨를 살리는 리더십

내면의 불씨를 살리는 리더십

자율성, 유능감, 관계감이 충족될 때 인간은 스스로 움직이고, 배우고, 성장하고, 더 깊이 몰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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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민
전종민May 2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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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영향력이다. 조직의 구성원이 리더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때 영향력이 발휘되었다고 한다. 이 때 사람들이 떠올리는 두 단어가 있다. 바로 '당근과 채찍'. 보상과 처벌이 인간을 움직이게 한다는 오랜 고정관념 때문이다.

실제 리더십 교육 장면에서 "리더가 효과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솔선수범', '명확한 방향 제시', '신상필벌', (그리고 왠지 강사가 의도한 정답 같은 '소통') 등을 이야기한다. 이는 리더 자신의 말과 행동이 직접적으로 구성원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Outside-In' 관점이라 할 수 있다. 평가, 보상, 승진, 복리후생 등과 같은 조직의 시스템이 구성원의 동기를 유발할 수 있다는 관점도 역시 'Outside-In' 관점이다. 과연 그럴까? 정말 사람은 보상과 통제로 움직이는가? 업무 환경을 적절히 유지하고 성과에 대해 높은 보상을 주면 죽기살기로 열심히 일하는가?

Deci와 Ryan이 자기결정성이론을 들고 나온 배경도 여기에 있다. 1960년대 미국 심리학계는 행동주의(Behaviorism)가 여전히 주류 패러다임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B.F. Skinner를 중심으로 한 행동주의는 인간의 내면적인 정신 과정을 배제하고, 오직 관찰 가능한 외부 행동만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이들이 주장한 '조작적 조건화(Operant Conditioning)' 이론의 요지는 '인간의 행동은 환경적 자극(강화와 처벌)에 의해 결정되며, 학습을 통해 행동을 조작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을 비둘기와 동격으로 취급한 스키너

굳건하게만 보였던 행동주의는 여러 심리학자들에 의해 반박을 받게 되는데, 에드워드 데시(Edward L. Deci)와 리처드 라이언(Richard M. Ryan)도 행동주의에 반기를 든 연구자들이다. Deci는 초기 연구에서, 흥미로운 과제에 돈과 같은 외적 보상을 걸면 오히려 그 활동 자체에 대한 흥미가 약해질 수 있다는 결과를 얻게 된다. 이후 Richard Ryan과 함께 연구를 이어가면서, 인간 동기를 단순한 보상 체계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방향으로 연구범위를 확장했다. 이들은 “사람은 왜 어떤 일은 시키지 않아도 몰입해서 하고, 어떤 일은 보상을 받아도 금방 지치거나 형식적으로 하게 되는가”를 파고들었다. 그 결과, 인간에게는 원래 배우고 탐색하고 성장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사회적 환경이 그것을 북돋우기도 하고 꺾기도 한다는 관점을 정립하게 된다. Deci와 Ryan의 자기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 SDT)은 1985년에 출간된 『인간 행동에서의 내재적 동기와 자기결정(Intrinsic Motivation and Self-Determination in Human Behavior)』을 통해 인간의 동기를 다루는 현대 심리학의 패러다임을 바꾸게 된다.

오른쪽 이마가 넓으신 양반이 Edward Deci

자기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 SDT)은 동기의 양보다 동기의 질에 주목했다. 외적 보상은 때로 효과가 있지만, 그것이 사람의 자율성을 약화시키거나 통제받는 느낌을 강화하면 오히려 내재적 동기를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SDT는 보상의 유무보다도, 그 보상이 통제로 경험되는지, 아니면 자율성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여지는지를 더 중요하게 본다. 무엇보다도 SDT의 핵심은 인간이 건강하게 동기화되고 번영(Flourish)하기 위한 세가지 기본 심리적 욕구를 정리한 데 있다. 바로 자율성(Autonomy), 유능감(Competence), 관계감(Relatedness)이다. 이 세가지 기본 심리 욕구가 충족될 때, 인간은 비로소 스스로 움직이고, 배우고, 성장하고, 더 깊이 몰입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리더십 관점에서 자율성, 유능감, 관계감을 어떻게 봐야 할까? Deci와 Ryan의 SDT는 “좋은 리더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규명하기 위해 정립한 이론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리더십 연구에도 의미있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리더십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과정이고, 그 과정을 Outside-in이 아니라 Inside-out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점을 SDT를 통해 배울 수 있다. 즉, 외부 환경이 아닌 내재적 동기를 건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1. 자율성 (Autonomy)

흔히 자율성과 방임을 혼동하기 쉽다. 자율성은 그냥 마음대로 하게 두는 것이 아니다. 자율성이란 내 일의 이유를 이해하고, 일정한 선택권과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는 상태다. 따라서 리더가 자율성을 높이려면 구성원에게 목표만 던지고 손을 떼는 것이 아니라, 먼저 왜 이 일이 중요한지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기준과 원칙은 명확히 하되, 그 안에서 어떻게 해낼지는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여지를 주어야 한다. 지나치게 세세한 방식까지 통제받으면, 구성원은 일을 해도 자기 일처럼 느끼지 못한다.

2. 유능감 (Competence)

사람은 자신의 능력으로 의미 있는 기여를 하면서 성장하고 있다고 느낄 때 더 깊이 몰입한다. 그런데 많은 조직에서 유능감이 훼손되는 경우가 많다. 결과가 나온 뒤 부족한 점만 지적하거나, 지나치게 어려운 과제를 던져놓고 알아서 해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유능감은 막연한 칭찬으로 생기지 않는다. 도전적이지만 감당 가능한(Challenging but Achievable, CbA) 과제, 구체적이고 시의적절한 피드백, 그리고 작더라도 구체적인 진전(Progress)이 눈에 보일 때 유능감이 자라난다. "수고했어요~", "Good Job"과 같은 영혼없는 피드백은 구성원의 유능감 제고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엇이 좋아졌는지, 어떤 역량이 쌓이고 있는지, 다음 단계는 무엇인지 세세하게 피드백해줄 때 구성원의 유능감이 올라간다.

3. 관계감 (Relatedness)

조직은 점점 더 바빠지고, 일은 더 복잡해지고, 사람들은 더 쉽게 지친다. 이런 환경에서 내가 존중받고 있고, 이 팀의 일부이며,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느끼는 경험은 매우 큰 힘이 된다. 관계감은 일년에 한번 하는 팀빌딩 행사로 생기지 않는다.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태도, 실수했을 때 사람을 먼저 몰아붙이지 않는 반응, 성과만이 아니라 상태를 묻는 질문, 어려운 순간에 혼자 두지 않는 관심 같은 일상적 상호작용 속에서 쌓인다.


리더에게 더 어려운 과제는, 이 세 가지 욕구의 균형을 잡는 일이다. 자율성만 강조하면 지원 없는 방임이 되기 쉽고, 유능감만 강조하면 성과 압박으로 흐르기 쉽고, 관계감만 강조하면 온정주의로 기울 수 있다. 세 가지를 함께 고려하여 조직 운영의 묘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아...어렵고 힘들다, 좋은 리더가 되기란. 이러니 리더포비아 현상이 생기지.)

아직도 낡은 행동주의 관점에서 조직을 운영하려는 리더들이 적지 않다. 사람은 실험실의 모르모트나 비둘기가 아니다. 외부적인 자극은 일시적인 행동 변화만을 유발할 뿐이다. 구성원들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은 내부로부터 만들어야 한다. 좋은 리더는 구성원이 내면의 불씨를 발견하고 스스로 키워가도록 돕는 사람이다. 자기결정성이론이 리더십에 주는 가장 중요한 통찰도 여기에 있다. 자율성, 유능감, 관계감이라는 영양분을 지속적으로 공급해 줄 때, 구성원은 스스로 움직이는 성장의 주체로 거듭난다.


종민
전종민
SK에서 리더십과 조직문화를 연구해왔던 전종민입니다
대체로 진부한 세상에서 아주 가끔 놀라워지는 삶을 추구합니다. SK 그룹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리더십과 조직문화 관련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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