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릴 때 어머니 잔소리를 싫어하던
사춘기 어린아이가 장성하여
과거를 회상하던 가운데 우연히 어머니의 말씀하나가 생각나 글을 끄적여 본 것을 나눕니다😊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쓴소리를 한 사람은 누구였나요?
어릴 때 저희 어머니는 잔소리가 많으셨습니다.
저 잘되라고 하시는 말씀인 줄은 알았지만
그때의 저는 그 말을 귀에 담지 않았습니다.
듣는 척만 하고 흘려보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말도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이 듣는 거라고요..
그때는 서운하기만 했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오늘에서야 그 말이 그냥 하신 말씀이 아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말의 가치는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에게서 결정된다는 뜻이었습니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받아낼 귀가 없으면 그 말은 존재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조직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제가 본 대부분의 조직에는 말이 없었던 적이 없습니다.
문제를 먼저 본 사람도 있었고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다만 그 말을 받아낼 귀가 없었을 뿐입니다.
나중에 위기가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누군가 이미 그 이야기를 했던 회의록이 남아 있습니다.
들을 귀는 태도의 문제라기보다 상태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듣습니다.
불안한 사람은 조언을 지적으로 듣고 방어적인 사람은 우려를 공격으로 듣습니다.
그 순간 내용은 사라지고 감정만 남습니다.
말한 사람은 도우려 했는데 들은 사람은 상처만 기억합니다.
그래서 조직에서 먼저 사라지는 것은 좋은 조언이 아니라 조언하는 사람입니다.
두어번 말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으면 사람들은 말을 아끼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아주 조용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손실로 잡히지도 않습니다.
회의는 여전히 열리고 보고는 여전히 올라옵니다.
다만 진짜 이야기가 빠져 있을 뿐입니다.
HR의 자리에서 이 문제를 자주 마주합니다.
피드백 제도를 아무리 정교하게 설계해도 듣는 귀가 준비되지 않은 조직에서는 서식만 남습니다.
평가 제도의 성패는 문항의 완성도가 아니라 그 피드백을 받는 사람의 상태에서 갈립니다.
제도는 말을 흐르게 할 수는 있지만 그 말이 어디에 닿을지까지 정해주지는 못합니다.
그렇다면 들을 귀는 어떻게 생길까요?
저는 아직 좋은 답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제 경우에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어머니 말씀이 옳았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그 말을 들은 지 한참 뒤였습니다.
아쉬운 일을 겪고 스스로 부딪혀보고 나서야 그때 그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들을 귀는 가르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겪어야 열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지금 나에게 아무도 불편한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가 잘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있습니다.
이미 사람들이 나에게 말하기를 포기했다는 신호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조용한 조직은 건강한 조직이 아니라 지친 조직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제가 자주 그랬듯 질문으로 이 글을 마칩니다.
(질문은 제게도 하는 질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쓴소리를 한 사람은 누구였나요?
그리고 그 사람은 지금도 여전히 여러분에게 말을 걸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