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서 경영진 보고가 필요하니 자료 정리해주세요."
업무를 지시하는 리더의 흔한 표현이다. 지시를 받은 팀원은 별다른 질문 없이 자료를 만들어 보고한다. 하지만 보고서를 훑어보는 리더의 미간이 이내 찌푸려진다.
“내가 원한 건 이런 방향이 아니었는데…….”
결국 리더는 속으로 혀를 차며 '요즘 애들은 참 눈치가 없다'고 여긴다. 반면 자리로 돌아온 팀원은 억울함과 답답함에 동료에게 메신저를 보낸다. '방향성 설명도 없고, 정보 공유도 안 해줘 놓고 이제 와서 딴소리야.'
대한민국의 일터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모습이다. 리더는 구성원의 '눈치'를 원하고, 구성원은 리더의 명확한 '지시'를 요구한다. 눈치와 명확한 지시 사이에서 업무에 대한 맥락이 공유되지 않아 발생하는 현상이다. 맥락의 공유가 필요한 시점이다. 맥락을 읽고 공유한다는 것은 조직 내에서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과 효과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소통의 어긋남이 단순히 개인의 업무 능력이나 성향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는 서로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아온 세대의 문화적 DNA가 충돌하며 생기는 필연적인 현상이다. 우리는 왜 이토록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야 하는 눈치'와 '명확한 설명'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었을까? 이 일방통행식 업무지시의 뿌리를 이해하려면, 각각의 세대가 살아온 문화와 환경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뿌리 깊은 '고맥락(High-context) 사회'다. 우리 문화의 근간은 오랜 농경사회에 있다. 함께 씨를 뿌리고, 가꾸고, 수확하며 삶의 모든 순간을 공유하는 공동체였다. '품앗이'와 '두레'를 일상으로 겪어온 이들에게 '이웃사촌'은 문화를 공유하는 운명공동체의 다른 이름이었다. 이 오래된 공동체 속에서 사람들은 '아' 하면 '어' 하고 알아들을 만큼 서로의 맥락을 깊이 공유했다. 구구절절한 자세한 설명이 없어도 눈빛 하나, 한마디 말, 미세한 표정만으로 상대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여기에 한국 역사의 특수성이 더해지며 독특한 '계급 문화'가 안착했다. 강점기, 군부정권, 산업성장시대 등 과거의 문화와 조직에서 수직적 계급은 곧 권력이었고, 그 권력에 일사불란하게 복종하는 것이 조직에서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나이와 성별, 직급에 따라 암묵적인 지시와 복종이 존재했고, 조직에서의 생존 방법이었다. 군사정권 하에서 학창 시절과 초기 사회생활을 경험한 베이비부머와 X세대에게 이러한 수직적 조직문화는 더욱 강하게 남아있는 생존 문법이다.
이러한 고맥락과 수직적 계급 문화 속에서는 '눈치' 또한 강력한 생존 기술이 되었다. 윗사람의 마음을 빠르게 읽고 원하는 것을 찾아 행동하는 것이 중요했다. "눈치껏 행동하라"는 말은 윗사람이 불편함을 느끼기 전에 아랫사람이 먼저 생각하고 움직이라는 뜻이었고, 그것은 조직 안에서 자발적 복종을 강요하는 보이지 않는 압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는 저맥락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우리는 농경사회에 살지도, 수직적 군부 사회에 살지도 않는다. 과거의 계급 사회와도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다.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새로운 세대는 앞선 세대가 경험했던 생존의 문법과는 전혀 다른 시대를 통과해 왔다. 경제발전과 산업의 다양화 그리고 디지털 유목세대의 등장은 다양한 삶의 방식을 만들어왔다. 이들은 고도로 도시화된 환경에서 자랐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개인화된 일상을 살아간다. 느슨한 연대가 주는 사회적 이점도 한몫하고 있다. 결국 공동체 방식으로부터 온 고맥락 사회와는 다른 저맥락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 역시 무너진 지 오래다. 회사가 나의 삶을 끝까지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목격한 세대에게, 직장은 나의 가치를 증명하고 선택하는 곳이다. 다니던 회사가 마음에 안 들고 상사가 불편하면, 내 의지에 따라 언제든 직장을 선택하고 옮기는 시대가 되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제적 자유를 찾아 30대에 조기 은퇴를 선언하는 '파이어(FIRE)족'도 등장했다. 이러한 모습들은 새로운 세대가 기성세대와 다르게 살아가는 시대적 변화의 단면이다. 조직과 상사에 대한 의지와 기대가 낮아진 것도 당연한 현상이다.
지금의 조직은 이처럼 전혀 다른 시공간을 살아온 이들이 한데 모여 있는 거대한 용광로다. 60~70년대에 태어나 집단주의적 전통 가치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과, 80년대 이후에 태어나 민주적 경제 풍요와 디지털 환경 속에서 자란 이들이 한 공간에서 협업한다.
문제는 양쪽 모두 각자에게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통제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기성세대는 여전히 끈끈한 집단문화와 눈치 있는 배려를 요구하고, 새로운 세대는 명확한 개인문화와 개성의 존중을 요구한다. 그 좁혀지지 않는 간극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고민을 미디어는 '꼰대'와 'MZ'라는 자극적인 프레임으로 대변한다. 젊은 세대를 'MZ'라는 단어로 선을 그어 외면하거나, 기성세대를 '꼰대'라는 울타리에 가두어 두고 소통을 포기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과연 이러한 용광로 속에서 수직의 '라떼'와 수평의 'MZ'는 어떻게 맥락을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을까? 이 숙제를 풀기 위해 우리는 리더십, 팔로워십, 셀프리더십, 자기주도성, 관계, 갈등, 다양성, 세대 특성, 커뮤니케이션, 협업 등 온갖 경영학적 진단과 처방을 쏟아낸다. 그러나 가장 본질적인 열쇠는, 다른 환경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존재에 대한 인정과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다.
여기서 말하는 '인정'은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니다. 타인의 삶의 궤적에 대한 존중과 배려다. 각각의 시대에 어떤 가치관과 방식으로 살아왔는지를 ‘공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식에 다가서기 위한 스스로의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성세대는 바뀐 시대에 맞추어 과거의 성공 방정식과 권위를 내려놓는 용기가 필요하고, 디지털 세대는 기성세대의 오랜 습관과 사고방식이 유연해질 수 있도록 이해하고 다가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서로간의 인정과 노력이 수반되어야 ‘맥락의 공유와 소통’이라는 상태로 이어질 수 있다. 각자의 사고와 행동 방식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노력이 함께 일하는 조직문화로 연결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맥락 공유'의 숙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업무를 지시하고 받는 리더와 팀원에게 세 가지 실천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서로 자신만의 기준으로 해석하고 판단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기성세대는 '이 정도는 알아서 해야지'라는 과거의 기준을, 새로운 세대는 '이렇게 하면 되겠지'라는 개인의 기준을 내려놓아야 한다. 서로의 공백을 향해 다가서는 애정이 필요하다.
팀원은 의도와 목표를 확인하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지시가 모호할 때 눈치로 때려 맞추는 대신, "이 자료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요?", "어떤 의사결정에 활용하실 예정인가요?", “언제까지 필요하신가요?”라고 질문하여 맥락의 싱크를 맞춰야 한다.
리더는 질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설명해 주어야 한다. 지시 이면의 배경과 맥락을 투명하게 공유하고 팀원이 마음 편히 질문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전감을 제공해야 한다.
오랜 시간을 함께 일하면 충분한 맥락이 형성되기도 한다. 하지만, 질문과 설명은 멈추지 않아야 한다. 익숙함이 오류의 가능성까지 사라지게 만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전히 끝까지 질문하고 경청하고 설명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서로를 'MZ'와 '꼰대'라는 낡은 울타리에 가둔 채 소통을 포기하고 있지는 않는지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는 살아온 방식이 다른 이들이 모여, 서로의 '인간적 경험(Human Experience)'을 연결하며 새로운 삶과 일의 방식을 제안해야 하는 시기다.
스스로 판단하기를 멈추고 투명하게 질문하고 다정하게 답변하는 노력, 그렇게 맥락을 공유하며 만들어낼 모든 세대의 아름다운 조화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