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서는 멘토링(Pay it forward) 에 대해 썼고, 2편에서는 멘토, 스폰서, 피어그룹 – 내가 경험한 커리어 성장의 세가지 관계에 대해 썼다. 3편에서 조직에서 성장하기 위한 visibility 와 readiness 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직장인들에게 언제 가장 기뻤냐 물어보면 승진했을 때 라고 많이 이야기한다.
다음 단계로 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것은 무슨 의미일까? 어떤 직무에서 성과도 꾸준히 잘 내고 있고, 구성원 본인도 다음 단계에 대한 열망이 있다. 그러면 이 사람은 다음단계로 갈 수 있을까?
내 경험 상, 성과와 역량이 이미 충족되었다는 전제 하에, 조직에서 다음 단계로 가는 데에 두 가지가 더 필요하다. 가시성(visibility)과 준비도(readiness)이다. 내가 정의하는 가시성(visibility)은 기회를 만드는 힘이고, 준비도(readiness)는 기회를 감당하는 힘이다.
조직 내외부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저도 해외에서 일하고 싶어요“ “본사에서 일하고 싶어요“, “무대를 글로벌로 넓히고 싶어요“
그러면 나는 상대에게 되묻는다.
“음, 본사에서 일할수 있으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데요?”
그러면 “시켜주시는거 뭐든지 열심히 잘할수 있어요. 일단 시켜만 주세요”
열정이 느껴지는 대답이다. 다만,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내가 본사/(혹은 해외)에 가서 무엇을 할수 있는가? 내 전문성은 무엇인가
내가 본사/(혹은 해외)에서 무엇을 이루고 싶은가?
내가 다른 사람보다 잘 해결할 수 있는 문제/과제 영역은 무엇인가?
본사는 (내가 진출하고자 하는 해외 시장은) 어떠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가? 내가 가진 경험과 전문성을 해당 조직/해당 시장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먼저 스스로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visibility를 만들 수 있다.
최근 K-Pop 붐이 일어나서 유럽의 젊은 직장인들도 똑같은 질문을 한다.
“한국에 있는 기업에서 일하고 싶어요” “ 삼성에서 일하고 싶어요”
그러면 나는 똑같아 되묻는다. “한국에 가서 무엇을 하고 싶은데요?”
“한국 문화도 좋고 한국 사람도 좋으니까, 뭐든지 자리만 있으면 열심히 할수 있어요”
한국 직장인이 글로벌 커리어 꿈꾸며 던지는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직장인들이 Visibility 를 자기홍보/셀프 프로모션이라고 오해한다.
후배들에게 “XX 님은 조직내 비저빌리티를 좀 올려봐야겠어요.” 라고 이야기했더니,
“아 네, 그럼 제가 베스트 프렉티스를 좀 더 자랑해볼께요.” 라고 대답한다.
후배는 한국(혹은 로컬 국가)에서 어떤 제도를 성공적으로 도입한 사례, 교육 진행 사례, 프로젝트 사례 등을 예쁘게 PPT로 만들어서 이메일로 본사 담당자에게 공유한다. 실제로 뛰어난 사례들도 많다.
그렇지만, 본사 담당자한테 백번 이메일을 보내면, 이 후배의 비저빌리티가 생길까?
내 생각에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의 일에, 특히 남의 훌륭한 성과에 관심이 없다. 천지개벽할 혁신이 아니고는, 그리고 그 혁신이 나에게 피부에 와닿는 영향이 있기 전까지는 그냥 “음 그래요. 잘했군요. ” 정도의 반응이다.
본사 담당자도 결국엔 직장인이고, 자기 일하느라 바쁘다. 로컬 컨트리 담당자가 무엇을 했는지 크게 관심이 없거나, 관심이 있더라도 당장 처리해야 할 과제에 치여 여유가 없을 수 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 본인이 국내 기업 본사 담당자인데, 어느날 베트남 지사 현지 담당자가 “저희 베스트프랙티스입니다. 제가 이걸 이렇게 잘했습니다” 라며 이메일을 보내면 어떨까. 흥미롭게 읽을 수는 있다. 실제로 배울점이 많은 사례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 메일만으로 담당자의 전문성을 오래 기억하거나, 바로 함께 일할 기회로 연결시키기는 쉽지 않다.
영업이랑 비슷하다. 고객에게 연락해서 “우리는 이런 기술이 있구요,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해요” 라고 아무리 자랑해도 고객이 바로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다. 고객의 고민이 뭔지, 니즈가 뭔지 파악해서 그 니즈를 내가 어떻게 충족시켜줄 수 있는지 연결해서 알려야 한다. 사람들은 영업이 회사 대 회사로 밖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기본적인 인간관계, 특히 조직 내 인간관계는 영업의 생리로 꽤나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로컬 담당자는 어떻게 해야할까? 본사 담당자가 현재 처한 상황, 그 사람의 관심사, 성향 등을 먼저 살펴야 한다. 만약, 본사 담당자가 새로운 IT Tool 을 도입해보고 싶어 하는 상황이라면, “한국에서 우리가 이런거 잘 쓰고 있어요“ 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당신이 원하는 그 툴을 한국에서 먼저 파일럿 테스트를 해볼 수 있게 도와줄까요? 경영진을 설득할 수 있도록 로컬 니즈를 공유해드릴까요? ” 제안하는 것이 낫다. 상대방이 해결하고 싶은 문제에 본인의 강점(혹은 비교우위가 있는 역량)을 접목해서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만약 상대방의 관심영역을 모르면, 그게 무엇인지 알아나가는것부터 시작할수 있다. 링크인 커피챗처럼. 나를 포장해서 알리려고 하기 전에, 먼저 상대에게 관심을 가지는게 우선이다.
그래서 나는 글로벌 역할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바꾸라고 이야기한다.
“어떻게 하면 글로벌 기업 본사에 갈수 있을까” 가 아니라 “ 본사에서 내가 무엇을 할수 있을까” 로 내 전문성을 먼저 정의하고, 나의 전문성이 글로벌 조직의 어떤 문제와 연결되는지 생각해야한다.
“저도 글로벌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어요” 도 괜찮지만, “저도 글로벌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어요. 요런 요런 부분에서 제가 기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로 한 걸음만 추가해도 메시지를 강화시킬 수 있다.
Visibility를 만들기 위해 처음부터 중요한 역할을 맡을 필요는 없다. 작은 프로젝트도 좋고, 본사 담당자가 공지한 내용에 대한 간단한 피드백도 좋다. (당신의 계획에서 이런 이런 부분은 너무 좋은데, 요런 요런건 혹시 생각해보는게 어떻냐 등). 사람들이 나와 대화해 본, 일해 본 경험을 조금씩 쌓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글로벌은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사업부 이동이든, 새로운 직무 도전이든, 더 큰 역할을 맡는 것이든 원리는 같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가 뿐만 아니라, '그 곳에서 내가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를 설명할 수 있는지다.
비저빌리티는 한명을 타겟으로 하지 않는다. 조직에서의 비저빌리티는 상사 한 명에게 나를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다른 국가의 리더들, 비즈니스 사업부 리더들, 프로젝트 매니저 등 나와 협업하는 사람의 범위를 넓히고, 이 사람들이 문제 해결과정에서 내 전문성을 경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없는 자리에서도 나에 대한 추천이 나올 수 있다.
“그런 문제는 그 사람이 잘하죠. 지난번에 ** 건으로 같이 일해봤는데 복잡한 사안을 명쾌하게 정리하는 능력이 좋더라구요” “이렇게 기획력이 필요한 프로젝트는 그 사람이 들어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처럼, 다른 사람들이 내가 가진 역량을 설명할 수 있게 되는것이 진짜 비저빌리티이다. 본인에게 없는 역량을 포장하거나 부풀리거나 특정인에게 줄을 잘 서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을 명확히 하고 내 강점을 조직의 해결문제와 전략적으로 연결 해보려고 노력하면, 그게 비저빌리티의 초석이 된다.
리더가 되면 본인의 비저빌리티 뿐만 아니라 다른 구성원들의 비저빌리티도 챙겨야한다.
내가 리더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것은 나와 협업하는 타 부서 구성원들의 비저빌리티를 높여주는 스피커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로젝트 성과에 대해서, 결과물에 대해 중요한 자리에서 보고를 할때, 초반 도입 인사( set the stage) 는 리더가 하더라도, 본 발표는 실무자들에게 돌린다. 그 실무자들의 전문성, 고민, 문제해결 방식을 다른 조직장/리더들이 직접 볼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후에 조직 안에서 성장 욕구가 있는, 열정있는 다른 젊은 인재들이 “저 사람이랑 같이 일하면 내 일이 보이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덤으로 뛰어난 사람들이 주변에 모이게 된다.
조직에서 종종 안타까운 사례를 본다. 어렵게 좋은 기회가 왔는데, 준비되지 않아서 맡지 못하거나, 반대로 준비는 충분한데 조직에서 아무도 그사람을 몰라서 기회가 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어떻게 하면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비저빌리티가 높아지면 본인에게 기회가 올 확율이 높아진다. 그러나, 비저빌리티가 높아진다고해서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준비도(readiness)가 같이 올라가진 않는다. 준비도(readiness) 별도로 쌓아가야한다.
준비도(readiness) 는 그 사람이 다음 자리에 앉아서 성공할 가능성에 대한 답이다. 많은 사람들이 준비도(readiness) 를 역량을 향상시키고, 교육이수하고, 자격증을 따고, 승진 연차를 채우는 걸로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준비도(readiness)는 다양한 상황을 경험하면서 형성되는 판단력에 가깝다.
첫직장에 입사했을때, 상사와 함께 3년, 5년, 10년뒤 커리어 목표를 글로 적었다. 내가 취업하던 시기에는 Fast Track Program 이 유행했고, 당시 내 목표는 최대한 빨리 승진하는 것이었다. 3년만에 과장이 되었고, 야간 대학원도 다니고 있었고, L&D/Organization Development Leader라는 타이틀에 우쭐했다. 자존감과 자신감이 과했던 시기였다. 그때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콩나물이 되지 말고, 아름드리나무가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
이후 나는 직급과 연봉을 낮춰 대기업으로 이직했다. 표면상으로는 경력 퇴보처럼 보였고, 말로만 듣던 외국계 기업과 대기업의 문화차이를 겪으며 초반에는 후회도 많이 했다.
대기업 입사 초반에 사수가 나에게 “외국계 깍쟁이 HR처럼 굴지 마라” 라고 했다. 당시에는 기분이 아주 나빴다. 최신 HR 트렌드를 열심히 공부하는 인사 꿈나무에게 어쩌면 저렇게 파괴적인 피드백을 할까 싶었다. 이후에 전국에서 모인 아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기는 게 지는 것” 의 의미를 알게 되고, 최선의 선택에 대한 고민을 반복하며 내 소통 방식도 변했고, 몇 년이 지나서는 “그 때 내가 그 선배들/동료들을 그렇게 까지 들이 받을 필요가 있었을까”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수도 있었겠구나” 같은 다른 선택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국내 대기업에서는 서로 다른 사업군에 어떻게 인사제도가 일관성있게 적용될 수 있는지, 회사가 어떻게 돈을 벌고, 투자하고, 관리하고, 운영하는지 접하게 되었다. 조직이 큰 만큼 국내 외 사건 사고도 많았는데, 어떻게 예방하는지, 이미 발생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깊이 있게 배울 수 있었다. 그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산업, 다른 국가, 다른 기능을 이해하는 나만의 틀을 가질 수 있었다.
여기서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경험 자체보다, 경험에 대해 성찰, 반추의 중요성이다. 경험을 많이 한다고 준비도가 높아지지 않는다. 같은 일을 10년 한 사람이라고 더 나은 판단을 하는 것도 아니고, 짧은 기간에 여러 상황을 겪고, 그 경험을 깊게 돌아본 사람이 훨씬 깊은 통찰을 갖기도 한다. 흔한 면접 질문인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갈등상황에서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지금 그 상황이라면 어떻게 다르게 할 것인지”는 성찰의 깊이를 보기 위한 질문이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과정이 인간성의 깊이와 전문성의 깊이를 동시에 성숙시킨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Readiness 를 높이려면 서두르지 말아야한다. 빠르게 위로 올라가려고 하기보다, 최대한 다양하게 경험해보고, 실패해보고, 실패를 반추하며 판단력을 키워야한다. 지금은 커리어가 나선형으로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대관령 고개 운전해 가듯이 빙글빙글 달려가다보면, 올라가기도 하고, 옆으로 이동하기도 하고, 때로는 내려가는 것 처럼 느껴지는데, 결국에는 다 이어진다. 새로운 상황에서 배우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해보고 응용하는 경험이 모여서 경험의 밀도가 높아진다. 인내심도 겪어가며 배워야 한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도 경험해 봐야 하고. 조직의 상대평가가 불공평하다고 느껴지는 상황을 직접 당사자로 경험해보면 나중에 직원들이 회사에 느끼는 분노/ 혹은 HR 에게 느끼는 거리감을 이해할 수 있다. 경험들이 따로 놀지 않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통찰이 되려면, 성찰이 필수적이다. 아무리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을 했어도,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보면 항상 다른 선택지가 보인다. 당시에는 실패라고 생각했던 일이 가장 큰 수확이 되기도 하고, 옳다고 믿었던 판단이 사실 미숙한 대응이었음을 깨닫기도 한다. 아직 보이지 않는다면, 아직 더 배울 것이 남아있는 것일 수 있다.
요약하면, 성과와 역량이 있다는 전제 하에, 조직에서 다음 단계의 역할/기회를 잡으려면 Visibility 와 Readiness 가 필요하다. Visibility 는 기회를 만드는 힘이고, Readiness는 경험과 성찰이 쌓여 만들어진 판단력이다. 그리고 그 판단력은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버티고 헤쳐나가게 하는튼튼한 뿌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