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국밥'은 뜨거운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 일반적인 방식과 달리, 밥과 국을 따로 내어주는 대구 지역만의 독특한 식문화다. 이 문화의 기원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뜨거운 국에 밥을 말아 허겁지겁 먹는 것을 천하게 여겼던 양반들이 체면을 지키려 밥과 국을 따로 먹는 방식을 선호했다는 것이다. 이 '따로따로'의 미학이 현대 기업 조직의 병폐를 놀랍도록 정확하게 보여준다. 각자의 그릇에 밥과 국이 담겨 있듯, 회사 내 각 부서들이 고립되어 정보와 목표를 공유하지 않고 각자의 이익만 추구하는 '사일로(Silo)'과 꼭 닮았다. 칸막이는 단순한 물리적 분리가 아니라 부서 간 형성된 '마음의 벽'에서 비롯되며, 조직의 비효율성은 물론 장기적으로는 조직 몰락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인사부서가 속한 경영지원실만 봐도 이런 '따로국밥' 현상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인사팀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유리한 정보만 공유하고 불리한 정보는 숨긴다. 채용 후 신입사원을 교육해야 하는 교육팀에게 몇 명을 채용하는지조차 알려주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옆 부서도 모르는 정보를 현업 부서가 알 리 만무하다. 그러니 현업 부서는 답답해하고, 원하지 않는 인원이 채용되거나 경영진 입맛에 맞는 조직 개편이 이뤄지면 좌절할 수밖에 없다. 회사 성장과 함께 새로 생긴 조직문화팀은 어떨까.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리려고 시도 때도 없이 새로운 이벤트를 기획하고 플랫폼을 만든다. 몇몇은 반기지만, 본업에 집중하는 직원들의 업무 시간을 빼앗는다는 불만도 생긴다. 기존에 조직문화 업무를 담당했던 교육팀은 뒤처지지 않으려고 온라인 학습 플랫폼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새로운 교육과정 개발을 위해 직원들을 인터뷰하고 워크숍을 진행한다. 이렇게 각 팀은 자신들의 목표를 위해 소중한 업무 시간을 '따로' 써버린다.
우리 회사에 총 3개의 교육팀(본사, 영업, 공장)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본사 교육팀은 경영진이 관심 두는 'AI 교육'을 전사 과제로 삼는다. 그런데 정작 교육에서 사용하는 AI는 사내에서 쓰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미 보고됐으니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영업과 공장에 있는 인력도 최대한 요청해서 교육과정에 참여하도록 만든다. 우리는 경영진과 가까운 본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일 파워가 있고, 이 파워를 잃지 않으려면 공장이나 현장으로 내려가지 않아야 한다. 영업 교육팀은 '우리는 영업만의 독특한 문화와 목적이 있어서 전사 교육과는 다르다'며 자부심을 느낀다. 가끔 본사에서 직원 교육을 진행해도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고 영업 관련 교육에만 집중한다. 영업 현장의 어려움과 치열함을 알지 못하는 다른 부서, 사람과는 대화할 수 없다. 생산 현장을 담당하는 공장 교육팀도 비슷하다. 공장은 공장만의 문화가 있으니 여기에 맞는 교육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산현장의 특수성도 있지만 그래야지만 공장 교육팀이 역할과 위상이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본사는 자꾸 생산 현장과 관계없는 교육만 진행하며, 하루하루 힘들게 근무하는 직원들의 시간을 빼앗는다고 여긴다. 이렇게 각 부서는 서로의 존재는 알고 있지만 '우리와는 크게 관계없는 부서'라고 인식하며 따로국밥이 된다.
이런 따로국밥 조직이 되는 데는 복합적인 원인이 있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자기중심적 해석'이다. '우리 조직은 무조건 옳고 다른 조직은 무조건 나쁘다'는 사고방식이 팽배해지면 팀 간 신뢰는 무너지고 불신이 자리 잡는다. 이 불신은 실무 단계에서 "다른 팀이 뭘 하는지 왜 알아야 돼?"라는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이런 무관심은 때로 같은 회사 내에서 영업팀과 마케팅팀이 각각 같은 고객에게 별도로 인터뷰를 진행하거나, 서로 다른 내용을 질문하는 '멍청한 시간 낭비'를 반복하게 만든다. 이는 직원들의 사기를 꺾고, 결국 기업의 중요한 자산인 인재를 떠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실을 초래한다. 조직 성장이 둔화되거나 사용 가능한 자원이 한정될 때는 더욱 심해진다. 각 부서는 자신의 생존과 영향력 강화를 위해 경쟁하고 정보를 통제하는 경향이 강화된다. 이런 과도한 경쟁은 단순히 더 나은 성과를 내려는 건전한 노력을 넘어, 정보를 통제하고 구성원들을 단속해 외부로의 정보 유출을 막는 '견제'의 형태로 나타난다. 결국 부서 자체가 하나의 라인이나 파벌이 되는 결과를 낳는다. 따로국밥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양반들이 뜨거운 국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을 천하게 여기며 체면을 지키려 '섞지 않고' 따로 먹는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조직의 모습과 놀랍도록 닮아 있지 않은가. 부서장들이 정보를 꽁꽁 숨기고 부서 간 경쟁을 부추기는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단순한 효율성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권위와 부서의 독점적 지위를 지키려는 일종의 '체면 차리기'인 셈이다. '우리 부서의 성과'가 '다른 부서와 섞이는' 것을 원치 않는 심리, 이는 권력과 통제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보이지 않는 벽이다. 이처럼 부서 간 벽 쌓기 현상은 단순한 시스템 문제가 아닌, 인간의 심리적이고 문화적인 요인과 깊이 얽혀 있다. 이 심리적 장벽을 이해하는 것이 인사관리 솔루션의 첫 단추가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체적인 운영 체계 구축이 필수다. 모든 부서의 목표가 전사 비전과 일치해야 하고, 강력한 리더십이 발휘돼야 한다. 강력한 리더십은 '우리 회사가 어디로 가고 있고, 어떤 부분에 집중해야 하는지'라는 명확한 신호를 제공함으로써 부서와 직원들을 하나로 뭉치게 한다. '통합 프로젝트 팀'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여러 부서 구성원을 모아 하나의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진행하는 방식으로, '작은 회사'처럼 운영돼 부서 간 인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기 시간과 병목 현상을 근본적으로 없앤다. 다양한 관점과 전문성이 어우러져 창의적인 문제 해결과 혁신을 촉진하는 효과도 있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이런 방식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갤럭시 개발 과정에서 디자인,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마케팅 팀이 함께 참여하는 통합 개발 조직을 운영해 빠른 의사결정과 혁신을 이뤄내고 있다. LG전자도 가전제품 개발 시 기획부터 양산까지 관련된 모든 부서가 참여하는 '제품 책임자 제도'를 통해 부서 간 칸막이를 허물고 있다. 또한 직원들이 다양한 부서 업무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순환 근무나 교육 프로그램도 효과적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순환 근무' 제도는 직원들이 2-3년 주기로 다른 부서에서 근무하며 회사 전체 사업을 이해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부서 간 업무 이해도가 높아지고 자연스럽게 협업이 늘어나는 효과를 보고 있다. 더불어 부서 간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는 평가 방식을 탈피하고 구성원 간의 협력을 유도해야 한다. 경쟁과 협력을 균형 있게 추구해 더 많은 부서가 성과를 내고, 결국 회사 전체 성과를 높이는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각 부서의 '고유 목표'와 함께 다른 부서와 협력해 달성해야 할 '공동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직무 분석 시 각 직무의 고유 업무와 공동 업무를 구분하는 것과 같다. 협력에 대한 보상과 함께 갈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 구축도 필수다.
HR부서는 항상 조직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려는 접근을 취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스스로 성찰할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조직 구성원에게 '하나'라고 외치면서 정작 자신들이 따로국밥이라면, 누가 HR부서의 메시지를 진심으로 받아들일까? 결국 이 상태가 지속되면 직원들은 공식적인 시스템보다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활용하게 되고, 인사부서는 전략적 파트너가 아닌 '비용 부서'로 전락할 위험에 처한다. 특히 인재 확보와 육성, 조직문화 등 인사 기능 내에서도 긴밀한 협업이 필수인 시대에 더욱 그렇다. '따로국밥' 조직을 넘어, 모든 재료가 어우러져 더 깊고 풍부한 맛을 내는 '섞어국밥'처럼 조직의 역량을 통합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부서들을 물리적으로 통합하는 것을 넘어, 직원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벽을 허물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이끄는 인사관리의 결과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더 효율적이고 행복한 조직의 모습이며, 궁극적으로 더 큰 성공을 향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