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묻은 금

땅에 묻은 금

포용은 사람을 묻어두지 않는 일이다
채용조직문화성과관리조직설계인사기획시니어리더임원CEO
달남
푯달남Oct 2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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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읽은 이솝 우화 중에 유독 오래 남아 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한 구두쇠가 가진 재산을 전부 팔아 금덩어리 하나로 바꿨다. 그리고 그걸 아무도 모르는 땅에 묻었다. 그 뒤로 그의 하루는 단순했다. 매일 그 자리에 가서 금이 잘 있는지 확인하고 돌아오는 것. 그게 전부였다.

그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도둑이 뒤를 밟았고, 결국 금을 파 가버렸다. 빈 구덩이를 본 구두쇠는 주저앉아 울었다. 사정을 들은 이웃은 구덩이에 돌멩이 하나를 던져 넣고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쓰지도 않고 바라보기만 할 거라면, 그 돌을 금이라 생각하고 매일 쳐다보시오."

어릴 땐 그냥 구두쇠를 비웃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HR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이 이야기가 자꾸 다르게 읽힌다. 금 대신 사람을 넣어보면, 생각보다 많은 조직이 이 구두쇠와 닮아 있다.

뽑아놓고 묻어둔다

지난 글에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이야기를 했다. 사람을 기준에 맞춰 자르고 늘리는 조직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사람을 잃는 방식이 꼭 그렇게 요란하지만은 않다. 자르지도 늘리지도 않고, 그냥 묻어두는 방식도 있다.

채용할 때는 그렇게 공을 들인다. 우리 팀에 없던 경험, 우리와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이라며 반긴다. 그런데 막상 입사하고 나면 그 '다름'이 쓰일 데가 없다. 회의에는 들어오는데 말할 타이밍이 없고, 어렵게 꺼낸 의견은 "네, 참고할게요"에서 멈춘다. 중요한 건 결국 원래 하던 사람들끼리 정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가끔 확인한다. "그래도 우리 팀에 저런 경험 가진 사람 하나쯤은 있지." 매일 땅을 들여다보던 구두쇠처럼.

퇴사 면담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회의에는 계속 들어갔는데, 제 자리는 없었던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아무 대답을 못 했다.

갖고 있는 것과 쓰이는 것

다양성과 포용을 같은 말처럼 쓰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둘을 조금 다르게 본다. 다양성이 금을 갖고 있는 상태라면, 포용은 그 금이 실제로 쓰이는 상태에 가깝다.

갖고만 있는 다양성은 보고서의 숫자로 남는다. 몇 명을 채용했고, 비율이 몇 퍼센트라는 식의. 숫자는 깔끔하지만 조직을 바꾸지는 못한다. 다른 관점이 실제로 테이블 위에 올라오고, 결정에 섞이고, 결과물 어딘가에 흔적을 남길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쓰인다'는 말이 사람에게 쓰기엔 좀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건 소모가 아니라 기여에 가깝다. 내가 가진 게 이 팀에서 의미 있게 쓰이고 있다는 감각. 사람은 생각보다 그 감각 하나로 조직에 오래 머문다.

친절하다고 포용하는 건 아니다

포용 이야기를 하면 "우리 팀은 다들 친절한데요"라는 답이 돌아오곤 한다. 맞는 말일 수 있다. 다만 친절과 포용은 조금 다른 문제다. 다들 웃으며 인사하지만 중요한 결정은 늘 같은 몇 명이 내리는 팀도 있다. 친절하게 묻어둔 금도 묻혀 있긴 마찬가지다.

반대로 포용을 기준을 낮추는 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 않다. 기준은 그대로 두되, 같은 기준에 닿을 수 있도록 출발선을 살펴보는 쪽에 가깝다. 온보딩 문서가 이미 내부 사정을 다 아는 사람만 이해할 수 있게 쓰여 있다면, 그건 기준이라기보다 그냥 높은 문턱이다.

모든 의견을 다 받아들이라는 얘기도 아니다. 채택되지 않는 건 괜찮다. 다만 꺼낼 수는 있어야 한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접게 만드는 분위기, 그게 사람을 땅에 묻는다.

결국은 작은 장면들

포용은 제도나 슬로건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걸 일하면서 자주 느낀다. 오히려 아주 사소한 순간에 드러난다.

회의 끝날 즈음 "혹시 아직 말씀 안 하신 분?" 하고 한 번 더 묻는 것. 입사 첫 주에 나온 질문에 "그것도 몰라요?" 대신 "아, 그거 헷갈리죠"라고 받아주는 것. 새로 온 사람이 "전 회사에선 이렇게 했는데요"라고 할 때 "여긴 달라요"로 덮지 않고 "거기선 어땠어요?"라고 되물어보는 것.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사람들은 이런 순간들을 모아서 판단한다. 여기서 내가 쓰이고 있는지, 아니면 묻혀 있는지를. 그리고 그 판단은 생각보다 빨리, 아주 조용히 내려진다.

금을 먼저 알아본 건 도둑이었다

이 우화에서 내가 제일 씁쓸하게 느끼는 대목은 따로 있다. 금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본 사람이 주인이 아니라 도둑이었다는 점이다.

조직도 비슷하다. 우리가 묻어둔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줄 준비가 된 다른 곳이 먼저 알아본다. 그리고 그 사람이 떠나고 나서야 빈자리를 보며 깨닫는다. 꽤 귀한 사람이었다는 걸. 그때 할 수 있는 말은 "아쉽네요" 정도밖에 없다.


이웃이 돌멩이를 던져 넣은 게 단순히 구두쇠를 놀리려던 건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질문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 금으로 대체 뭘 하려고 했느냐고.

요즘 나는 그 질문을 나한테 해본다. 우리는 이 사람을 왜 뽑았을까. 그리고 지금, 그 이유대로 이 사람이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내어주고 있을까.

묻어둔 걸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일. 포용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다.


달남
푯달남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남자 #방향 #인자 #행복
안녕하세요. 푯대(Skopos)를 향해 달려가는 남자, 푯달남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방향을 잃지 않고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 여정에 도움이 될 지혜와 통찰을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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