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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삼성전자 디자이너로 일하고, 11년간 세종실록을 연구해 《세종 이도 다이어리》를 쓴 저자의 강연을 정리했다. 핵심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세종이 만든 결과물(훈민정음, 측우기, 장영실)을 보고 위대하다고 말한다. 그 결과를 만들어낸 사람은 왜, 어떻게 생각하고 사람들과 대화했는가? 그리고 무엇을 만들었는가?" 저자는 이 질문에 디자이너의 관점, 즉 '어떻게 사람의 삶을 아름답게 하는가'로 접근한다. 강연은 크게 네 가지 주제로 이어진다.

세종의 취임사는 두 문장으로 요약된다. "태조·태종의 법을 따르겠다"와 "어짊을 베풀겠다"는 것. 첫 문장은 안정과 안전을 주는 정책적 연속성을 갖추는 것이고, 두 번째 문장은 전략적 국가경영 비전이다. 당시 중국의 정치 방식은 맹자가 말한 '발정시인' 황제가 먼저 제도를 만들고 백성이 따르게 하는 것. 하지만 세종은 이를 뒤집어 '시인발정' 먼저 백성에게 묻고 그 뜻을 헤아려 제도를 만드는 방식을 택했다. 저자는 이를 점진적 개선(체인지 Change)이 아니라 틀 자체를 바꾸는 급진적 전환(트랜스폼 Transform)이라 부른다. 조선은 땅이 작고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나라 였기에, 제도를 실시간으로 반영할 수 있었다. 중국과는 다른 조건에서 나온 발상이었다.
훈민정음, 측우기, 자격루, 향약집성방, 농사직설 등 세종 재위 33년간 만들어진 것이 21개. 같은 시기 전 세계에서 노벨상이나 기네스북급 성과로 꼽을 만한 것이 19개 정도였다는 점과 비교하면 압도적이다.(과학기술사사전, 1983, 일본) 저자는 진짜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만들어낸 과정에 담긴 '정(情)'이라는 마음에 집중한다. 한 예로, 훈민정음해례본에 세종이 쓴 첫 문장 "제 뜻을 펴지 못하는 백성이 많다"가 대표적이다. 뜻에 해당하는 한자가 정(情)이다. 정은 한국인만의 고유한 정서라는 게 저자의 해석이다. 중국인에게 유사한 단어를 꼽으라면 인(仁)일 것이다.

세종은 신하들에게 "백성을 사랑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없다"고 말한 왕이었다. 당시 '백성(民)'은 세금 내는 노예에 가까운 존재로 여겨졌으니, 이는 파격적인 선언이었다. 세종은 이를 애민과 여민 두 가지 대화법으로 구분한다. ① 애민은 지방관리(수령)와의 대화다. 백성이 상하관계일 지라도, “수령의 직책은 백성을 사랑하는 일 외에 다른 일은 없다”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그리고 밥을 챙겨주고, 형벌을 삼가고, 즐거움을 경험하게 하라고 당부한다. ② 여민은 중앙정부 신하와의 대화다. 문제가 있으면 백성에게 직접 원인을 물어 답을 찾으라는 수평적 대화법이 여민 대화법이다. 이 두 대화 방식은 사람을 아끼고 보살피는 공감(심퍼시, 컴패션)에 해당한다. 국방만큼은 예외였다. 돌로 성을 쌓다가 백성이 희생돼도 축성을 멈추지 않았을 정도로, 국경 방어에는 냉철한 판단을 유지했다. 이것은 디자인씽킹의 3가지 공감 중에 냉정한 공감(엠퍼시) 대화에 해당한다.
마지막 주제는 '변역(變易)'. 이 말의 방점은 '변한다'가 아니다. '기다린다'에 있다. 세종은 사람이 바뀌는 속도와 크기가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점이다. 세종은 “내가 먼저 바뀌고 남이 바뀌기를 기다렸다.” 저자는 세종의 화폐개혁 대실패 사례도 함께 짚는다. 화폐 유통을 밀어붙였다가 힘없는 백성만 처벌받고 도적떼(드라마 '별그대' 중에 남산 버티고개(약수동) 산적 대사 등장)가 늘어나는 부작용을 낳았다. 그렇지만, 세종은 실패를 인정하고 농지개혁으로 방향을 틀었고, 곡식 생산이 늘어나는 성과를 이뤄다. 저자는 이 점을 두고 "민심은 밥"이라는 것을 머리(지식)에서 몸(경험)으로 깨달은 경영자라고 평한다.
강연은 결국 'K-HR'이라는 단어로 수렴한다. 저자에게 그 핵심 한 글자를 꼽으라면 단연 '정(情)'이다. 다른 나라 말로 온전히 번역되지 않는 한국사람 고유의 정서를, 조직과 사람을 대하는 원형으로 삼자는 것이 강연의 결론이다. 따숨과 냉정이 동시에 담겨 있는 정(情)은 60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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