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를 가장 간단하게 설명하는 방법은 조직도를 펼쳐 보이는 것이다.
대표를 중심으로 본부가 있고, 본부 아래 팀이 있으며, 각 부서는 기능별로 역할을 나눈다. 누가 누구에게 보고하고, 누가 무엇을 책임지는지가 분명하다. 오랫동안 조직도는 곧 조직의 운영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제 조직도와 실제 일하는 방식 사이에 조금씩 틈이 생기고 있다.
AI가 들어오면서 일은 더 이상 부서와 직급을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필요한 정보를 찾고, 초안을 만들고, 분석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까지 AI가 함께 맡기 시작하면서 업무는 사람 사이가 아니라 사람과 AI를 오가며 흐른다.
조직도는 그대로인데, 일은 이미 다른 길을 선택하고 있는 셈이다.
한 컨설팅 분석은 전통적인 조직이 안정적인 프로세스와 명확한 인수인계, 예측 가능한 결과를 전제로 설계됐다고 설명한다. 반면 자율형 AI는 스스로 판단하고 여러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기 때문에 기존의 위계 구조와 자연스럽게 충돌한다.
실제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2022년 이후 중간관리자 채용은 크게 줄었고, 앞으로 많은 관리자는 사람뿐 아니라 AI 에이전트와 함께 일하는 팀을 운영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관리의 대상이 사람에서 사람과 AI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조직의 변화는 크게 두 방향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위계를 줄이는 평탄화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과 AI가 하나의 팀으로 움직이는 새로운 협업 방식이다.
AI는 설계와 분석, 테스트, 문서 작성 같은 업무를 수행하고, 사람은 무엇을 해결할지 정의하고 판단하는 역할에 집중한다. 팀의 경쟁력은 사람이 몇 명인가보다 사람과 AI가 어떻게 함께 일하는가에서 결정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이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토스플레이스는 스스로를 'AI 네이티브 조직'이라고 정의한다. AI를 단순한 업무 지원 도구가 아니라 조직 운영의 기본 인프라로 삼고, 매주 'AI 서프 데이'를 통해 구성원이 발견한 AI 활용 사례를 조직 전체의 자산으로 공유한다.
특정 전문가의 노하우가 아니라 조직 전체가 함께 학습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한국은행 역시 애자일 조직을 도입하며 의사결정 단계를 줄이고 협업 중심의 조직으로 전환을 시도했다. 앞서 살펴본 LG유플러스도 대팀제를 통해 부서 간 경계를 줄였다.
해외에서는 액센츄어가 전략, 컨설팅, 기술 조직을 하나의 사업단위로 통합하며 기능 중심 조직에서 고객 중심 조직으로 전환하고 있다.
기업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은 하나다.
조직도를 먼저 바꾼 것이 아니라 일이 흐르는 방식을 먼저 바꾸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리멤버 더 타이탄스〉다.
인종 갈등이 극심하던 시절, 흑인과 백인 학생들이 하나의 미식축구팀으로 묶인다. 같은 유니폼을 입고 같은 라커룸을 사용하지만 처음에는 서로를 믿지 못한다. 감독은 훈련보다 먼저 서로를 이해하도록 만들고, 선수들은 함께 달리고 부딪치며 조금씩 한 팀이 되어 간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하다.
같은 조직에 속했다고 곧바로 같은 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AI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조직도의 같은 칸에 있다고 협업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AI를 포함해 누가 하나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가가 새로운 팀의 기준이 된다.
People팀이 지금 고민해야 하는 것도 조직도를 다시 그리는 일이 아니다.
누가 누구와 함께 일해야 가장 빠르고, 가장 좋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지를 다시 정의하는 일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성과가 높은 팀의 대부분은 다양한 역량을 가진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많은 기업은 여전히 AI 시대에 맞게 직무와 팀의 역할을 다시 설계하지 못하고 있다.
조직 개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업무의 흐름과 의사결정의 단위를 다시 그리는 일이다.
조직의 기본 단위는 더 이상 부서만이 아니다.
사람과 AI가 함께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팀이 새로운 조직의 기본 단위가 되고 있다.
Patrick's Insight
최근 여러 기업의 HR 담당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조직개편에 대한 고민을 자주 듣는다. 대부분은 조직도를 어떻게 바꿀지부터 이야기한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조직도보다 일이 먼저 움직인다. 업무의 흐름과 의사결정의 단위는 그대로인데 조직도만 바꾸면, 사람들은 결국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을 중심으로 다시 모인다. 공식 조직은 바뀌었지만 비공식 조직이 실제 조직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직도는 단순히 상자를 옮기는 작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업무가 어떻게 흐르고, 누가 함께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지를 먼저 정의한 뒤 그것을 조직도로 표현해야 한다.
People팀이 설계해야 하는 것은 조직도가 아니라 일이 가장 자연스럽게 흐르는 구조다.
이번 주 회의에서는 이런 질문 하나를 던져보면 어떨까.
"우리 조직도는 실제 업무의 흐름과 의사결정의 단위를 담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보고 체계만 그리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