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가 소환한 키워드, '인지감수성'에 주목하다
“전엔 잘 쓰이지 않다가 21세기 들어 일상에서 중요하게 자리 잡은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인지감수성’이에요. 인지감수성이란,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감정을 민감하게 인식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말하죠. (중략) 그렇게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할수록 자연스럽게 타인을 배려하고 현명하게 판단하는 사람이 될 가능성도 높아지겠죠.” (1/21. 뉴스레터 Uppity 발췌)
매일 챙겨보는 구독뉴스에서 이 문장을 발견하는 순간, 머리에 전구 하나가 켜졌다. 조직문화에 관한 거대담론은 차치하더라도, ‘인지감수성’이란 용어가 어쩌면 조직문화의 꼬인 매듭을 푸는 단초가 되지 않을까 하고. 다양한 양태를 보이는 ‘인지감수성’은 시대가 소환한 산물이다. 단절과 고립의 시대에서 개인과 개인이 만나 서로의 맥락을 이해하는 노력과 동기부여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 요즘이다. 타인의 감정을 읽고, 교감하고, 공명하는 시공간의 기회가 턱없이 부족해짐에 따라, 어쩌면 부차적으로 우리 사회가 끌어안아야 하는 숙제인지도 모른다.
꼰대'와 '리더'를 가르는 한 끗, 인지감수성의 유무
조직사회에서 ‘인지감수성’은 대개 일방으로 흐르기 쉽다. 조직 특유의 문화 즉, 폐쇄적인지, 개방적인지, 수평적인지, 수직적인지 그 형태에 따라 확연히 갈린다. 하지만 문화의 총론보다 각론으로 갈 공산이 크다. 이른바 개개인 고유의 성격과 가치관 그리고 스타일에 의해 변주되고 발현된다. 예컨대, 꼰대 상사를 만나면 ‘인지감수성’은 바닥을 향하고, 합리성을 갖춘 리더를 만나면 한결 부드럽게 공감의 관계로 이어진다. 그만큼 ‘인지감수성’은 사고의 맥락을 이해하고 불필요한 오해로 인한 로스를 줄여준다.
“조직문화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같은 방향과 리듬으로 만나는 '공명'의 상태를 지향해야 합니다.” 1월 16일 한국광고공사에서 열린 “2026 조직문화 포럼”에서, 백서현 한국HRD협회 조직문화혁신센터장은 2026년 10가지 트렌드를 제시하며, ‘공명‘이란 단어로 압축해 설명했다. ‘공명’이란 키워드의 이면을 샅샅이 쫓다 보면, ‘인지감수성’과 합치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건강한 조직문화란 결국 연결을 최적화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집과 뚝심 사이, 관점의 전환이 가져오는 마법
그렇다면, ‘인지감수성 = 공명’이라는 등식을 성립시키기 위해 어떤 자정 노력이 필요할까. 우선 ‘인지감수성’이 높은 조직일수록 서로의 ‘다름’을 틀림이 아닌 ‘이해와 공명’으로 인식한다. 결과에 치중하지 않고, 과정과 맥락을 공유하고 습관화한다. 레슨 런(Lesson Learn)을 바탕으로, 실패를 디딤돌로 삼아 향후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머리를 맞댄다. 이는 리더십과도 연관이 있다. 리더가 바라보는 실패의 정의가, 조직 구성원의 ‘인지감수성’을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관점의 리프레이밍이다. 고집이 아집인지 뚝심인지 판가름하기 쉽지 않다. 대개는 그 사람의 능력과 과거 성과로 판단하기 마련이다. ‘인지감수성’은 이러한 판단의 허들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상대방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의도적 리프레이밍은 아집과 뚝심의 영역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뚝심이라면 응원의 용기를, 아집이라면 냉철한 피드백이 필요하지 않을까.
마지막은 인지적 오류, 즉 확증편향 등 사람이라면 응당 빠지기 쉬운 오류를 학습해야 한다. ‘인지감수성’이 약한 사람은 보통 인지적 오류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 티카타카가 되지 않고, 공명하지 않는 데는 ‘확신’이라고 믿는 판단부터 전체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정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지적 오류 사례는 차고 넘친다. 확증을 뒤집어보고, 스스로 편향을 점검할 때, 객관적인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 문화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인지감수성’은 비단 조직 뿐만 아니라 개인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행복한 삶을 위한 키워드다.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객관화의 힘, 타인과 조응하고 공명할 수 있는 조화의 삶, 그리고 나아가 사회와 조직에 의해 해체되지 않는 자기자신을 지키는 보루로서 역할을 할 것이다. 나의 ‘인지감수성’은 몇 점인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