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현장을 제대로 지원하라"는 사장님의 특별 지시로 현장 근무 체험을 다녀왔습니다. 현장 직원들의 업무 강도와 환경을 직접 경험해봐야, 제대로 된 인사 제도와 문화, 정책으로 그들을 지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조에 직접 기여하는 현장 직원들이 안정되지 않으면 숙련도가 낮아져, 품질과 불량 이슈는 끊이지 않고 결국 고객 신뢰가 떨어집니다. 제조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제조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입니다.
다만 단 하루의 체험이었기에, 교대근무의 힘든 변화 리듬을 제대로 겪어보지는 못했습니다. 계속 서서, 어쩌면 조금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이어가는 그 일은 솔직히 고백하자면 새로운 것을 끝없이 혁신하지 않으면 존재감을 잃는 사무실의 압박보다 어떤 면에서는 편안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아마 제가 요즘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서 더욱 그렇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곧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덜 힘든 일'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힘듦'이었다는 것을요. 육체적으로 힘든가, 정신적으로 힘든가의 차이일 뿐, 누가 더 힘들고 누가 더 편하다고 함부로 재는 일은, 특히나 단 하루의 체험만으로 평가하는 일은 과소평가나 과대평가가 될 수 있기에, 선입견과 판단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관찰해도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저는 오늘 이야기의 진짜 출발점이 된 하나를 배웠습니다. 바로 현장 밖에서 "이럴 거야, 저럴 거야" 추측하고 판단하는 것과, 현장 안으로 들어가 가까이에서 함께 보고 듣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현장에서 직접 일해보기 전까지 저는 그 일을 '알고 있다'고 여겼지만, 막상 그들 곁에 서서 듣고 보고 체험해보니 제가 알던 것은 바깥에서 그려본 짐작에 불과했습니다.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언제나, 멀리서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서 함께 경험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요.
이 깨달음이 오늘 이야기의 출발점입니다. 힘듦의 모양과 강도가 저마다 다르듯, 사람이 시들어가는 모습도 저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다름은, 멀리서는 결코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일터에서 활력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울은 분명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그 극단에 치우쳐 있습니다. "저 사람은 우울하지 않으니 괜찮겠지" 하고요. 하지만 우울과 활력 사이에는 넓은 중간지대가 있다고 합니다. 아프지도 않은데 활기도 없는 상태, 긍정심리학자 코리 키스(Corey Keyes)가 '랭귀싱(languishing, 시들함)'이라 이름 붙인 자리입니다.
조직심리학자 애덤 그랜트는 이를 "정신건강의 방치된 중간 자식"이라 불렀습니다. 방치된 중간자식이라는 말이 마음에 확 와닿았습니다. 저는 딸 셋인 집에 중간 자식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심하게 방치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관심은 첫째와 셋째에 비해서 둘째에게는 덜 온 것은 맞습니다. 부모님이 일부러 방치하지는 않아도 상황과 환경은 부모님의 관심을 첫째와 셋째에게 갈 수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둘째들이 생활력이 강하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첫째와 막내를 향한 부모님의 조금은 치우친 관심으로 인해 조금은 더 독립적으로 자라기 때문에요.
신기하게도 어느정도 일을 잘 하는 사람들에게 리더의 관심은 식게 됩니다. 사고를 치는 구성원이나 옆에 붙어서 다그쳐야 일을 하는 구성원들이 꼭 있기 때문에 혼자서 어느정도 해내는 구성원들은 리더에게 방치될 수 있습니다. 리더에게 이렇게 방치된 랭귀싱에 빠진 사람은 출근을 하고, 회의에 들어오고, 맡은 일을 어느 정도 해냅니다. 그래서 아무도 모릅니다. 본인조차 "요즘 좀 무력한가 보다" 하고 넘깁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는 삶의 목적감이 흐려지고, 몰입이 마모되고, 작은 즐거움에 반응하는 능력이 서서히 꺼져갑니다. 마음의 불꽃이 사그라들고, 여차하면 꺼질 불씨만 남은 상태로 버티게 됩니다.
바로 여기에 리더의 고민이 있습니다. 극단의 번아웃이나 우울은 결근·이직·생산성 지표에 어떤 식으로든 신호가 잡힙니다. 그러나 시들함은 데이터에서 걸리지 않습니다. 사람은 계속 출근하고 일은 해내는데, 창의성과 주도성, 몰입만이 조용히 마모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을 '조용한 소진'이라 부릅니다.
문제는 이 조용한 소진이 방치되면, 그다음으로 찾아오는 것이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이라는 점입니다. 사표를 내지는 않지만, 마음은 이미 떠난 상태. 딱 시키는 만큼만, 딱 문제 되지 않을 만큼만 하는 상태입니다. 조용한 사직이 위험한 이유는 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터져야 보이는데, 시들함은 터지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서서히 스며듭니다. 부서와 조직의 문화가 될 수 있습니다.
데이터로 찾아낼 수 없다면, 리더는 무엇으로 이들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결국 관찰과 대화입니다. 거창한 진단이 아니라, 평소와 달라진 작은 신호를 알아차리는 눈(seeing & hearing)입니다.
말수의 변화 : 회의에서 먼저 의견을 내던 사람이 조용해졌을 때
반응의 온도 : 좋은 소식에도 심드렁하고, 농담에 예전처럼 활짝 웃지 않을 때
주도성의 감소 : "제가 해보겠습니다" 먼저 말하던 사람이 가만히 "시키면 하겠습니다"로 바뀌었을 때
몰입의 흐려짐 : 실수가 아니라 '무심함'에서 비롯된 빈틈이 늘어날 때
이 신호들은 오직 사람에게 관심을 둔 리더의 눈에만 보입니다. 현장 체험에서 제가 배운 것도 이것이었습니다. 눈과 귀를 활짝 열고 그 자리에 직접 서보지 않으면 그 힘듦을 결코 알 수 없다는 것.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곁에 서서 들여다보지 않으면, 시들어가는 마음은 결코 데이터로 잡히지 않습니다.
신호를 알아차렸다 해도, "너 요즘 이상하게 왜 그래?"라는 질문은 오히려 마음을 닫게 만듭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코치다움입니다. 코치는 답을 주거나 이끄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의 가치를 믿고 스스로 답을 찾도록 곁에서 돕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리더가 건넬 수 있는 실천을 세 가지로 정리해 봅니다.
첫째, 질문으로 감정에 이름을 붙일 공간을 열어줍니다.
"너는 왜 그런거야?"라는 이해할 수 없다는 리더의 태도는 사람을 더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지레짐작의 판단과 추측을 내려놓고 리더가 "요즘 보니 마음이 좀 무거워 보이는데, 어떤가요?"라고 물어주는 것만으로, 구성원은 자기 상태를 안전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둘째, 마음을 세 갈래로 물어봐 줍니다. 그냥 지나가며 건네는 "힘들죠?" 라는 질문은 네/아니오의 닫힌 답변만을 이끌어냅니다. 그래서 마음을 세 개의 질문으로 구체적으로 탐색해보면 좋습니다.
지금 어떤 감정이 느껴지나요(감정),
그 감정은 어떤 생각에서 왔나요(생각),
그래서 진짜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요(갈망).
이렇게 나누는 순간, 힘들다는 감정은 하소연이 아니라 '설명'이 되고, 리더는 비로소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도울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셋째, 성과가 아니라 '연결'을 먼저 챙깁니다.
시들함의 가장 강력한 해독제는 복지나 도전적인 일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입니다. 코리 키스가 활력의 기둥으로 꼽은 것도 배움·관계·목적·놀이였습니다. 리더는 이 활력의 기둥을 일상에서 세워줄 수 있습니다. 작은 배움의 기회를 열어주고, 서로의 눈을 마주치는 대화의 시간을 지키고, 각자의 일이 누구에게 어떤 의미로 가닿는지 연결해주는 일. 그것이 시들함을 막는 가장 실천적인 리더십입니다.
리더의 격은 사람을 관리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사람이 온전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설계해주는 데 있습니다. 현장의 그분들이 안전하고 안정된 환경에서 숙련을 쌓아야 품질이 지켜지듯, 마음도 안전한 환경에서만 다시 다잡을 수 있게 됩다.
조용한 사직은 조용해서 위험합니다. 터지지 않기에 늦게 발견되고, 늦게 발견되기에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시들어 있다고 해서 다시 피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화분의 꽃과 나무를 키우다 보면, 잎이 시들고 기운을 잃은 것도 관심을 두고 볕을 쬐어주고 제때 물을 주며 살피면 어느새 다시 고개를 듭니다.
사람의 마음도 다르지 않습니다. 시든 것이 죽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동안 볕과 물이, 그러니까 관심과 연결이 조금 부족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리더로서 오늘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 하나를 권해 봅니다. 성과를 아주 잠시만 내려놓고, 요즘 유난히 조용해진 한 사람을 떠올려 보시길요. 그리고 시간을 내서 물어봐주세요.
"요즘 보니 마음이 좀 무거워 보이는데, 어떤가요?"
이 한마디가, 데이터가 끝내 찾지 못한 중간지대에 머물고 있는 사람을 다시 활력쪽으로 데려올 수 있습니다.
시든 화분에 건네는 물 한 모금처럼요.
활력은 스스로 회복해야 하는 개인의 책임만은 아닙니다.
구성원들 모두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로 조직과 리더의 책임이 큽니다.
본 칼럼은 코리 키스의 책에서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필자의 경험과 관점을 더해 재구성한 글입니다.
코리 키스(Corey Keyes), 『무엇이 나를 살아 있게 만드는가』 - '시들함(languishing)'과 '활력(flourish-ing)'의 개념, 그리고 배움·관계·영성·목적·놀이라는 다섯 기둥에 관한 통찰을 참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