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글에서 나는 스무 명 남짓한 스타트업 대표의 이야기를 했다. 밤 10시에 일이 끝나는데 경영지원까지 챙기면 새벽에나 집에 갈 것 같다던 사람. 그래서 경영지원 부서장을 뽑았지만, 몇 달이 지나도 그의 밤은 여전히 길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곱씹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무엇을 사려고 했던 걸까.
원한 것은 시간, 산 것은 직급
그가 원한 건 자기 시간이었다. 밤 10시 이후에 붙어 있는, 경영지원이라는 이름의 두어 시간. 그 시간을 돌려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채용 공고를 쓰는 순간, 그 바람은 '경영지원 관리자, 부서장'이라는 직함으로 바뀐다. 시간을 사고 싶었는데, 살 수 있는 형태가 직함밖에 없었던 셈이다. 직함을 채우면 일도 채워질 거라 믿기 때문이다.
사람을 뽑는다고 시간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시간은 일을 넘겨야 돌아온다. 그리고 넘긴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대표는 뽑기 전에 정해 두어야 한다.
경영지원의 일 하나가 굴러가는 과정을 나누어 보면 대략 이렇다.
무엇을 어떻게 할지 정하는 기획. 급여 체계를 어떻게 세울지, 사무실을 어디로 옮길지, 계약서 양식을 어떻게 만들지 같은 것들이다.
정한 대로 해내는 실행. 실제로 계산하고, 알아보고, 서류를 만들고, 처리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결과를 보고 다음을 정하는 확인. 제대로 됐는지 보고, 무엇을 고칠지 판단하고, 다음으로 넘어갈지 결정하는 일이다.
사람을 뽑는다는 건 이 가운데 앞의 둘, 기획과 실행을 넘긴다는 뜻이다.
놓아야 할 것
많은 대표가 여기서 절반만 넘긴다. 실행은 넘기는데 기획은 계속 자기가 쥔다.
급여 체계를 어떻게 잡을지 대표가 정해서 내려보내고, 담당자는 그대로 계산만 한다. 사무실 이전도 대표가 조건을 다 정해서 알아보게만 시킨다. 이렇게 되면 담당자는 실행자로만 남고, 대표의 머릿속에는 경영지원의 모든 결정이 그대로 쌓여 있다.
일이 넘어간 게 아니라, 그 일에 사람이 하나 더 붙은 것이다. 그러니 인건비는 늘었는데 대표의 밤은 그대로다.
기획을 넘긴다는 건 답을 넘긴다는 뜻이 아니다. 문제를 넘긴다는 뜻이다. "급여일을 25일로 바꿔"가 아니라 "우리 급여 체계에서 지금 뭐가 제일 문제인 것 같아요?"라고 묻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가져온 안을 검토하는 것. 이게 넘기는 것이다.
끝까지 쥐어야 할 것
그렇다고 대표가 손을 떼라는 말은 아니다. 대표가 확인하고 보고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누군가를 믿고 완전히 맡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고, 특히 소규모 기업에서는 확인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사람이 적을수록 한 번의 실수가 회사 전체로 번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확인은 놓아서도 안 되고, 놓칠 수도 없다. 기업의 주인은 대표이고, 결과에 대한 책임도 결국 대표가 진다.
대표에게 남는 건 세 가지다. 담당자가 가져온 기획을 확인하는 일, 실행된 결과를 확인하는 일, 그리고 개선할지 다음으로 넘어갈지 피드백하는 일.
이 셋만 남기면 대표는 경영지원에서 상당한 시간을 되찾는다. 그리고 그 시간을 대표가 아니면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일, 제품과 고객과 시장에 쓸 수 있다.
정리하면 이렇다.
경영지원에서 대표가 놓아야 할 것은 기획과 실행이다. 끝까지 쥐어야 할 것은 확인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 둘이 자주 뒤바뀐다. 기획은 대표가 쥐고, 확인은 "알아서 하겠지" 하며 흘려보낸다. 그러면 대표는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동시에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을 놓치게 된다. 가장 나쁜 조합이다.
직급을 사면 조직도의 칸이 채워진다. 시간을 사려면 넘길 것과 쥘 것을 먼저 갈라야 한다. 그 선이 그어지지 않은 채로는, 사람이 몇 명이 되어도 대표의 밤은 짧아지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대표의 입장에서 썼다. 그런데 뽑히는 쪽, 특히 시니어의 입장에서 보면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니어는 대개 과거의 커리어로 채용의 문턱을 넘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경력만으로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시니어라는 자리는 도착점이 아니라 갈림길에 가깝다.
사실 이건 요즘 내가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